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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는 또 다른 아내 그리고 내가 있었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보다는 오늘을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해

by 추억바라기
젊은 총각 사진 한 장만... 젊은 총각인 줄 알았는데 잘못 봤네. 미안해요



얼마 전 어린이날 연휴와 개인 연차 휴가를 붙여서 나흘이나 쉴 수 있는 긴 휴가를 맞았다. 회사를 옮기고 나서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달콤한 휴식 같은 연휴였다. 충전이 필요했다. 다행히 우리 집 아이들은 5월 5일이라고 특별한 연휴를 즐길 나이는 지났고, 아내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외출을 한 상태였다.


오랜만에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로 했고,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을 거듭했다. 마지막까지 영화관을 찾을까, 자전거를 탈까 고민 끝에 자전거를 타고 기분 좋은 5월의 날씨를 즐기기로 했다.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내 개인 소유의 자전거가 없는 관계로 호수공원 렌털 샵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기로 했다.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던 라이더들 덕분에 내가 탄 자전거는 제 속도를 내며 호수공원을 크게 돌 수 있었다.


흐르는 땀이 기분 좋게 바람을 맞을 때는 그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벤치에 앉아 마시는 시원한 커피 한 잔은 그 어떤 멋진 카페보다 근사한 풍경과 분위기를 선물했다. 나무 사이로 내 시선에 들어온 파란 하늘과 빛나는 햇살까지 완벽하게 하루를 즐기기에 딱 들어맞는 타이밍이었다.


드넓은 트랙을 시원하게 자전거로 가르다가도 고양시대표적 테마인 꽃들을 만날 때면 밟던 페달도 어느새 천천히 돌기 시작했고, 잠시 머물다 가고 싶을 때면 잠깐 타던 자전거를 끌며 오롯이 꽃과 바람을 즐기기를 반복했다. 일산 호수 공원만의 장점은 바로 꽃의 도시답게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이 반가웠고, 다양한 꽃 축제에 어디든 자리 펴고 삼삼오오 모여 그늘에서 일상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한참을 자전거로 돌다 멈춰 선 곳은 얼마 전 고향 꽃 박람회에서 세워놓은 커다란 방호벽 같은 높이의 기구물이었다. 다양한 식물들과 꽃들을 심어 마치 꽃벽, 꽃담을 연상케 하는 구조물이었다. 그 구조물 앞에 잠시 서서 제대로 감상에 젖을 때쯤 뒤쪽에서 나이가 제법 있으신 노부부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들으려고 애쓰지 않았지만 두 분의 대화가 내 귀로 스며 들어왔고, 두 분의 대화에 내가 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저기 앞에 있는 젊은 총각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해봐요. 둘이 같이 사진 찍었던 게 언제예요"

주변에 젊은 사람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기에 노부부가 얘기하는 젊은 총각이 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대화를 하는 노부부가 불편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부탁할 수 있게 두 분 근처로 슬며시 이동했고, 그 사이 얘길 꺼냈던 노부인은 부탁을 하려고 내쪽을 보며 말을 걸어왔다.

"저기, 젊은 총각 우리 사진 한 장만 찍... 젊은 총각인 줄 알았는데 잘못 봤네. 미안해요"

'잘못 봤다'는 말에 조금은 씁쓸했지만 두 분도 당황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 분 사진 찍어 드릴까요? 여기 앞에 포즈 잡으시고 폰 주세요"

당황한 눈빛도 잠시였고, 두 분은 고맙다는 인사 뒤에 노부인의 스마트폰을 내게 내밀었다.

"사진 찍을게요. 하나, 둘, 셋~. 한 장만 더 갈게요"


그렇게 사진을 찍고 나서 노부인은 남편의 포즈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머쓱해하는 남편을 타박했고, 자전거를 다시 타고 이동하려던 난 그 광경을 보고선 노부인에게 돌아가 원하는 포즈로 다시 찍어준다고 말했다. 금세 밝아진 노부인 표정을 보며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선 다시 두 장의 사진을 찍었고, 찍은 사진을 보고서는 그제야 노부인은 맘에 드는 표정을 지었다. 노부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난 그 장소를 벗어날 수 있었다.


