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여행을 다녀왔었다. 아이들이 11살, 7살이었던 때라 둘이서 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였다. 커가는 아이들 뒷바라지와 우리 집 살림을 10년이 넘게 책임져왔던 아내에게 난 평소 한결같은 마음으로 애정 표현은 했지만 둘만의 시간을 가질 일은 흔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물론 처남과 함께 살았던 때라 주말 저녁에는 처남에게 아이 둘을 맡겨놓고 둘이서만 데이트하는 시간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부부들에게는 둘만의 1박의 의미는 남달랐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소중했지만 나에겐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했고, 좀처럼 자주 오지 않는 기회다 보니 더욱 애틋하고, 그리움의 시간이었다.
이런 나에게 아내와 둘만의 1박 2일 소중한 여행 기회가 주어졌다.
결혼기념일도 한참 지난 늦은 가을 어느 날, 함께 직장생활을 했었던 후배가 리조트 숙박권을 선물했고, 때마침 주말이라 생각지도 못하게 주어졌던 여행의 기회라 기분은 더 좋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들과 함께 먹고, 즐길 수 있는 리조트 근처 여행지와 식당 등을 검색했고, 그렇게 난 가족여행 계획을 차곡차곡 준비했다. 하지만 이렇게 준비하던 나에게 뜻하지 않은 기쁜 소식이 들렸고, 아이들 이모가 주말에 와 있을 테니 둘만 여행을 다녀오라는 이야기였다. 큰 아이가 태어난 후 10년을 셋이서, 그리고 넷이서 다니던 여행을 아내와 둘이서만 갈 수 있는 여행의 기회가 온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에 마음은 설렜고,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도 됐다. 아내와 둘이 보내는 이틀의 시간이 너무 설레고, 기대됐지만 이틀 동안 아내와 나 없이 아이들이 지내는 건 처음이라 아무리 이모와 외삼촌이 함께해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도 이렇게 엄마, 아빠만의 여행을 찬성하는 눈치였고, 딸아이는 워낙 이모를 좋아하니 잠시 했던 걱정도 어느새 사그러 들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우연하게 갖게 된 10년 만의 외출을 행복하게 준비했고, 우리만의 시간을 보낼 날들을 손꼽아 기다렸다. 여행 당일 우리는 아침에 리조트로 출발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마음만은 일상에서 훌쩍 벗어나 또 다른 시간이 흐르는 우리의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갔었던 홍천 비발디파크는 아직 스키 시즌 전이라 스키장 운영은 하지 않았지만 곧 다가올 스키 시즌을 맞아 열심히 눈을 뿌리고,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렇게 갔던 여행지에서 우린 따뜻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고, 리조트 주변을 산책했고, 리조트 안에서 운영하는 영화관을 찾아 영화를 봤다. 오랜만에 나온 외출이라 우린 둘만의 시간을 산책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낙엽도 밟았다가, 눈도 밟았다가 가을과 겨울을 오가며 우리에게 허락된 그 시간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즐겼다. 날씨는 제법 추웠지만 아내의 손을 잡은 내 손과 내 가슴만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야외에 있는 간이식당에서는 맛있는 파전 냄새가 코를 괴롭혔고, 장작 타는 냄새에 취해 발걸음은 어느새 야외 식당 앞으로 가고 있었다. 우린 식당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 아내와 막걸리 한잔에 맛있게 기름진 전으로 배를 채우며 우리만의 이야기로, 추억으로 시간을 가득 채워나갔다. 동계 시즌도, 하계 시즌도 아닌 리조트에서 할 수 있는 놀이라고는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그 찰나의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고,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해 붙들어놓고 싶을 만큼 너무도 아까웠지만 금방 지나간 우리 시간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하니 빠르게 느껴지는 그 시간마저도 내겐 너무도 소중했다.
그 날 이후 이런 둘만의 여행의 기회는 흔하게 오지 않았고, 오히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시간의 소중함은 더 깊게 와 닿았다. 어느덧 내년이면 우린 부부의 이름으로 살아온 지 20년이 된다. 난 늘 내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생각이다. 20년 되었지만 변한 건 아내와 나의 육체지 우리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길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