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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도 줄 건 줘가며 바래야죠

영광의 상처도 그냥 상처일 뿐이다

by 추억바라기

"대표님, 죄송하지만 더 이상은 함께 갈 수가 없습니다. 회사 그만둘게요."

"김 팀장, 다시 생각해 볼 수 없어? 내가 당신 수술할 때 수술비도 내줬잖아."

"대표님, 월급을 제대로 주셨으면 수술비도 마련해달라는 이야기도 안 했죠."


30대 열정을 쏟아부었던 회사에서 겪었던 일이다. 내가 가장 많은 애정을 갖고 있었던 곳이면서, 정말 큰 상처도 줬던 곳이다. 오랜 시간을 몸 담았던 곳이라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2006년 겨울 어느 날, 난 A회사에 다니고 계신 지인분의 소개로 'A회사' 면접을 보고, 과장으로 입사했다. 내가 입사할 당시에는 회사도 성장세였고, 신규 입사 직원들도 많이 늘어날 때라서 전체적으로 회사 분위기는 좋았다. 입사 초에는 추천해 준 지인에게 감사한 마음도 컸고, 회사에서 인정받고, 무엇이라도 보여주기 위해 그 시절 회사 성장에 도움이 되고, 매우 중요했던 금융 프로젝트 PM을 맡게 되었다. 힘에 붙임이 있었고, 많은 굴곡도 있었지만, 6개월의 긴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수하고 본사로 금의환향하였다. 그 해 우수사원이라는 타이틀에 고가도 팀 내 최고 고가를 받아서, 입사 2년 만에 회사에서 입지가 제법 커져갔었다.


입사 후 2년이 지나고 3년 차가 되었을 때 바로 위에 있던 팀장이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고, 관리자와

동료들의 추천으로 남들보다 빠른 나이에 팀장 직책과 1호봉 특진으로 차장 직급까지 받으며 내 인생은 남들이 이야기하는 승승장구(?) 그런 흐름으로 가는가 싶었다.

하지만 나의 성장과는 다르게 회사는 상황이 조금씩 나빠지고 있을 때였다. 회사의 상황이 처음으로 안 좋아진 건 입사하고 3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 당시 팀장이었던 나는 급여일 하루 전에 부서 관리자에게 호출을 받았고, 회사 상황이 좋지 않아 이번 달 급여가 정상적으로 지급이 어렵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대표님도 굉장히 직원들에게 미안해하고, 지금도 열심히 돈을 구하러 다니는 걸로 알고 있어. 아마 내일 아침에 전 직원들에게 대표님이나 부사장님이 직접 이야기할 거야."

"급여일에 이야기하면 직원들이 받을 충격이 더 클 텐데요. 아니 미리 얘기해주셔야 자금 상황 고려하여 신용대출을 알아보던 할 게 아닙니까?"

"급여일까지 최대한 대출을 알아보시려는 대표님 배려니 이해하고, 팀원들 동요하지 않게 잘 다독여."


사실 매니저 앞에서는 팀원들에 대한 걱정을 토로했지만, 정작 급여가 정상적으로 지급되지 않으면 나부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라 실상은 팀원이 아닌 나 스스로를 동요되지 않게 부여잡는 게 우선이었다.

급여일 아침, 직장생활 10년이 가까워 오는 동안 '회사 매출이 전년도보다 줄었다', '올해는 적자가 조금 발생했다', '경기가 안 좋으니 회사도 긴축재정이 필요하다' 등 일반적인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직원들의 경각심과 공유 차원의 말들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 내가 받을 월급을 제대로 못 받게 되는 일이 생길 거라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에이, 설마 월급을...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아침까지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채 10여 분도 지나지 않아 산산이 깨졌다. 부사장님이 직원들을 모아놓고 회사 사정을 설명하고, 3개월 동안 전 직원에게 급여의 50퍼센트만 지급할 계획이고, 회사 사정이 좋아지면 바로 미지급 급여는 지급할 계획이라고 사정을 이야기했다.

