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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l 02. 2020

프러포즈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내에게 빼앗은 시간을 되돌려 주고 있어요

아내와 난 6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연애했다. 처음 만났을 때야 결혼을 전제로 만나기엔 많이 어려 말 그대로 연애였지만 언제부터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할 순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당시 여자 친구였던 내 아내를 결혼할 상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난 은연중에 아내에게도 이런 내 의사를 계속 표현했고, 어린 마음에 아내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결혼까지 달려갔다. 연애할 때 아내에게 늘 내게 시집오는 게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했고, 결혼을 하면 어떻게 살자는 이야기를 신혼부부가 계획을 세우듯이 연애 기간 중의 대화 속에 끼워 넣고는 했다.


  하지만 난 연애 경험도 많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주변에 결혼을 해본 친구도, 선배도 별로 없었다. 단지 아내를 너무 좋아하고, 함께 살고자 하는 생각만이 가득했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해야 할 일까지 생략하며 결혼식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을 결혼 후에 알게 되었다. 난 여자들이 그렇게 바라고 바라고, 기다리는 평생의 멋진 한 순간을 그냥 생략하고 넘어간 것이다.


       "프로포즈"


  그땐 말하지 않았지만 아내도 아마 근사한 프로포즈의 순간을 생각한 적이 있지 않았을까. 변명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때 난 어렸고, 눈치도 없었고, 아내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고, 결정적으로 여자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 이렇게 야 할 중요한 통과의례 같은 일을 건너뛰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내게 남은 건 아내에 대한 미안함 뿐이었다.


  결혼은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략했던 프로포즈라는 이벤트는 아내의 소중한 시간을 마치 훔치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고, 결혼한 지 19년이 지난 요즘도 TV나 영화에서 프로포즈하는 장면만 나오면 장난꾸러기 아이가 짓궂게 장난이라도 거는 것처럼 아내는 내게  악의 없이 툭하고 멘트를 던지거나, 팔꿈치로 장난스럽게 툭툭 치는 행동을 반복했다. 하지만 아내의 멘트나 행동이 없을 때도 스스로 미안한 마음이 커 채널을 돌리거나, 자리를 잠깐 피하고는 다.


  "지수야, 엄마는 아빠가 당연히 자기랑 결혼해야 하는 것처럼 얘기해서 그 흔한 반지와 꽃다발 프로포즈 받아보지 못하고, 그냥 세뇌당해서 결혼했어. 넌 남자는 아빠 같은 남자 만나도, 프로포즈 안 하면 결혼은 절대 하지 마."


  아내는 딸아이를 붙들고 가끔 이런 농담을 하고는 했고, 좋은 얘기도 여러 번 듣다 보면 듣기 싫어지듯이 내게도 이 농담이 꽤나 불편한 이야기가 된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 19년을 살면서 아내에게 한결같이 해왔던 내 맘이 진심이었음을 아내도 알지만 여러 번 오지 않을 그 근사한 시간만은 추억 한 페이지쯤으로 기록해두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에겐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고, 기회를 뺐은 건 나였음을 싫든 좋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프로포즈라는 화려한 시간보다 더 찬란했던 추억의 시간들과 우리만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알토란 같은 새끼들이 있음을 알기에 프로포즈하지 않은 일을 농담 삼아 던지는 아내도, 잠깐 삐치더라도 금세 잊어버리는 내게도 앞으로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아까운 시간을 미쳐 챙기지 못한 지난 일로 아쉬워하며 상처를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는 못난 일을 우린 하지 않으려 한다. 오늘이 너무 좋은 우리들에겐 지나간 날들만큼, 앞으로도 중요하니까.

영희 씨, 나 매일매일을 프로포즈하는 마음으로 사는 거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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