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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나 좌절 없는 인생이 있나요

나의 자만과 안일함이 가져온 이직 실패 스토리- <EBS 나도 작가다>

by 추억바라기

<EBS 나도 작가다> 2차 공모전이 시작되고, 2개의 공모전 글을 발행했지만 아직은 내 성에 차지 않고 글에 대한 나의 갈증이 한 층 높아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주어진 시간은 하루가 체 남지 않았다. 난 나의 실패나 좌절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내 머릿속 기억 여기저기를 헤집고, 뒤집어 봐도 무언가 사람들이 궁금해하거나 호기심을 가질만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떠오르지 않는 글감에 머리만 무거워졌다.

'내 인생에서 정말 이렇게 실패나 좌절이 없었나'


이렇게 생각해보다 잠깐 '피식'하고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심각한 실패나 좌절이 없었던 삶이면 왜 머리가 무겁고, 뭘 힘들어하는지 오히려 행복한 삶이라 기뻐해야 할 일인데 공모전에 쓸 글 소재가 부족하다고 이른 아침부터 골머리 싸매는 내 꼴에 난 웃음이 났다. 굳이 남들이 궁금해하거나 호기심을 가질 이야기가 아닌 내 얘기를 쓰면 될 텐데 괜한 고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나 좌절이 없는 삶이 있을까?


툴툴 털고 이미 이겨낸 작은 실패일 수도, 아직도 이겨내지 못한 큰 실패나 좌절일 수도 있다. 지금 이렇게 공모전에 글을 써서 내기 위해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나에게는 아직도 이겨내지 못한 큰 실패나 좌절은 없었다. 하지만 내게도 작은 실수나 실패는 늘 있어왔고, 이런 실수와 실패를 발판 삼아 다음에는 같은 실수나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힘을 얻어왔다.


최근 나의 가장 큰 실패와 좌절은 이직에 대한 실패다. 몇 년 전부터 몸담고 있던 부서에서 날 불편해하는 몇몇 시선과 설 자리를 잃어간다는 자괴감에 스스로를 궁지로 몰았고, 탈출구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직이었다. 재직 중인 회사에서 7년을 일하면서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인지 온라인 구인, 구직 사이트의 내 이력서는 7년 전 커리어와 자기소개서가 마지막 업데이트 시점이었다. 마음을 굳히고 나자 난 바쁘게 7년간의 커리어를 정리했고, 조금은 신선했던 자기소개서는 지금의 내 위치에 맞는 경력자의 자기소개서 글로 탈바꿈을 했다.


이렇게 온라인 구인구직 시장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업데이트하자 기대했던 반응과는 달랐지만 여러 곳에서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고, 떨어졌던 자존감은 어느새 회복되었다. 꼼꼼히 그리고 면밀하게 인터뷰 제의 온 곳을 확인했다. 마침 그 당시 대전의 모 공공기관에도 경력자 모집 공고가 났고, 적합한 포지션 모집 공고라 크게 고민하지 않고 입사 서류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내 생애 공공기관 성격의 회사 지원은 처음이라 작성했던 입사서류도 여러 번 고민해서 작성했고, 최종 제출 마감 시간까지 작성했다 고치고를 반복했고, 마감에 임박하여 최종 제출했다.


