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자신 있게 하고 나서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다. 인터뷰 결과가 좋아서 당장이라도 입사했으면 좋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희망 연봉에 맞춰서 헤드헌터는 회사 인사팀과 나의 연봉을 협상했고, 내가 제시했던 금액보다는 부족한 금액의 연봉을 인사팀에서 제시했다. 다만 회사에서 제시한 연봉 이외의 수당에 대한 조건을 추가적으로 설명했다. 회사에서 제시한 조건은 팀장에 준하는 직책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직책, 직급 수당이 주어지는데 분기마다 얼마 정도의 수당이 분기 마지막 달에 제공된다는 이야기였다.
꼼꼼히 따져보니 분기 수당을 수령하면 희망연봉에 준하는 연봉을 수령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고, 너무도 이직하고 싶어 했던 회사여서 난 흔쾌히 이직을 결정하고, 그 회사로 출근했다. 입사일이 11월이었고, 12월까지는 처음 계획했던 팀이 꾸려지지 않아서 첫 분기 마지막인 12월에는 분기 수당을 제외한 급여를 받았다.
2월이 되어서 팀이 만들어졌고, 3월부터는 팀원도 있는 정상적인 팀의 구성이 갖춰졌다. 그 당시 맡고 있던 회사 일도 재미있고, 매니저와의 관계도 좋고, 특히 팀원들하고 끈끈한 팀워크를 유지할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계속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었고, 직장 다니는 사람의 가장 현실적인 급여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입사 때 약속했던 직책 수당이 3월에도 들어오지 않았고, 더욱 날 놀라게 한 사실은 그 직책수당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난 당장 당황스러웠지만 4월에 있을 연봉협상 때 무언가 변화가 있던가, 없어진 수당을 급여에 반영해 주던가 할 거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일에 파묻혀 조용히 또 한 달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사내 게시판에 이번 주에 연봉협상을 하겠다는 공고가 왔고, 각 부서의 부서장에게 대상자들과 연봉 계약서가 따로 전달될 거라고 메일이 왔다. 난 입사한 지 6개월이 되지 않았지만 처음 입사 때 약속받았던 수당도 있고 해서 타 팀의 부서원들이 부서장과 면담하고, 계약서에 사인할 때만 해도 내 차례가 올 거라고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타 팀의 부서원들의 계약서 사인이 끝났지만 부서장은 따로 면담 요청을 하지 않았고, 난 실망한 나머지 회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부서장에게 사유는 물어봐야 했고, 누락되었을 수도 있는 일이라 진위부터 확인하려고 면담요청을 했다. 처음에 부서장은 그건 수당이고, 연봉에 포함된 금액이 아니라는 원칙으로만 날 설득하려 했고, 난 헤드헌터와 콘퍼런스 콜을 하면서 직책에 합당한 수당을 회사로부터 약속받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최종적으로 부서장이 인사담당자와 통화 후 입사 전 약속받았던 내용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난 정말 뚜껑이 열렸다. 매니저에게 한바탕 쏟아붓고 나서 도저히 사무실에 앉아 일할 수 있는 기분이 아니었다. 난 손에 집히는 대로 내 짐을 가방 안에 넣고는 회사 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그리 회사를 나오면서도 난 그 순간의 화를 삭이지 못해 함께 지냈던 팀 동료와 술자리를 했고, 매니저의 저녁 자리 동석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며 나의 의지를 내비쳤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에서 나온 용기로 그리 행동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가 놀랍지만, 아찔한 순간을 무사히 넘기면서 매니저는 다음날 면담을 요청했고, 면담에서 대표 이사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입사 때 약속했던 직책 수당을 급여에 포함해 주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그 순간 나에게 쌓였던 화가 사그라들었고, 퇴사에 대한 걱정도 없어졌다. 또한 그 순간 매니저의 신뢰도는 바닥에서 급 상승해서 원점으로 복귀되었고, 간사하게도 앞으로 이 양반 믿고 계속 가면 되겠다는 신뢰도 생겼었다.
우스운 얘기지만 그 당시 관리자가 생각했던 나에 대한 가치가 아마도 이 맘 때가 최고조였을 것이고, 기대치 또한 이때가 가장 컸을 것이다. 지금은 쭈글쭈글해진 뒷방 취급을 할지는 몰라도 이렇게 큰소리치며 회사 문 박차고 나갔을 때 바지 자락 붙들고 잡아주던 시절도 있었다는 것이 즐겁다. 물론 연봉이 높고, 낮음으로 나의 가치를 매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갑을 관계에서 이때만큼은 내가 갑이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나 때는 말이야'를 두고두고 이야기할 추억거리 중 하나로 기억되는 에피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