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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28. 2023

MBTI 'I '인 고등학생 조카와 소통 방법

단답형 답이지만 소통한 게 어디야

책이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한 사람의 마음에 다정한 자국 정도는 남길 수 있지 않겠니? 네가 힘들었을 때 책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었듯이 내가 은호 너란 책을 만나 생애 막바지에 가장 따뜻한 위로를 받았듯이.

그러니 은호야,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한 권의 책이 되는 인생을 살아라. 네 안에 있는 한 줄의 진심으로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살아.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꾸거나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해도 좋은 책은 언젠간 꼭 누구에게나 읽히는 법이니까.    - tvN 드라마『로맨스는 별책부록』 중에서 (2019년)



'저 다 읽었습니다'


평일 조금 이른 오후에 온 '톡' 한통.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반가운 메시지다. 딸과 동갑내기인 처형의 딸이다. 내겐 조카다. 먼저 톡을 보낼 거라곤 상상을 못 했던 아주 내성적인 조카다.


딸과 동갑이어서 상대적으로 조카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보통 조카가 생기면 자식처럼 물고, 빨고는 안 해도 그래도 만날 때마다 예뻐라 할 법한데 커오면서 그러지 못했다. 처가에 갈 때마다 얼굴 보는 사이인데도 조카도, 나도 인사가 고작이었다. 얼마 전까진.


장인 장례식을 치르고 고생한 식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다들 몸은 지쳤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이모님네 가족들까지 모두 모였더니 스무 명이 조금 되지 않는 대가족이다. 처가 이모 쪽으로 5촌 어린 조카들이 있지만 아내의 형제들로 정식 3촌 조카는 처형의 딸이 유일하다.


조카는 늘 말 수가 없는 편이었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더 내성적이 된 듯했다. 아빠인 손위 동서는 고사하고, 처형과도 대화가 거의 없는 듯했다. 딸아이 중학교 1, 2학년 때만 해도 처가에 가기만 하면 조카와 잘 어울려 놀았는데 이젠 그런 딸아이와도 서먹하고, 어색하다.


식사하는 내내 말이 없었지만 중간에 어디 세는  없이 꿋꿋이 잘 따라다녔다. 가족 모두 바닷가 카페에 가자는 말에도 군소리 없이 따라와 자신의 관심사는 아니겠지만 자리를 지켰다. 조카는 중간중간 해변 내에 공연하는 곳이 있어서 구경을 하러 혼자 훌쩍 빠져나가기도 했지만 금세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움직인 식구가 워낙 대식구다 보니 야외 테이블 여러 개를 따로따로 앉아야 했다.


처형과 손위동서의 얘길 들으면 조카가 고등학교 들어오면서 부모와 대화가 더 없어졌다고 걱정이 커 보였다. 부부간의 문제를 카운슬링할 수는 없지만 조카로 인한 처형 고민에 대한 얘기는 조금 해 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나름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처형이나 손위 동서보다는 내공이 높다고 자부하니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조카의 관심사가 궁금해서 물었다.


 '처형, A는 관심 있는 게 없어요? 좋아하는 거요'

 '그림, 게임도 좋아하는 거 같고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집에서 가끔 읽거든요'


'옳거니 딱 걸렸다' 싶었다. 처형에게 얘길 듣고, 난 함께 관심을 둘 조카와의 공통분모를 찾았다. 옆 테이블에 있는 조카를 불렀다. 갑자기 내가 불렀어도 잠깐 '토끼눈'을 한 것 외에는 크게 놀라지 않고 내 옆자리로 자릴 옮겼다.


 'A야, 추리소설 좋아한다면서?'

 '네'

 

단답형이다. 얘기를 이어가며 대화를 하긴 어려운 듯싶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하긴 일러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를 물어보고, 내가 좋아하는 소설장르도 설명했다. 한참을 얘기하면서 조카는 조금씩 관심을 가졌고, 결정적으로 본인이 읽었던 책의 작가 이름이 나오자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가사 크리스티. 워낙 추리소설하면 유명한 작가라 한, 두 권쯤은 읽었을 거라 짐작해서 꺼낸 얘기다.


 '이모부는 추리소설 쪽은 아닌데 스릴러 장르소설을 좋아해서 아마 A한테 추천해 줄 책이 있을 거 같아'

 '아, 네'


역시 단답형이다. 말이 나온 김에 조카와 조금 친해질 기회라 생각했다. 부모를 제외한 주변 어른이 누군가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같은 관심사를 갖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줄 누군가가.


 '이모부가 A가 좋아할 만한 책 온라인 서점에서 지금 골라서 보내줄게. 책 다 읽고 또 보고 싶으면 이모부한테 톡해'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난 조카에게 책을 선물했고, 며칠 뒤 책을 받았다고 톡이 왔다. 짧지만 그렇게 내성적인 조카가 내게 보낸 톡 메시지 한 줄은 감사함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메시지였다.


그렇게 책을 선물한 지 한 달이 지났고, 며칠 전 조카에게서 책을 다 읽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한 달 만에 두 권을 다 읽었으니 그래도 책을 좀 읽는 아이가 맞지 싶다. 연락온 김에 안부도 물어보고 책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두 권 중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면산장 살인사건'이 더 재밌었다는 조카의 평이었다. (나머지 한 권은 기욤 뮈소의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다시 책을 골라서 보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조카와 짧은 톡은 마쳤다.


아이들의 성장은 부모만의 몫이 아닌 것 같다. 주변에 관심을 가져주는 어른이나 친구, 스승만 있어도 한 아이가 영향을 받고 자라는 것이 가능하다.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세대 간의 대화에서도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대화의 물꼬는 의외로 쉽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어떤 사람에겐 관심사가 되고,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살면서 누군가의 인생이나 삶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는 두렵고, 무섭지만 가슴 설레는 말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자라나고, 바뀌는데 자신의 작은 관심이나 말 한마디가 때로는 평생의 명언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어떤 드라마에서 들어본 듯싶은 대사가 생각난다.


'주변에 좋은 어른 한 사람만 있었어도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자라났을 텐데'


책임 있는 태도와 마음이 필요한 이유다. 조카와 난 당분간은 책 이야기로 한 달에 한 번은 대화가 오갈 듯싶다. 조카가 잘 자라고,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길 빌면서 관심을 갖는 어른의 시선으로 다음 톡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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