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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27. 2020

온라인 개학은 엄마를 미치게 한다

휴일을 보내며 하루를 기록해 봤다

뜻하지 않게 길어진 아이들의 방학은 맞벌이 가정뿐 아니라 전업 주부인 엄마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긴 터널도 조금씩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1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코로나 19 확진자는 10명 내외를 기록해 적어도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이 사태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아내가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아내를 대신하여 집안일을 전담하였다. 기나긴 일상들 중 주말 하루 아내를 대신하여 보낸 나의 시간을 통해 길어진 문제적  일상을 돌아봤다.  

 



[1] 아내의 화단(아파트 정원)에 물 주기 : 40분

해마다 봄이 되면 아내는 아파트 화단, 아파트 입구 길목 등의 노는 땅을 이용해 땅을 일구고 꽃씨를 심는다. 혼자 보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함께 꽃을 보는 즐거움을 줄 수 있게 이렇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정성스레 꽃을 심고, 가꾼다. 물론 이런 아내의 정성에 나도 함께 동참하고 있고, 이렇게 피어나는 꽃과 예쁘게 피어난 꽃을 보며 웃는 사람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올해도 어김없이 꽃씨를 심었는데, 아직은 꽃샘추위 때문에 새싹이 조금씩밖에 싹트지 않았다. 아내는 이런 싹을 틔우지 못한 꽃씨들에게 매일 아침 일용할 양식을 주고, 오늘은 아내를 대신해 내가 물을 줘봤다.  "얘들아 열심히 무럭무럭 자라나서 예쁜 꽃을 보이렴."


[2]  어제 미뤄둔 설거지 그리고 아침 식사 준비 :  1시간

아내가 목요일 발목을 다쳐 난 가급적 움직임을 제재했고, 주말이고 해서 금요일 오후와 저녁 설거지는 하지 말라고 엄포를 해 놓은 상태였다. 물론 그 설거지는 토요일 아침 나의 몫이었고, 생각보다 설거지 양이 만만치 않았다. 주방에 서서 물과 세재와의 전쟁을 벌였고, 깨끗한 그릇들의 얼굴을 보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설거지 30분 후에는 우리 가족 아침 밥상을 준비했다. 오늘의 아침 밥상의 테마는 '가정식 백반', 그냥 있는 반찬에 햄을 굽고, 미리 해 놓은 잡채와 미역국을 덥혔다. 이렇게 아침 밥상을 준비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영희 씨, 아침 식사해요. 얘들아. 밥 먹자."


[3] 아내와 딸아이를 데리고 병원 다녀오기 : 1시간

아내는 목요일 오후에 발목을 접질린 이후 정강이 부위가 붇고, 통증이 있어 한의원을 데려가야 했고, 딸아이는 치통으로 며칠째 고생하고 있어 치과에 데리고 가야 했다. 두 아가씨분들 모두 병원에 가기 귀찮아했지만,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 간신히 설득해 데리고 나갔다. 다행인 게 아내가 다니는 한의원이 있는 건물 같은 층에 치과가 있어서 여러 번 움직이지 않았다. 우선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갔고, 그 사이 아내는 치과 옆 한의원에 가서 접수를 하고 대기했다. 딸아이의 진료시간, 다행히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고, 어금니가 양쪽이 모두 올라오고 있는터라 통증이 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니 걱정은 하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아이를 데리고 아내가 진료받는 한의원으로 갔고, 치료 과정이 긴 특성상 아내가 치료가 끝날 때까지 대기 시간이 조금 길었다.  "영희 씨, 치료받고 당분간은 무리하지 마요. 지수야, 이젠 유치가 없다고 하니 더 관리 잘해야겠네."


[4] 주말 장보고, 점심 챙기기 : 1시간 

우리는 주말이면 다음 한 주간의 식자재 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마트에 간다. 1주일간의 일용할 양식이니 조금은 긴 시간을 투자해 빠트리지 않게 신중(?)하게 장을 보게 된다. 오늘은 병원 근처에 '홈 X러스'가 있어서 그곳에서 장을 봤고, 배달 없이 들고 가야 해서 평소보다는 적은 양을 샀다. 시장 보고 나오는 길에 점심으로 김밥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고, 라면에 김밥을 먹기로 아이와 아내와 결정해서 라면을 끓여 김밥에 맛있는 그렇지만 조금은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지수야, 체하지 않게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5] 아침, 점심 설거지 그리고 부엌 정리 : 50분

점심을 모두 먹은 뒤 아침에 먹고 미뤄뒀던 설거지와 점심 설거지까지 마무리하는데 50분이나 주방에서 나오지 못했고, 항상 있을 아내의 이런 일상이 다시 한번 그려져 마음이 짠해진다. "영희 씨, 항상 고생이 많네요."