당장 외벌이인 나로서는 생활비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전세자금 대출을 빼고는 신용대출을 내보지 않았던 내 인생에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써졌다. 지금도 이때 만들었던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지만, 정말 한 번 빚을 내고 써 봤더니 갑자기 어마어마한 큰돈이 생기지 않는 한 상환할 대출 중에서는 가장 우선순위가 낮아져서 빚인지 내 돈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이때만 해도 이렇게 급여가 정상적으로 지급되지 않는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줄 알았다. 정말 착한 생각을 한 거다. 하지만, 처음이 어려웠을 뿐이지 회사의 경영진은 틈만 나면 똑같은 방법으로 미지급하는 급여의 횟수를 늘렸고, 마지막 퇴사 연도에는 미지급 급여의 금액도 꽤 큰 금액으로 변해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일부 정산도 하고, 다른 사탕도 줬기 때문에 잠깐 퇴사의 결심을 했다가도 다시 설득당해 열심히 해 보자는 마음으로 돌아오고, 다시 퇴사 결심하고 마음만은 몇 번 퇴사, 재입사를 반복했었다. 결국 A회사와의 인연은 5년을 기점으로 끝으로 달려갔고, 이직을 결심 후 최종 입사일까지 받아놓은 시점에 대표와 면담을 하였다. 물론 그 순간에는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되겠냐', '중요한 시점에 팀장이 퇴사하면 어쩌냐' 등등 당신이 할 수 있는 온갖 회유와 감정 어린 호소로 설득을 하려고 했었다.


"대표님, 죄송하지만 더 이상은 함께 갈 수가 없습니다. 회사 그만둘게요."

"김 팀장, 다시 생각해 볼 수 없어? 이런 상황에 팀원들 독려하며 조금만 버텨줄 수 없을까?"

"더 이상 팀원들 독려할 명목도 없고요. 제가 정말 힘이 들어서 안 될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나 한 번 살려주는 셈 치고 올해까지만 좀 더 해볼 수 없을까? 당신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 당신 수술할 때 내가 수술비도 내줬잖아."

"대표님, 월급을 제대로 주셨으면 수술비도 마련해달라는 이야기도 안 했죠."


하지만 나의 입장은 분명했고, 뜻을 굽히지 않았고, 대표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조금 더 안정적인 직장에서 하고 싶은 일 하며 월급 걱정만은 하지 않고 다니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순간만은 대표가 한 발짝 물러서 양보하는 듯 보였지만, 그 이후로도 대표의 회유와 설득은 계속되었다. 퇴사 인사를 위한 직원들과의 술자리란 술자리는 모두 쫓아다니며 나를 부담스럽게 했다.


결국 대표와의 독대에서 정말 좋은 기억만 가지고 회사를 떠나게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했고, A회사 대표는 그간 설득에도 꿈쩍하지 않는 내게 실망하고, 야속해서 독설을 쏟아부어냈다.

"김 팀장, 당신이 잘나서 내가 그리 함께 해달라고 붙든 줄 알아. 밖에 나가면 당신 같은 사람 널리고 널렸어. 착각하지 마. 그리고, 내가 당신이 옮기는 회사 가서 잘 다닐 수 있게 그냥 둘 줄 알아. 나 그냥 안 있을 거야."

대표의 독한 말들로 난 그날 이후 1주일간 말을 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증상이 생겼고, 병원에서도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 장애 증상이라고 밖에 얘기하지 않았다.


이날 이후 난 자연스레 업무 인수인계를 했고, 퇴사가 결정된 그 날 이후 대표와 따로 대화를 할 시간은 갖지 않았다. 퇴사 후 시간이 꽤 지나 상갓집에서 A회사 대표를 만났을 때 그는 여느 지인들과 별 차이 없이 나와 인사를 주고받았고, 난 그때 그 일을 떠올리며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사업가의 수완이라고 해야 할까 싶은 그의 처세와 뻔뻔함에 놀라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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