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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Sep 18. 2023

장모님이 부부 합장묘를 보시더니 화를 낸 이유가...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야 알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의 감정을 뒤로하는 일쯤 모두들 그게 당연한 거라고 말해왔었으니까. 그 당연한 기대와 기준 속에 스스로를 꽁꽁 가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픈데도 괜찮은 척. 결국 날 주저하게 만든 건 나였는지도 모른다'


-출처:  카카오TV 웹드라마 『며느라기』 中에서-


9월의 시작, 장인의 사십구재가 끝났다. 긴 애도 기간이라 생각했던 49일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이젠 정말 좋은 곳으로 보내드려야 할 시간이었다. 장모님이 다니시는 사찰 본당을 나오면서 조금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두 번의 재(齋)에 참석 못했던 불편한 마음을 조금은 덜어낸 것 같았다. 장인의 빈자리 때문인지, 허기진 마음이 들어서인지 절에서 준 공양으로 배속이 든든해졌다. 마치 장례절차를 마치느라 고생했다고 장인이 대접한 식사 같아서 더 맛있게 먹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식구들이 많은 덕분에 차량을 나눠 타야 했다. 가족들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인사라도 할 겸 장인을 모신 공원묘지를 찾았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언덕 위 높은 묘지 위치 덕에 바람이 선선했다.


조금은 엄숙하게 가족들은 장인에게 인사를 했고, 49일이 지났지만 아내는 아직도 나올 눈물이 남았는지 연신 손으로 눈을 훔쳤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지만 장모님의 한마디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A야, 옆에 묘처럼 나눠서 부부묘를 써야지. 난 여기 싫구나. 내 방은 빼라!"

장모님의 말이 무슨 이야긴지 이해가 안 간 것도 잠시 모두 옆의 묏자리를 봤다. 옆에 모셔진 고인들의 묘는 나란히 작은 봉분으로 둘로 나뉘어서 자리 잡혀 있었다. 하지만 장인을 모신 묏자리는 단독형 묘에 비해 조금 더 큰 규모의 일반 합장묘 형태였다. 


장례 중 경황이 없었던 처남이 공원묘지를 알아보면서 나중을 생각해 장모님과 합장묘를 생각했다. 알아보는 과정에서 합장형 타입이 두 가지였는지 모르고 지금 타입의 하나의 봉분에 부부를 매장하는 형태로 결정한 것이다. 장례가 끝나고 나중에 알게 지만 장모님이 이렇게 싫어하실지 몰랐던 것이다.


"알았어요. 여긴 나중에 내가 들어가는 걸로 하고, 엄마는 저 옆에 자리 따로 알아봐 줄게요. 60년 계약되어 있으니 내가 들어갈 시간 충분하네"

"와~ 우리 엄마 아버지하고 많이 가깝진 않아도 이 정도로 정색할지는 몰랐네"


좌측이 분리형 구조 부부 합장묘, 우측이 일반 부부 합장묘

처남의 재치 있는 정리로 서운할뻔했던 장모님 마음도 누그러졌다. 그렇게 한차례 묏자리를 두고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 끝났다. 부부간에 하고 싶었던 말이 많으셨어도 그 옛날 우리 부모님 세대가 대부분 그렇듯이 할 말을 제대로 하시지 못하살았지 싶다. 장모님 마음은 아마도 50년을 함께 살았으면 됐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런 마음이셨으면 죽어서까지 한집 사는 건 아닌 게 맞다. 처가 식구들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유명한 과자 광고의 카피가 생각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하지만 사실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아무리 눈치 빠르고, 분위기 파악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말해야 알고, 표현해야 깨닫는다. 배려는 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 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해야 한다. 그래야 곁에 있는 사람이 알 수 있고, 스스로를 도울 수 있다. '괜찮은 척'은 정작 당장의 불편함은 벗어날 수 있어도 자신에게 상처로 돌아올 수 있다. 가까운 사람에 대한 배려로 내 감정을 숨기거나, 스스로를 다독이는 위로는 상대방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 여러 상황들에 대해 서로 얘기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도 연습이 필요하고, 습관이 되어야 한다. 평소에는 입 닫고 살다가 갑자기 표현하려고 하면 입은 떨어지지 않고, 생각했던 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같은 일도 반복하게 되면 장인의 경지에 이르듯이 표현도 자주 해야 자연스러워진다.


공감이 필요한 대화도 있지만 때로는 위로가, 때로는 이해가, 때로는 용서가 필요한 대화도 있다. 다니던 직장에서 당장 퇴사하려는 직원이 상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가는 건 쉽지 않다. 당장 내일 이후 마주치지 않을 사이라도 타인이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는 게 싫어서 혹은 당장의 상황이 불편해서 입을 닫고 만다. 하물며 매일 봐야 하는 가족들 간에는 당연하게 인내하고,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다짐들이 많지 않을까.


하지만 당연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자신이 세운 것이고, 정작 이런 기준과 틀에 갇혀 마음을 다치기도 한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표현하고 말해야 한다.  그게 자신을 위하고,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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