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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04. 2020

내 아내를 누가 말려

아파트 단지 후문 입구부터 중문 입구까지 아내는 심고, 또 심는다

어머, 예뻐라. 좋은 일 하시네요. 복 받으실 거예요


아내를 가장 아내답게 하는 건 아마도 아내가 좋아하는 식물을 가꾸고, 키우는 일이다. 아내는 신혼 반지하 집에 살 때부터 좁디좁은 연립에서도 그리고 지금처럼 넓은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언제나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 맞게 식물을 키워왔고, 이사로 집을 옮기면 항상 근처 꽃집을 먼저 알아보고는 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니 아내는 말 그대로 식물 박사가 다 됐고, 상태가 좋지 않은 즉 곧 말라죽을 식물들도 아내의 손을 거치면 열에 아홉은 다시 생명의 빛을 찾아 영롱한 초록빛을 보내곤 했다. 이런 아내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식물을 가꾸고, 키우는 스케일을 키웠다.

 

  다육이처럼 작은 식물부터 커다란 화분에 백합 구근까지 주로 베란다나 집 안에 화분을 심고, 가꾸던 아내에게 색다른 관심이 생겼다. 아내의 말로는 집 주변이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투리 땅이나 노는 땅에 꽃을 심고, 가꾸는 형태의 정원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했다. 전문 용어로 '게릴라 가드닝'이라는 용어를 쓴다.


  이렇게 꾸미기 시작한 게릴라 정원으로 아내의 정원은 반경이 100미터는 족히 된다. 아파트에 사는 우리가 정원이 웬 말이겠냐마는 아내는 이사를 온 이듬해부터 좋아하는 꽃씨를 아파트 단지 후문 입구 도로변 자투리 땅에 뿌려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고, 한 해가 더 지나 단지 옆 중문 화단에 꽃밭을 꾸미기 시작했다.


  후문 단지 입구 인도를 따라 나란히 핀 꽃들로 아내는 자신감이 어느 정도 넘쳤고, 중문 화단에 꾸민 꽃밭에도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자 어느덧 과꽃과 국화가 만발하여 지나다니는 아파트 주민분들의 눈과 코가 호강하기에 충분했었다. 가끔 아내와 함께 아침이나 저녁에 꽃밭에 나가 일을 할 때면 지나다니는 주민분들의 따뜻한 응원과 감사의 말을 들을 때도 종종 있었다.

  아내는 이렇게 꾸민 꽃밭에 대한 애착이 무척이나 강하다. 재작년에는 멋지게 성공시켰었지만 작년도 , 그리고 올해도 키우던 꽃밭을 잃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심었던 꽃씨들이 아내의 정성으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때쯤 도로변을 정리하던 공공근로분들에게 초토화가 된 것이다. 물론 그분들은 그분들의 일을 한 것이지만, 아내는 꽃을 피운 생명을 그렇게 잡초 뽑듯이 뽑아간 것이 너무 아쉽고, 그리고 속상했다.


  작년에 그 일을 겪고서도 아내는 또 그곳에 꽃씨를 심으려고 했었고, 처음에 난 아내를 말렸지만 우리가 사는 주변을 예쁘고, 조금 더 아름답게 꾸미려는 아내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런 의지로 올봄에도 다양한 꽃씨를 심었고, 저녁마다 물을 나르며 정성으로 꽃밭을 키웠다. 이런 아내의 정성으로 후문 화단의 꽃들은 하나둘씩 꽃을 보이기 시작했고, 나의 출근 길도 한결 가볍고 밝아진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후문 인도변 꽃밭은 작년과 똑같이 꽃들이 뽑혀 나갔고, 한동안 아내는 실망감과 아쉬움이 얼굴 가득 묻어 나왔다. 이런 아내에게 난 더 이상 그 후문 꽃밭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고 권했다. 하지만 아내는 얼마 전에 꽂이 심기가 가능한 채송화를 많이 들고나가 다시 그 후문 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난 아내를 다시 한번 말릴까도 싶었지만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식물을 심고, 가꾸는 모습이 아내다운 모습이고, 아내답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에 아내의 기쁨과 행복을 지켜보기로 했다.

 

오늘도 출 퇴근길 후문 밖 인도를 지나면서 아내가 심은 채송화들이 무사한가 보는 게 내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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