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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n 29. 2020

처갓집에서 일어난 뱀 소동

처갓집에는 히어로가 살고 있다

 내 팔을 미끄러져 지나가는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고, 잠이 퍼뜩 깰 만큼 너무도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작년까지도 명절만 되면 우리 가족은 긴 이동거리를 따라 며칠이 되지 않는 짧은 연휴를 바지런하게 움직이며 부모님 댁과 처갓댁을 오갔다. 부모님 댁은 경상도, 처갓댁은 강원도였으니 우리 네 식구는 이동거리만 따지면 우리 집에서 다시 집까지 돌아오는 거리가 900Km 가까이 되는 듯하다. 작년 겨울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앞으로는 이렇게 명절을 이동하며 보낼 일은 없어졌지만 작년 설 명절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장거리를 이동하며 명절을 지내왔었다. 우리는 이렇게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니 연휴가 5일이면 빠듯했고, 6일 정도는 되어야 조금의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KTX가 생기며 짧은 이동 시간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지만 이젠 4명 모두 성인 티켓을 끊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어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발걸음 했다가도 반가운 가족들을 만나면 그래도 찾아갈 고향이 있어서 좋았고,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가족이 있어서  좋았다.  이래서 고향을 찾는구나 하는 푸근함과 따뜻함에  지친 일상을 조금은 힐링하게 되는 기분 좋은 시간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난 처갓집 갈 때가 너무 좋았고, 특히 처가가 있는 동네가 작은 소 도시이고, 게다가 처갓집은 중심가에서도 조금은 외진 동네라 한껏 시골 느낌도 났고, 마당 있는 집이어서 도시에서 지친 몸을 힐링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몇 해 전에도 평소와 같이 발걸음 가볍게 추석에 처가를 찾았고, 반갑게 맞아주는 장인, 장모님도 좋았지만 마당  입구에 만들어놓은 아궁이와 옆으로 쌓여있는 장작 무더기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아궁이와 장작을 보며 숯을 만들어 마당 한쪽에서 숯불 바비큐 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아내는 장인에게 바깥 아궁이에다 숯을 만들어 달라고 했고, 작년에 사놓았던 이동형 숯불그릴이 어디 있는지 장모님에게 물었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마당 바비큐는 처가 식구들을 마당으로 모두 모아 가든파티 분위기가 물씬 났다. 아직까진 9월이라 늦모기가 기승을 부렸고, 달려드는 모기를 쫓기 위해 모기 퇴치용 모깃불을 피우니 조용한 시골집 분위기는 한층 더 포근하게  무르익었다. 이렇게 모두 즐겁게 먹고, 웃으며 추석 저녁 밤을 보내고 늦게까지 놀다가 잠을 청했다. 우리 네 식구는 늘 그렇게 해왔듯이 아내가 결혼 전에 썼던 아내 방에 짐을 풀고, 잠을 잘 준비를 했다. 아내 방에는 퀸 사이즈 침대가 있어서 보통 아들과 내가 침대에 자고, 아내와 딸아이는 바닥에 잔다. 차 타고 이동도 했고, 가든파티하며 늦은 시간까지 놀고 나니 잠을 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린 모두 깊은 잠에 빠져 들었고, 초가을의 저녁이라도 처갓집 뒤로는 산도 있는 시골이라 조금은 서늘해진 날씨에 이불을 적당히 덮고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를 깊은 밤, 난 팔을 살며시 미끄러져 지나가는 감촉을 느꼈고, 깊이 들었던 잠도 퍼뜩 깰 만큼 너무도 서늘한 기분에 눈을 뜨고 팔 아래쪽을 보았다. 순간 난 너무도 놀라 펄쩍 뛰며 소리쳤다.


 "배, 뱀이야. 뱀이야. 얘들아 일어나. 영희 씨 일어나요. 뱀이에요."


  아내는 뱀이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급하게 방에 불을 켰고, 그 사이 큰 아이를 빼고는 모두 일어나 주변에 있을 뱀을 경계하며 방안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내가 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장모님과 장인어른도 방으로 들어왔고, 처음엔 내가 하는 얘기를 조금은 못 믿는 눈치였으나 너무도 생생했던 기억을 되짚어 설명하자 이내 바닥에 있는 이불까지 탈탈 털어 거실에 내어놓고는 온 가족이 뱀을 찾기 시작했다.

 

  침대 옆과 밑, TV 장 뒤와 밑 그리고 책상 아래까지 아무리 찾아도 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지만, 이대로 다시 잠을 청한들 다시 잠이 들 것 같지 않았다. 이런 걱정을 아셨는지 장인어른은 큰 옷장을 밀쳐보며 다시 찾기 시작하더니 이내 무언가를 손으로 집어 들어 올렸고, 난 장인어른의 손가락을 휘감고 있는 작은 녀석을 보고 내 살을 훑고 간 녀석이 정말 뱀이었다는 사실에 순간 몸의 주볏거림을 다시 한번 느꼈다.


  장인어른은 오랜 당뇨와 허리 디스크로 평소에도 늘 몸이 아프신 분인데, 이 순간만큼은 너무도 민첩했고, 재빠르셨다. 아이들 눈에는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히어로처보였을 것이다. 이렇게 잡은 뱀을 들고서 마당을 나가신 장인어른은 녀석을 조용히 산 쪽으로 보냈고, 이날의 해프닝은 내겐 잊지 못할 하지만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 건 아무리 놀래도 뱀이 나온 그 순간만큼은 너무 오두방정이 아니었나 싶은 후회가 밀려든다. 조금 의연한 태도를 보였어야 되는데,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 듯하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다음 설 명절에 내려갔을 때 난 장인어른의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표현을 안 하시고, 무뚝뚝하신 편이라 따뜻한 말이나 표현은  안 하시는데 명절이 오기 얼마 전에 당신들의 방과 아내의 방을 바꿔놓고 자식, 손주 맞을 준비를 미리 해놓은 것이었다. 지난번 뱀 사건으로 놀랐을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서. 말씀하시지 않아도 느껴지는 자식과 손주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영희 씨와 아이들과 행복하게 잘 살 테니 장인어른도 건강하게 오랫동안 곁에 계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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