지난주 '싸이월드'의 복원 소식에 앱을 설치하고, 계정 복구 진행을 마무리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서비스라 과거 싸이월드가 서비스 중지를 통보했던 때에도 사진 백업을 전혀 하지 못해서 못내 아쉬웠었다. 다행히 서비스가 복구된다는 소식에 이번에라도 과거 사진들을 백업하고, 그 시절 아내와 나의 모습도 지금의 우리 모습과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 궁금했다. 회원 계정 복구 후 며칠이 지나서 사진 복구가 완료되었다는 앱 알림이 스마트폰으로 전송됐다. 큰 기대 없이 들어간 싸이월드 사진첩은 너무도 신기했고, 재미있었고, 반가웠다.


500여 장의 사진들이 복구되었고, 들여다본 사진들에는 우리의 결혼부터 십 년 가까운 소중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내도, 나도 사진 속의 얼굴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고, 너무도 어려 보였다. 길게는 20년이 더 지난 사진부터 마지막 사진들도 14년이 훌쩍 넘은 사진들이었다. 재미로 복원했던 싸이월드의 사진을 보는 동안 마음속 그리움은 그 시절로 우릴 데려간 듯했고, 사진 한컷, 한컷을 보면서 당시의 얘기를 하며 한참을 웃을 수 있었다.


"우리 민수 족발 뜯는 사진 좀 봐요. 어머, 곰돌이랑 같이 찍은 사진 보여주면 아들도 놀라겠네요. 이 사진 기억나죠. 창경궁 갔을 때" 큰 아이가 태어나면서 열심히 사진 업로드하며 즐겼던 사이트라 아들 사진이 많았다. 한 참 아들 사진만 재미있다고 들여다보던 아내가 자신의 과거 사진을 보며 당시를 그리워하는 듯 말을 했다.

"이때만 해도 피부가 너무 깨끗하고 좋았네요. 저때만 해도 얼굴 볼 살이 제법 있었는데... 철수 씨도 정말 어려 보이네요" 아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 시절의 젊은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함께 사진을 들여다보던 난 아내를 기분 좋게 해 주기 위해 그 시절 얘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오죽하면 저 때 회사 동료들과 선배들이 애 둘이 결혼해서 애 낳고 키우는 것 같다고 그랬잖아요. 소꿉놀이하는 것 같다고. 그래도 난 과거의 추억도 좋지만 우리 그때 힘든 일이 많았잖아요. 그때만 해도 요즘 같은 생활을 상상이나 했나요. 난 그 시절 젊음과 지금 같은 행복한 중년을 서로 바꿨다고 생각해도 아깝지 않아요"

"맞아요. 그때 우리 힘든 일이 많았죠.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행복을 누릴 대가치고는 작은 대가를 치른 거네요"

아들 사진을 다시 둘러보다가 아내는 이제 갓 돌을 지난 아들이 지금도 자기 방에 있는 곰돌이를 처음 만나 찍었던 사진을 찾았다. 그 사진과 아들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찍었던 아내 사진을 함께 아들 톡으로 보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생활 첫 MT를 가던 아들이 톡을 읽고 답을 보냈다.

'아들 네 곰돌이 이땐 윤기가 좔좔 흘렀는데. 인형도 20년 차쯤 되니 늙는구나'

'이게 내 방에 있는 그 곰돌이 맞아요?'

'응 맞아. 참 엄마 18년 전 사진인데 많이 젊었지?'

'엄마 예전이랑 하나도 안 변했어요'

아들도 곰돌이도 이젠 스물이다

기특한 아들이다. 안 그래도 아내는 젊은 시절 자신의 사진을 보며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는 순간이었는데 엄마 마음을 이리도 잘 헤아려 주는 아들을 보니 뿌듯해진다. 다 날보고 자라서 그런가 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알아서 멘트 하는 달달한 아들이라니. 아내도 그 톡을 보며 흐뭇해한다.


지나간 세월을 돌릴 수는 없다. 후회 없이 살았던 삶이 아니라도 그래서 정작 후회가 생기더라도 현실이 행복하고, 돌아볼 추억이라면 그걸로 충분히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에겐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다. 다만 돌아가고 싶다고 갈 수 없다는 게 평범한 우리의 현실이다. 어제의 추억은 마음으로 즐기고, 오늘의 행복은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오늘을 또 후회할 수 있으니 충분히 열정적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또 다른 후회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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