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지수가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듯해요. 안색이 많이 안 좋은데 집에 보내도 될까요?"
딸아이가 학교를 등교한 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난 무렵 아내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아 든 아내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등교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딸아이가 체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집으로 귀가 조치하겠다는 선생님의 전화였다. 몸이 안 좋아서 귀가 조치해도 되냐는 선생님의 말에 아내는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달리 확인할 방법도 없어서 그렇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선생님과 통화 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프다고 했던 딸이 그래도 걱정이 됐던 아내는 딸아이에게 많이 아프냐고 물었지만 딸아이는 별 얘기 없이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말없이 앉아서 한숨만 쉬는 딸아이의 안색을 보니 그다지 아픈 구석은 보이지 않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아내는 아이의 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그쳤다.
"저기요 따님.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죠?"
"......"
여전히 답하지 않고 버티던 딸아이를 아내는 가만히 두지 않고 조금은 부드럽게 구슬리며 답을 기다렸다.
"지수야,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엄마가 알아야지 도움을 주지"
"이잉~, 엄마 수행 때문에 짜증 나요"
전날 늦은 밤까지 수행 준비하던 딸아이의 모습을 기억하던 아내는 이유가 더 궁금해 아이에게 더 캐물었다.
"수행 때문에? 오늘 수행 본다고 하더니 수행 잘 못 본 거야?"
"아니, 아예 수행도 안 보고 조퇴했어요"
이야기인즉슨 딸아이는 전날 열심히 인권문제에 대한 사례 관련 수행과제를 착실히 준비를 했고, 특별히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다음날 학교에 등교했다. 하지만 등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권문제 중 딸아이가 준비한 사례는 선생님이 사례 중 들지 말라고 했던 예외 사례임을 뒤늦게 알게 됐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얘기한 것이 아닌 해당 과목 부장을 통해 전달한 사항이라 딸아이처럼 전달받지 못한 아이들이 제법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딸아이는 2교시 수행 시험을 볼 자신이 없었고, 그렇다고 수행 시험을 망칠 수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당연히 수행 시험을 보지 않고 다음을 기약할 방법을 찾았고, 그 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학교를 조퇴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 순간에 딸아이는 실제 아픈 것과 유사한 증상이 발현되었고, 선생님도 딸아이가 실제 아프다고 생각하고 조퇴를 허락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내는 딸아이가 한 행동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오늘 아이가 한 행동이 단순히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스트레스와 압박으로 자신의 몸이 정말 좋아지지 않은 것 같은 상태가 느껴질 정도로 그 상황에서 자신을 몰아세웠다는 생각에 걱정스러움은 더 컸다. 도대체 스스로 만든 스트레스와 압박이 얼마나 심했길래 안색도 안 좋아지고, 어지럽기까지 할 정도였을까 싶었다. 선생님이 직접 눈으로 보기에도 낯빛도 창백했고, 정말 많이 아파 보였으니 지체 없이 집으로 돌려보냈으리라.
아이의 감정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와 난 공부를 잘해야 한다던가, 좋은 학교로 입학을 해야 한다던가 하는 욕심을 부린 적이 없다. 특히 둘째라는 특혜로 딸아이에게는 그런 표현을 더 하지도 않았고, 당연히 아이도 그렇게 자라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가끔 이런 일을 겪을 때면 환경이나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진심으로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아이의 얘기를 진심을 다해 듣고, 내 생각을 터 놓고 얘기할 필요가 있는 듯싶다. 알게 모르게 얘기하는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말이다.
특별히 누굴 이겨보겠다는 생각을 마음먹고 해 본 적은 없다. 다만 누구에게도 뒤쳐질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았다. 그만큼 지기 싫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듯하다. 내가 어릴 적에는 한 동안 대학에 가지 않으면 꿈을 꾸기도 어려울 것 같은 분위기가 만연한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 우리 아이들도 그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겠지만 예전을 생각하면 대학과 취업이 바로 연결고리에 있는 건 당시가 더 심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부터 경쟁이라는 게 일상이었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게 특별한 꿈 없이 그냥 책상에 앉아 버티는 것이 꿈을 꾸기 위한 발판이고, 과정이라는 설득을 당했다. 답답했던 현실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고작이었다. 실제 현실이 다르다는 것은 나중에 그 후로도 꽤나 시간이 지난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땐 그게 전부였다.
그런 십 대와 이십 대를 보내서 그런지 아이들에게는 경쟁을 원하지 않았고, 경쟁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과는 다른 이상임을 두 아이가 커가면서 알게 됐다. 어느 날엔가 아이들에게 입으로는 경쟁에서 뒤처지지 말라고 이야기하진 않지만 내 마음속엔 어느 순간 뒤처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내 머릿속을 속이고 있었다. 아이들이 이런 내 마음을 알기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한 번씩 툭툭 던져지는 말 한마디 속에서 우리 아이들도 경쟁에 익숙해져 가는 게 아닌가 싶다. 경쟁하지 않고 사는 삶이 어떤 삶이고, 인생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경쟁에서 상처 입고, 고통을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만일 우리 아이들이 꼭 경쟁을 해야 하는 삶이라면 행복한 경쟁을 했으면 하는 아주 큰 바람을 가져본다.
어릴 때 듣기 싫었던 소리가 간혹 있었다. 내 부모님에게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는 아니지만 간혹 학교에서, 가끔은 친지들에게서. 누구는 학교에서 공부를 그렇게 잘한다며. 철수는 언제쯤 공부 잘한다는 소릴 들을까. 경쟁의 시작은 아주 어릴 적,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었다. 늘 함께 놀았던 친구가 그 경쟁의 굴레에서 붙잡고, 밀쳐야 하는 상대임을 알면서 우린 그 경쟁에 익숙해져 버렸다. 이제는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오늘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그 시절 초등학교부터 해나가던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앞으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긴 어렵겠지만 다만 상처가 되고, 고통이 커지는 경쟁은 아니었으면 한다. 그 굴레에 우리 아이들이 함께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만큼 내일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