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대부분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좋아한다. 우리 애들도 강아지를 좋아한다. 하지만 성별이 다른 두 녀석은 강아지 좋아하는 강도가 다르다. 딸아이를 키우다 보면 유독 아들 키울 때와는 다르게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 한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앞에 개만 지나가기만 해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딸아이다. 어찌할 바를 몰랐단 얘긴 너무 좋아서가 아닌 너무 두려워서였다. 아주 어릴 적 동네에서 산책 중에 마주쳤던 강아지가 딸아이를 위협했던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개만 보면 '얼음'이 되어버린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강아지를 보면 이미 몸부터 굳어서는 내게 착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하던 일이 다반사였다.
이랬던 딸아이가 어느 날엔가부터 강아지만 보면 너무 예쁘고, 귀엽단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아주 노골적이다. 아내에게 키우자고 툭툭 내뱉는 통에 아내는 번번이 거절도 귀찮다고 할 정도다. 한두 해 전부터는 햄스터가 귀엽다고 아내를 귀찮게 한다. 아내는 딸에게 네가 관리 잘하고 잘 키울 거면 모르지만 딸아이 성격상 그건 무척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아내는 마음 아프지만 번번이 거절이다. 마음 상해하는 딸아이 편을 나라도 들어주고 싶지만 아내에겐 내가 죄인이라 슬쩍이라도 딸아이 편을 들 수가 없다.
사실 이런 사고는 나부터 쳐놓은 상태라 위험 수위를 넘지 않으려 애쓴다. 십 년 전 갑자기 열대어가 너무 예뻐서 아내를 설득해 작은 수조부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열대어 키우기였지만 자주 물도 가려주고, 관리를 열심히 한 덕에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새로운 수조 세트도 받았다. 나름 꾸준히 관리도 잘했더니 어느새 수조도 두 개가 되었다. 물고기를 키우며 돈도 많이 들었지만 우리 가족 울고 웃을 일이 몇 가지는 더 생긴 것 같았다. 집에 있는 열대어 중에는 이미 평균수명을 훌쩍 넘어 6년을 산 녀석도 있고, 지금 남아있는 열대어들 대부분이 3년 이상은 살아있는 것 같다.
이렇게 진심이었던 취미도 시간이 지나니 조금은 귀찮아지고,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물도 자주 못 가려주고, 때로는 먹이 주는 것도 잊어버리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조 청소나 관리는 몇 년 전부터 아내의 일이 되었다. 여섯 살이 넘은 우리 집 최장수 열대어는 2년 전쯤 생사의 갈림길이라고 할 정도의 위기 순간을 맞은 적이 있었다.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바닥에 누워서 지냈고, 먹이도 거의 먹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 이랬던 녀석을 지극 정성으로 먹이고 관리해서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 놓은 것도 아내였다. 밥도 입에 갖다 대서 떠먹이듯이 했고, 물 관리도 철저하게 따로 해줘서 이젠 여섯 살 열대어 같지 않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날 이후 수조 안에 있는 녀석이 아내만 보면 눈을 맞춘다. 물고기가 머리가 나쁘다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을 살려낸 아내의 얼굴은 아마 각인된 듯싶다. 어찌 보면 꼬리(지느러미)까지 흔드는 느낌이다. 이 모습에 예전엔 좀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에 포기한 지 오래다.
요즘도 틈틈이 수조 관리를 하려고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번번이 아내가 하고 난 뒤 난 매번 뒷북이다. 이 주 전에는 큰 수조 하나를 버렸다. 청소를 하지 않고 방치해놓은 것도 그렇고 수가 많지 않은 작은 물고기들이 쓰기에는 쓸 때 없이 넓기만 했다. 그래서 작은 녀석들은 한자 반(45Cm) 짜리 어항으로 이사했다. 물론 그 이사도 아내의 몫이었다. 이런 수고를 하게 만든 나로서는 딸아이 편을 적극적으로 들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릴 때는 뭘 사다가 키우는 걸 꽤 좋아하는 성향이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부터,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다 아기 오리를 사달라고 졸라 한 동안 아기 오리들도 마당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아마 오리 새끼를 샀던 시절엔 안데르센 동화책을 열심히 읽던 시기였다. 아마도 읽던 책중에 '미운 아기 오리' 책이 있었던 게 어머니에겐 화근이었다. 게다가 머리가 꽤 크고 나서도 애완동물 사랑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느 날 토끼가 너무 예뻐 보여서 작은 토끼 한 마리를 사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웠던 기억도 난다. 아마도 미니 토끼 품종이라고 속아서 샀는데 나중에는 토기 우리가 작을 정도로 너무 살이 찌고 커져서 어머니가 어디 농장에 가져다줬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털 날리는 동물들을 싫어하셨는데 따지고 보면 개나 고양이 말고는 집에서 키울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집에 들였다. 애완동물 키우는 걸 싫어하셨는데 아들 때문에 많은 동물들과 함께 지냈고, 보호자 역할을 싫든 좋든 해야 했다. 내 어린 시절에는 동물병원이 흔하지 않아 병아리나 오리는 그리 오래 살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것으로 기억한다. 번번이 겪으면서도 이런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지 슬픔은 매번 찾아왔고, 자식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 어머니는 데리고 온 동물들에게 더 진심이셨다. 지금 아내를 보니 내 어머니의 그랬던 시절이 생각이 난다. 아내 또한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이 싫어 딸아이의 애완동물 키우는 것에 반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돼, 지수야, 안된다고 했지. 잠깐 이쁘다고 책임지지 못할 행동을 하면 안 돼"
"나 책임질 수 있는데. 왜 엄마는 안된다고만 해요"
"나중에 너 독립하면 그때 니 네 집에서 키워. 우리 집에서는 안돼"
"엄마 미워. 나 집에 데려다줘 우리 엄마한테 데려다줘요"
"또 스텝맘 타령이네. 그건 아빠한테 물어봐. 엄마도 내가 첫 번째인 줄 알고 시집왔어"
오늘도 아내는 딸아이와 이 애완동물 문제로 거절을 반복한다. 게다가 요즘 둘이 말만 하면 '스텝맘' 타령이다. 누가 들으면 내가 어디 가서 큰 실수한 줄 알겠다. 이거 큰일 날 모녀라는 생각이 들지만 두 사람 모두 진심이 아니기에 오늘도 이 언쟁에 우린 웃음이 난다.
"스텝맘! 엄마가 내 스텝맘이라도 우리가 보통 친한 사이는 아니니까 내가 엄마 좋아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