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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y 29. 2020

힘들어요 여보 그래도 함께 할래요(2)

좋아하는 이웃들 보면 행복해지네요

4월에 뿌려놓은 씨앗들이 이제서야 예쁜 얼굴을 보이네요. 예쁘게 분칠까지는 아니어도 고운 자태에 발걸음이 자연스레 멈춰서네요.




지난 4월초 흙을 포대채 사다 나르고, 꽃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고 하루가 멀다하고 물을 주면서 정성스레 가꿨던 아파트 화단에 드디어 기다리던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날씨가 많이 따뜻해지지 않아 4월말이 되어서야 씨앗들이 제대로 싹을 튀웠고 속 태워가며 빨리 싹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아내와 전 늦둥이라도 본냥 어찌나 기뻤던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싹이 올라오고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아내는 다시 한번 일도 제대로 못하는 일꾼인 저를 써먹을 거사(?)를 계획했고, 볕이 좋았던 4월의 마지막 날 시원한 아이스 라떼에 모종의 계약을 하고 호미와 포크, 물 등을 챙겨들고 아내의 화단으로 이끌려 나갔죠.


아내는 집안에서 온실 발아하여 화분에서 자리를 잡은 모종들을 잔뜩 챙겨 아파트 화단에 심을 계획을 했고, 늘 그렇듯이 만족스럽지는 못한 일꾼이지만 그래도 제법 데리고 다니기엔 아쉽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함께 하는 무언가가 좋아서 저를 데리고 나가는 건지 번번히 제게 일할 기회(?)를 주고는 하죠. 아침부터 우리 시장바구니용 짐차는 잔뜩 화분을 싣고 바삐 저와 움직였고, 아내의 진두지휘에 맞춰 전 라떼 한 잔을 먹고는 군소리 없이 2시간 넘게 꼬박 아내의 지시에 따랐죠.

 

 

 "철수 씨,  여기 물 가져와요. 고마워요."

 "철수 씨, 그쪽에 잡초 좀 뽑아줘요. 새싹 올라온거랑 구분 잘해서요."

 "집에 가서 물을 좀 더 받아와요. 2통만 더요. 그리고 거기 호미 좀 던져줘요."


라떼 한잔에 오늘도 제대로 부림을 받고 있는 저지만 그래도 아내와 함께하는 이 일이 싫지가 않아요. 이렇게 심고 나서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네요. 아래 사진 보면 알겠지만 녀석들 많이 컸지요.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나서 꽃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정말 보람을 느껴요. 게다가 지나다니시는 아파트 주민분들도 꽤나 열성팬이 생겨 얼른 꽃을 더 피우길 기대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이렇게 아내와 고생하며 모종을 심고도 한 달이 지났어요. 한 달 사이에 비도 제법 오고, 기온도 조금씩 올라 꽃을 보여주는 녀석들이 많아졌어요. 오늘은 경비실에 들러 뇌물(박카스)도 내밀며 경비 아저씨분들께도 부탁을 했어요.

 

 

 "아저씨, 수고가 많으세요. (박카스를 건내며)"

 "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가끔씩 쓰레기 분리 수거일이나 경비실에 들러 음료나 음식을 건넸던 아내를 이내 알아보며 아저씨께서도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A동 화단에 꽃 심어놓은거 아시죠?"

 "아, 그럼요. 작년에도 꽃 예쁘게 피어서 저희도 좋았는걸요."

 "그래서 말씀인데 올해도 잡초 뽑을 때 거기 꽃밭은 제가 미리 뽑을테니 안뽑으셔도 되요."

 "네네! 다른 경비분들께도 잘 전달해 놓을게요."


아내의 의도를 너무도 잘 이해하신 경비 아저씨는 자신의 일인 양 기꺼이 전달 사항으로 다른 경비원 분들에게도 전달까지 해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이었죠. 이제 조금씩 더워지는 여름이 오면, 그리고 덥던 여름이 가고 선선해지는 가을이 오면 아내의 정원은 더 풍성해지겠지요?


지난 4월 말에 아파트 후문 길가에 뿌려놓은 꽃씨들도 좁디좁은 길을 따라 저마다 강한 생명력을 뽐내며 너무 척박해 뿌리나 내릴까 걱정한 우리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이리 파릇파릇 제 살을 보여주네요.  여기도 곧 꽃길이 될 생각에 출근길 발걸음이 더 가벼워지네요. 계절이 바뀌고 꽃이 더 풍성해지면 또 한 번 좋은 글로 다시 찾아올게요. 3탄 기대되시죠?


https://brunch.co.kr/@cooljhjung/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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