공사 서류 제출 이후에 인터뷰 제의 온 여러 곳 중 한 곳을 선택했고, 인터뷰를 결정한 곳은 모바일 보안 회사였다. 인터뷰를 보려던 보안회사는 업무도 내가 원했던 업무의 연장선에 있었고, 회사 규모도 어느 정도 있는 곳이라 여러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다만 1차 인터뷰에 프레젠테이션 면접이 부담이 됐지만 수년 전까지만 해도 남들 앞에 나서 프레젠테이션이 익숙했던 나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터뷰를 결정하고 헤드헌터와 통화를 하면서 쉽지 않은 면접시간일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인터뷰는 생각했던 것만큼 아주 뛰어나진 않았지만 능숙한 프레젠테이션에, 면접관의 질문에 적절한 대응을 하며 무사히 마쳤다. 인터뷰를 보고 온 다음날 헤드헌터에게서 연락이 왔고, 헤드헌터는 1차 인터뷰 합격 소식을 내게 전했다. 이제 경영진과의 최종 인터뷰만 남았는데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입사가 최종 결정될 거라는 기쁜 소식까지 함께 전했다. 아내와 가족에게 당연히 될 거라고 말은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무척이나 긴장하고, 걱정하며 결과를 기다렸던 게 사실이라 무척이나 기뻤다. 2차 인터뷰 날짜를 잡고, 인터뷰 날을 기다리던 중 얼마 전에 입사지원을 위해 온라인 지원을 했던 대전 모 공공기관에서 서류전형 결과가 발표되었고, 결과는 '서류전형 통과'라는 기쁜 소식이었다. 사실 큰 기대를 안 했던 난 서류전형 통과만으로도 마치 공공기관을 입사한냥 뛸 듯이 기뻤고, 아내와 이야기하면서도 대전 공공기관과 모바일 보안회사 두 곳 모두 입사 결정이 난 이후의 일에 대한 고민을 했다. 김칫국을 열심히 마신 일이 됐지만.


공공기관이다 보니 NCS라는 공공기관 입사 시 필기시험인 국가 직무능력표준 필기시험을 치러야 했고, 난 시험 일주일 전에 관련 책을 사서 하루, 이틀 공부한 게 전부였고, 시험 장소가 대전이라 주말에 KTX를 타고 대전까지 시험을 보기 위해 다녀왔다. 시험을 보면서 어느 정도 더 자신이 생겼고, 시험이 끝나고 올라오는 KTX 열차 안에서 난 이미 조건과 미래 등을 함께 고민하며 짧은 열차에서의 시간을 그리고 오지 않은 미래를 즐겼다.


시험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바일 보안회사 2차 인터뷰를 봤고, 경영진이 면접관으로 나온 최종 인터뷰를 난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이해가 안 된다며 헤드헌터는 회사 인사팀에 인터뷰 결과에 대해 문의했지만, 최종적으로 들었던 대답은 그 회사 대표이사가 인터뷰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뿐이었다. 모바일 보안 회사 인터뷰 결과에 낙담한 나는 그래도 이직할 회사들 중에 선택지에 대한 고민거리가 줄었다며 위안을 삼았고, 필기시험 결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 공공기관도 필기시험 결과가 발표되었고, 기대가 컸었던 난 결과에 실망했고, 좌절했다. 7년 만의 이직 준비에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의 서류 통과가 떨어졌던 자신감을 키워줬고, 1차 인터뷰 결과가 오히려 독이 된 듯했다. 어차피 하루, 이틀 준비해서 통과할 필기시험이었으면 취준생들이 그리 책이 닳고 뚫리도록 공부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시험을 치르러 가는 KTX 안에서 책을 펴놓고 공부하는 지원자들을 보면서 난 떨어질 거라는 직감을 했어야 했다. 아마 이런 헛된 기대감이 오히려 2차 인터뷰에 안일한 태도를 보였던 것 같고, 실수가 없으면 입사 결정이 날 거라는 2차 인터뷰에서 그 회사 대표이사님은 그런 나의 태도나 자세를 본 게 아닐까.


그 날 이후 난 아직까지 이직을 못하고 재직 중인 회사에서 9년을 채우며 다니고 있다. 물론 그 당시와 같은 어려웠던 시기는 지났고, 부서도 바뀌었다. 하지만 그 날의 자세나 내 태도만큼은 지금도 후회가 된다. 2018년 나의 이직을 위한 도전기는 자신감과 오만에서 그릇된 결과를 가져왔고, 두고두고 내 인생에 좋은 잣대나 기준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는 무겁고, 힘든 이야기였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가볍고, 쉬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도입부에서도 얘기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겪은 실패와 좌절 스토리가 있을 것이고, 이런 실패와 좌절의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겪어본 당사자에게 맞닥 뜨려 진 그 실패에 대한 압박이나 중압감은 타인이 논하기는 어렵다. 다만 공감만 있을 뿐.


내 좌절의 무게와 깊이가 타인이 보기에 가볍고, 얕아 보이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앞으로도 내 삶에 실패와 좌절은 있겠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이겨낼 만큼의 좌절과 실패만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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