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아내에게 처음 건넨 급여통장

아내는 그 날 눈물을 흘렸다.

by 추억바라기

난 그 날 아내에게 무거운 짐을 덜었고, 어쩌다 보니 어울리지도 않는 나쁜 남자 코스프레가 돼버렸다.




결혼하고 얼마간은 아내와 난 맞벌이 부부였다. 난 IT 회사에 기술직으로 일하고 있었고, 아내는 여성 의류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애들이 태어나기 전이라 아침 출근을 함께했고, 퇴근 때면 지하철역에서 만나 함께 퇴근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다른 맞벌이 부부들처럼 우리도 각자의 급여 통장에 급여를 받았고, 난 생활비로 지출할 돈을 아내의 계좌로 매달매달 송금을 했다. 특별히 이상할 게 없었고, 이상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지내다 아내는 큰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아내가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다니던 회사 사정이 나빠 아내는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애초에 서울에 연고가 없었던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었고, 아이가 나오면 아내는 전업 주부의 길을 선택하려고 이미 생각했었다.


난 이렇게 외벌이 가장이 되었고, 둘이 벌다가 혼자 벌기 시작하면서 처음 3개월 정도는 둘이 벌 때의 씀씀이가 익숙해져 있어서 혼자 버는 급여로는 조금 힘에 붙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인간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듯이 이내 우리는 그 생활에 익숙해져 갔고, 이렇게 큰 아이가 태어나면서 잠깐 위기가 왔지만, 아쉽기는 해도 해가 바뀌니 내 연봉도 물가 상승률과 비슷한 수준으로 조금씩은 오르기 시작했다. 여유가 있을 정도는 아니고, 숨통이 트일 정도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우리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이어지는 동안 아내는 내 급여통장을 달라고 한 적은 없었고, 그냥 자연스레 난 급여를 받아 생활비를 아내 계좌로 넣어주는 생활이 계속 이어졌다. 이렇게 한 달, 한 달 급여를 받아쓰고, 또 한 달 일해서 급여를 받아서 다시 쓰는 생활이 6~7년이 계속되었다. 직장 다니는 주변 사람들이 '비자금 얼마를 만들었다', '다른 주머니를 얼마나 차고 있다'와 같은 말들을 할 때면 현실감이 많이 떨어졌고, 나에게는 크게 와 닿지가 않는 이야기였다. 난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고, 남은 돈으로 그냥 돈을 써서 그런지 돈이 크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던 직장의 상황이 좋지 않아 급여가 덜 나오거나 안 나오는 일이 종종 생겼고, 한 두 번은 회사에 사정해서 생활비 정도가 가능한 돈을 받았지만, 이런 일이 거듭되니 항상 불안 속에 힘이 들었고, 아내 또한 불안한 마음으로 걱정을 많이 했다. 어쩔 수 없이 신용 대출을 알아봤고, 마이너스 900만 원짜리 통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 후 나의 씀씀이는 더 커지기 시작했다. 우린 두 달에 한 번씩은 여행을 갔고, 외식 횟수도 더 많이 늘었다.


이렇게 받았던 마이너스 대출은 두 번의 증액으로 1,500만 원까지 늘었고, 이때까지도 우리 집 경제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아이도 둘이 되고, 들어갈 돈이 늘다 보니 생활비만 증액된 채 통장관리를 10년이 지나도록 내가 하고 있었다. 이렇게 지출이 많은 이유는 포기가 안 되는 여행 때문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이 상태의 통장을 아내에게 주기 싫었던 게 내 본심이었다. 중간중간에 아내가 통장을 자신에게 맡기고, 돈 관리를 자신이 하겠다고 할 때마다 난 번번이 핑계를 대고 아내의 요청을 거절했다.


"철수 씨, 이제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통장 관리할게요. 10년이 넘는 동안 내가 당신 급여가 얼마나 찍히는지 본 적이 없잖아요."

"영희 씨, 생활비가 부족하면 이야기해요. 당분간은 내가 그냥 하던 대로 할게요. 통장은 내년부터 관리할 수 있게 줄게요."


난 어떻게든 마이너스 통장의 대출 금액 숫자를 최대한 줄여서 아내에게 전할 마음이었지만, 그 좋아하는 여행을 줄이지 않으니 그 대출 금액은 줄지 않았고, 번번이 돈 생각하지 않고 지를 때마다 금액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난 마이너스로 증액한 1,500만 원의 한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결단을 내렸고, 어느 날 조용히 아내에게 맥주 한 잔 하자고 분위기를 잡았다.


"영희 씨, 당신이 말하던 급여 통장 이제 당신에게 줄게. 늦게 줘서 미안해요."

난 슬며시 놓인 맥주잔 사이로 급여 통장을 내밀었고, 잠시 내 손을 응시하던 아내는 내 손에서 통장을 슬며시 빼 펼쳐 보았다.

"......"

통장을 보던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고, 아내의 눈으로는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문득 제 발이 저린 나는 아내에게 핑계뿐이지만 찰나의 위기라도 벗어날 목적으로 변명을 했다.

"영희 씨, 그 마이너스 금액은 내가 다른 곳에 쓴 건 아니고, 우리 가족 여행 경비가 조금씩, 조금씩 늘면서 그렇게 불어난 거예요. 미안해요."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글썽거렸고, 아내의 입에서는 조금은 원망 섞인 그리고 진작에 내 손에서 통장을 뺐지 못했던 회한이 서려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큰 빚을 떠안으려고 10여 년을 기다렸어요? 철수 씨, 너무해요. 그동안 이런 상태인지 얘기도 안 하고, 월급통장이라고 준 게 마이너스예요. 그것도 이렇게 큰 금액을."


난 그 순간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고, 조용히 맥주만 홀짝일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서러움에 한 참 눈물을 보였고, 난 아내를 위한 위로의 말을 고르고, 꺼내느라 진땀을 뺐었다. 그 날 이후로 아내는 특단의 조치를 여러 가지 내렸고, 나에게는 꽤나 힘들고, 어렵지만 꼭 지켜야 하는 일들이었다. 그 첫 번째가 용돈 통장을 개설해 한 달에 한 번 용돈을 받게 되었고, 그 두 번째가 우리 가족 여행은 아내가 직접 가자고 해야 가는 것으로 바꿨다. 물론 현명한 내 아내는 여행을 가기 위한 통장을 별도로 만들어서 한 달에 조금씩 여행 경비 통장에 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고, 우린 1년에 한, 두 번은 여행을 다닌다.


"철수 씨, 난 아직 철수 씨 급여가 정확히 얼마인지 몰라요."


아직도 아내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이렇게 가끔 하곤 한다. 생각해보면 아마 그때의 서운한 감정을 조금 담아서 짓궂게 장난하는 말투일 테지만. 그래도 그 날 나의 결정과 아내의 현명한 대처가 있어서 지금 우리 가정이 내 집 가지고 사는 게 아닐까 싶다. 고마운 아내에게 그 날 일을 추억하며 한 마디 하자면 '영희 씨, 미안해요. 내가 더 잘할게요'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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