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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n 15. 2020

아내와 헤어지는 중입니다

우린 25년째 연애 중인 19년 차 부부입니다

"우린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아내와 난 결혼한 지는 22년, 연애까지 포함하면 28년이 지났다. 현재까지 애인이자, 친구이자, 훌륭한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가고 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건 군대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 정기 휴가를 나왔던 95년이었다. 사촌의 소개로 잠시 인사만 했었다. 요즘 군인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때만 해도 군대에 있으면 '여성'을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휴가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기회를 만들려고 하는 게 군인들 습성이었다. 나 또한 자주 찾아오지 않는 우연을 어찌 되었건 운명으로 만들려는 부단한 노력을 그때는 했었다.


아내와의 처음은 그냥 대면 대면했다. 오히려 아내의 친구에게 관심을 보였었다고 아내는 이야기한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는 그냥 그런 만남의 기회를 만들려는 20대의 발버둥쯤으로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난 아내와 군 전역 전까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게 인연이 되어 전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부터 1일'이라는 암묵적인 약속으로 만남을 이어갔다.


당시 난 마른 장작에 불이 붙은 것처럼 아내를 위해 간, 쓸개 모두 빼줄 만큼 사랑했었다. 복학 전이라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일하는 틈틈이 아내가 근무하는 곳에 들렀다. 아내가 조금 부담을 느낄 만큼 아내를 많이 좋아했었다. 이런 내 마음이 부담이 되었었는지 만난 지 한 달 만에 아내는 내게 '이별'을 통보했다. 이별 통보를 듣고 난 그 자리를 굳은 얼굴로 박차고 먼저 나와버렸다.


간신히 울음을 참고 카페 밖으로 나온 난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길에서 흐르는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아내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눈물을 훔치는 내 모습을 봤고,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날의 기억으로 아내는 날 다시 만나자고 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내와 헤어지고 많이 힘들었고, 많이 괴로웠다. 짧았던 한 달이지만 내게는 무척이나 가슴 아팠고, 너무도 애틋했었던 시간이었다. 헤어진 후 한 달여만에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걸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낼 다시 만나기 위해 뛰어가던 순간 떨렸던 그날의 감정은 지금도 생생히 느껴지는 듯하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우리는 더욱 단단하고, 견고해졌다. 처음 몇 개월은 10대의 연애와 같이 상큼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열정적으로 연애했던 것 같다. 결혼까지 가는 길도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우리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들이어서 서로 믿고, 의지하며 순간순간을 슬기롭게 이겨냈다.


결혼해서도 행복했던 일도 많았고, 슬펐던 일도 있었고, 즐거웠던 추억도 참 많았다. 올해로 아내와 결혼한 지 23년이 된다. 입시생이었던 아들 문제로 20주년 결혼 기념 여행을 다녀오지는 못했다. 게다가 작년에 계획했었던 둘 만의 여행도 여행 하루 전에 코로나 확진으로 모두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도 아내와의 계획을 세워보려 한다. 또 다른 이유로 취소될 수 있지만 준비하는 마음과 기다리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는 느낌이다. 가끔 기념될만한 이벤트를 찾는 행복보다는 항상 사랑하고, 행복함이 넘치는 시간을 우린 보내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긴 세월을 함께 할지는 모르겠지만 숨을 쉬는 마지막 그날까지 아내와는 늘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다.   


 마음 같아서는 100년을 함께 살고 싶다. 하지만 주어진 생명의 한계라는 게 존재하므로, 앞으로 딱 살았던 날만큼만 함께 더 살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그럼 아내나 나나 백 살. 좀 과한가 싶다. 그래도 그 정도면 헤어짐이 많이 아쉽지는 않을 듯하다. 앞으로 50년. 난 하루하루 아내와 헤어지는 날짜를 아쉬워하며 함께 할 날을 꾸준히 행복으로 채워나갈 생각이다. 우린 앞으로 헤어지기 50년 전이다.  

        

 난 오늘도 아내와 헤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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