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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l 17. 2023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날 재수 없었다고 말했다

넘어지고 쓰러져봐야 일어날 줄 아는 거야

"근데 진짜 가여운건 말이야. 돼지는 고개를 들 수가 없어서 평생 땅만 보고 살아야 한다는 거야. 오직 돼지가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 그건 바로 넘어지는 거지"

"넘어져요?"

"응, 그래 맞아. 넘어져봐야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거야. 돼지도 그리고 사람도. 우린지금 넘어진 거야. 엄마도, 강호 너도. 그렇게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된 거야.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었지만 꼭 봐야만 했던 너무나도 소중한 세상"


- jtbc 나쁜 엄마 중에서 -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모두 30년이 넘은 사이다 보니 몇 달씩 못 봐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사이다. 이번 모임은 평소와 다른 멤버가 함께 했다. 고등학교 때엔 나와는 같은 반을 한 적이 없었지만 다른 친구 여러 명과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을 했던 친구다. 게다가 그런 친구들과 같은 대학교 진학으로 몇 년간 한 집에서 자취하며 가까워졌던 친구였다. 결혼 후 전혀 소식을 모르던 녀석인데 함께 자취했던 친구와는 종종 연락을 했었던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친구의 솔직하다 못해 남이 들으면 조금 무례하다 오해할 정도의 입담으로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다들 오랜만에 만난 자리라 그간 안부에 사는 얘기로 자리는 술과 이야기로 한참 무르익어갔다. 그러던 중 그 친구의 말에 조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철수야, 넌 왜 이렇게 폭삭 늙었냐.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부잣집 도련님 같더니. 집에 돈 있어도 나이 먹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싶기도 하고"

 "부잔 무슨. 아버지 가게 부도난게 벌써 언젠데. 나도 그냥 나이 먹은 거지"

 "하하... 그런가? 사실 나 학교 다닐 때 철수 너 좀 재수 없었거든"


악의가 없음을 알기에 큰 감정 동요 없이 웃으며 넘겼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는 당연히 우리 집 사정을 알리가 없었다. 25년이 지난 예전 씁쓸한 기억이 친구 말 한마디 때문에 슬며시 올라왔다.


과거 내 아버지는 사업으로 소위 성공이라는 이름의 타이틀을 쥐었었다.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아주 평범했던 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한 달, 한 달 월급을 받아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그게 당연한 가족의 삶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내 삶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그 시절만 해도 많지 않았던 아파트로 입주했고, 우리 집에는 아버지 소유의 차가 생겼다. 집에 없던 물건들도 자꾸 생겨났고, 부모님 두 분 모두 일을 하는 통에 집안일을 봐주는 아주머니도 들어왔다.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늘 필요한 게 있으면 살 수 있었다. 그땐 그게 당연하게 생각됐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삶은 계속되지 않았고, IMF와 함께 아버지가 하던 사업체는 사정이 점점 좋아지지 않더니 결국 부도가 났다. 경제적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던지라 갑자기 찾아온 시련은 더욱 혹독하게 느껴졌다. 집을 찾아와 부모님에게 큰 소리를 치던 채권자들을 보는 것도 하루가 멀다 했다.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었고, 내 삶에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결국 우리 가족은 모두 자신의 삶대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새로운 일을 찾아 지방 현장으로, 어머니는 태어났던 고향 근처로, 동생과 나는 학교와 직장으로. 모두 자신의 방식대로 한 발, 한 발 그리고 묵묵히 과거를 잊어가며 살아갔다.


한동안 모두 모이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조금씩 줄어들고, 십여 년 세월에 모든 게 달라졌다. 원망하던 부모님에 대한 마음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예전보다 모든 게 좁아졌지만 마음만큼은 한 뼘은 넓어진 가족이 되어 있었다. 사업 실패로 웃음끼 사라졌던 아버지는 업종상 밖에서 일하셔서인지 구릿빛 피부에 하얀 건치가 자주 보일 정도로 웃음이 많아지셨다. 지금은 돌아가셔서 계시지 않지만 본인 감정에 충실하시긴 해도 변하지 않는 손맛으로 늘 가족의 입을 즐겁게 해 주셨던 어머니, 어느새 시집간 여동생에 우리 가족 네 식구까지. 이젠 든든한 가족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오랜 기간 시련도 있었다. 하지만 되짚어보니 그런 호사를 누렸던 시간도 10년이 조금 넘었다. 그리 생각하니 시련 또한 그 십 년 남짓니 크게 손해 본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이후 긴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그걸로 감사하며 지낸다.


우린 그때 심하게 넘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일어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만큼 깨지고, 부딪치며 오랜 시간 아물지 않을 상처가 났었다. 하지만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흐른다. 지나간 시간만큼 우리 상처도 아물고, 딱지가 생겼다. 생긴 딱지가 떨어지고 상처까지 옅어지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오랜 시간도 내겐 좋은 경험이 됐다.


넘어지고 일어나서 내가 생각하는 것들도 많이 바뀌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지표가 바뀌었고,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을 배웠고, 힘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끔은 기댈 줄도 알게 됐다. 가족을 많이 아끼는 만큼 날 아끼고, 사랑하는 법도 생각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보다는 오늘의 행복함에 감사하게 되었다.


십여 년 전 다니던 회사에 급여가 나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을 정상적인 급여를 받아본 게 몇 번 되지 않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었다. 외벌이 가장이다 보니 그 여파는 고스란히 가족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시련은 과거에 비해서는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이었고, 이미 단단해진 나와 아내에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새삼 느껴졌다. 우리의 단단함과 견고함이. 그리고 너무도 깊어진 신뢰가 고스란히 우리를 웃게 했다. 우리를 사랑하게 했다. 마치 금방 다시 일어설 것을 알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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