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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 추실 수 있으세요?

위로와 공감을 오늘도 드라마 속에서 만났다

by 추억바라기

"엄마, 아빠 또 울어요"

"그러게, 아빠가 나이 들어서 더 수도꼭지가 됐네. 예고 보니 다음 주엔 더 울겠네"


정말 오랜만에 힐링 드라마를 본 것 같다. 매주가 감동이었고, 매회가 공감이 됐다. 한 시간 남짓한(혹은 그 이상) 시간이 너무 아쉽게 느껴질 만큼 한 참을 웃겼다가 또 울리기를 반복하는 이상한 드라마였다. 10주간의 대장정이 끝나서 너무 아쉬운 마음에 오늘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얘길 하려고 한다.


넌 이제 할망이랑 살 거라!

네 아방은 흙 될 거여.

병원서 못 나온다게!

니네 어멍은 너 없이 혼자 살련

할멍이 놔줄 켜.

너 아방 어멍도 안 올 거라.


- 우리들의 블루스 17회 춘희 대사 中 -


정말 많이 울었고, 어린 은기가 너무 귀여워 아빠 미소를 연신 보냈던 회차다. 16화, 17화에서 이어지는 배우 고두심과 기소유 어린이의 아웅다웅하는 따뜻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극 중 은기 아빠의 사고로 은기는 할머니 춘희(고두심)의 집으로 와 2주간 지내게 됐다. 자주 보지 않았을 할머니와의 동거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지 할머니와 손녀가 보여주는 케미는 보는 내내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티키 타카하는 손녀와 할머니의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이 그냥 조용히 반복되는 이야기가 그려지길 바랬다. 그렇게 아들의 사고 소식을 모른 채 은기와의 작은 사건사고로 주어진 방영분이 끝나지 않을까 아주 작은 기대를 해봤다. 하지만 지나갈 줄 알았던 작은 바람은 나의 생각을 빗나가고 말았다.

아이의 마음으로 숨긴다고 숨겨질 일은 아니었다. 아들이 의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춘희의 슬픔은 세상에 자식을 둔 부모라면 그 슬픔이 얼마나 클지 감히 짐작이 될 만큼 살아 숨 쉬는 연기를 선보였다. 춘희가 토해내는 슬픔을 몸으로 느낄 만큼 소름과 울음이 함께했던 순간들이었다. 옥동(김혜자)이 아들(만수)의 회복을 빌면서 돌탑을 쌓았다가 다시 위급하다는 소식에 쌓았던 돌탑을 부스며 분풀이를 했다. 그러고는 돌아서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쓰러뜨렸던 돌탑을 다시 쌓았다. 그 순간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알기에 작가와 연출가의 세심함에 또 한 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또 은기가 소원했던 백 개의 달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고, 춘희 아들 만수의 쾌유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비는 간절한 바람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동석(이병헌)과 옥동(김혜자)의 에피소드 또한 많은 눈물과 감동을 안기며 그들이 왜 배우여만 하는지 존재의 이유에 대한 명확한 답을 보여줬다. 거기다 시의적절, 요소요소에 어울리는 적절한 OST까지 완벽하다는 찬사를 아끼고 싶지 않은 작품이었다.


우리들의 블루스. 10주 동안 우릴 울리기도 웃게도 했다. 연기 내공 합이 백 단이 넘는 어마어마한 배우들 출연만으로도 기대감이 꽉 찬 드라마였는데 노희경 작가라는 휴머니즘과 로맨스 대가의 스케치로 내 인생 드라마가 완성됐다. 빠지지 않고 전편 본방 사수 오랜만이었다. 주연급 배우들의 대거 출연, 옴니버스식 같은 각각의 이야기. 어딘지 산만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전체 큰 퍼즐에서 나뉜 짜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내며 서로 다른 이야기가 종국엔 하나의 큰 이야기로 완성됨을 보면서 작가에게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글도 글이지만 배우들이 없었으면 세밀한 감정들까지 콕콕 찌르는 이런 드라마는 완성될 수 없었다. 최고령 김혜자 배우님부터 막내 은기역의 기소유 배우까지 정말 각각의 역할에 최적의 조합이다. 이런 얘깃거리 중에 단연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대단한 연기력을 선보인 건 이병헌 배우다. 글로벌 스타이고, 이미 많은 영화에서 그를 한국 대표 배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난 이 드라마에서 정말 연기 잘하는 한 배우를 본 것이 아니라 극 중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동석이라는 껄렁하지만 속은 한 없이 깊고, 표현은 무뚝뚝하지만 무엇보다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한 그냥 한 사람을 봤다. 그는 그냥 이동석 그 자체였다. 이런 배우 한 분 한 분의 역량과 섬세한 연출 그리고 뛰어난 스토리와 공감이 어우러지니 당연히 명작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살면서 우린 여러 장르의 드라마, 영화들을 만난다. 다양한 장르 속에서도 깊은 여운을 오랫동안 남기는 이야기들이 있다. 특히 자신의 처지나 상황과 비슷한 스토리를 주요 줄거리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만날 때면 큰 공감을 갖고 오랜 시간 행복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마치 자신이 하지 못한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서, 또 그런 주인공들의 성장을 보며 뿌듯함까지 생기곤 한다. 하지만 가끔은 나의, 우리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 드라마나 영화가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가 우리에게 그런 위로가 된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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