[6] 청소, 빨래 : 1시간 30분

요즘은 외출을 하는 건 큰 아이와 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나마 코로나 이후에는 빨래해야 할 양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속옷 빨래는 늘 나오는터라 며칠 빨래를 하지 않으면 4인 가족 빨래의 양은 만만치가 않다. 아내가 발목을 다쳐서 3일을 빨래하지 않아 주말에 세탁기를 돌렸다.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바닥을 닦고 났더니 1시간이 후딱 가버렸다. "영희 씨, 앞으로 3일은 세탁기 안 돌려도 괜찮겠다. 나 잘했지?"


[7] 저녁밥 준비 그리고 밥상 치우고 설거지 : 1시간 40분

점심 후에 잠깐 쉬었다가 다시 저녁밥 준비를 시작했다. 점심을 늦게 먹은 터라 아내와 나는 저녁을 먹고 싶은 욕구는 사라진 상태지만,  아이들을 위해 밥 준비는 당연히 해야 될 몫이었다. 오늘도 저녁 메뉴를 뭘로 할까 하다가 냉장고에 유통기한 날짜가 임박한 비싼 어묵이 있길래 버섯과 어묵을 넣고 간단하게 어묵탕을 끓였다. 김치찌개를 끓일까 생각도 했지만, 내일 아침 준비할 카레를 생각해 오늘은 하루 먹고 치울 간 단식으로 준비하는 게 낳다 싶었다. 이렇게 쌀을 씻어 밥을 하고, 어묵탕을 끓이고 밥상을 차리는데 든 시간이 50분, 그리고 이 밥상을 치우고 다시 설거지하는데 걸린 시간이 50분. 오늘 하루 집안일은 여기서 끝.


 오늘 하루 집안일을 한 시간을 이렇게 따로 기록해 봤다. 이렇게 기록한 시간만 7시간 40분.  8시간 가까이 집안일이라니. 늘 긴 시간을 아이들 뒷바라지와 집안일을 했을 아내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를 대신해 집안일을 전담해 하루를 보내봤다. 아내는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을 가사에 쏟아붓고 있었다. 평소 난 주중에는 저녁 밥상을 함께 치우고, 설거지해주는 게 고작이었고, 주말에도 식사 챙기고, 청소 도와주는 일을 하지만 이것도 가끔씩은 귀찮아하는 마음을 가졌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했다.


  얼마 전 아내와 얘기하던 중에 웃으며 흘렸지만  다시 한번 이 글을 쓰며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의 방학이 길어지니 한 번씩 위기가 온다고 했다. 그 첫 번째가 2월 말쯤이었고, 잠시 힘이 들다가 다시 괜찮아졌었는데 4월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다시 그 위기가 왔었다고. 집에서 있는 시간만으로도 가사가 넘쳐 힘이 든데, 이렇게 아이들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기는 일상은 아내에게는 더없이 길어진 방학이 주는 또 하나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바라지하면서 아마도 방학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과 코로나 사태로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했던 마음이 충돌이 심했던 하루하루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전업주부 엄마들은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이들이 방학하면, 엄마는 개학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길어진 아이들의 방학이 엄마들에게는 꽤나 힘든 시간이고, 어려운 시기일 것이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등원할 때는 짧지만 그래도 엄마들만의 여유, 자유시간이 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엄마들의 여유, 자유시간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 개학이 되어서 좋아질까 싶었던 온라인 개학은 엄마들의 방학 연기로 또 다른 숙제를 안게 되었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국면으로 가는 뉴스를 보는 엄마들은 곧 찾아올 자신들의 봄을, 여유를 그리고 짧지만 자유로울 수 있는 하루의 그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다들 조금만 참고, 견디면 '아이들 개학, 엄마들은 방학'이라는 시간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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