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서 고생하는 거지?
나의 제주 여행은 오늘도 진행형입니다
"올해도 제주도 올레길 가세요?"
"그렇죠. 제게 힐링은 그만한 곳이 없더라고요"
함께 일하던 동료가 제주도로 여행을 다닌다는 것을 안 것은 십 년 전이었다. 휴가지로 그만한 곳이 없는 것을 잘 알기에 훌쩍 제주도로 향하는 동료가 처음엔 너무 부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동료가 매년 제주도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 동료는 혼자였고, 난 아이들과 아내까지 생각하면 경비 자체가 비교상대가 되지 못했다. 시간 내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들어가는 경비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서 아이 둘 있는 외벌이 가장인 나에게는 너무도 먼 나라 얘기 같았다.
'왜 사서 고생하지?'
동료가 매년 가는 제주도 여행이 부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 여행으로 생각된 것은 동료의 여행 일정을 알고나서부터였다. 그는 제주도 관광지를 돌아다니거나 시설 좋은 리조트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료의 여행 계획은 일일 차부터 삼일 차까지 모두 걷기로 채워져 있었다. 다만 걷는 경로와 목적지만 다를 뿐. 내겐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는 힘든 여행으로 비쳤다.
여러 차례 제주도를 찾았지만 내게 제주 여행은 여느 관광지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제주라는 이국적인 특성 때문에 해외를 나가지 않고도 해외를 나온듯한 만족감만은 컸다. 그래서인지 제주도에 있는 것만으로도 휴가를 왔다는 해방감이 들었다. 그렇게 내 제주여행은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관광지를 찾았고, 유명한 박물관을 투어 하는 게 여행의 전부였다.
이런 내게 동료의 제주 여행 코스는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매일같이 십여 킬로를 걷는 그가 난 그저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왜 제주도 올레길을 찾냐고 물어보면 동료의 대답은 늘 '그냥 좋아요' 밖에 다른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어느 날부터 그 사서 고생을 나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제주도로 출장을 간 일이 있었다. 이틀로 일정은 잡혀있었지만 하루 만에 일정을 끝낸 난 남은 하루를 내게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남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찾은 곳이 올레길이었다. 복장은 사전에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청바지, 운동화 차림이었다. 하지만 업무 때문에 짊어졌던 노트북은 하루를 '땡땡이'치는 내가 짊어진 짐 같아 몸도, 마음도 불편했다.
조금 불편한 마음은 있었지만 그렇게 난 내 인생 처음 올레길에 올랐다. 내가 찾은 올레 코스는 7코스였다. 처음 시작점을 알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무작정 지도를 보며 찾아들었다. 그러다 처음 눈에 띈 파란색, 빨간색 리본이 나뭇가지에 묶인 올레 표식을 보고 그냥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무작정 걸었다. 평일 오전이라 길 위는 조용했고, 초행길이라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지 걱정도 됐다. 하지만 걷다 보니 올레 표식이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제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파란 하늘, 푸른 바다, 초록초록한 풀들과 알록달록 꽃들까지. 처음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하나둘 내 눈에 들어왔다. 즐겁고, 행복하다는 감정과는 다른 감정이 마음 한쪽에서 꼬물꼬물 올라왔다. 아주 조금 가슴이 벅찬 것 같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날씨는 적당히 좋았고, 해안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이 싫지 않았다. 빨리만 걸으려고 했던 내 발걸음은 보이는 풍경에 따라 템포에 맞춰 빨라졌다, 느려졌다 박자를 맞췄다.
길을 걷기 전 내내 무겁게 눌렀던 마음과 몸의 무게는 어느새 사라졌다. 어떤 의미에서 한 단어로 표현하긴 어려웠지만 '자유', '힐링'이 가장 근접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두 시간여의 걸음 뒤에 내 첫 올레 도전은 끝이 났다. 7코스 중간부터 시작해서인지 긴 시간 걷지 못했다. 하지만 올레가 주는 감동은 왜 이 길을 찾고 있는지 동료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후 올레를 다시 찾은 것은 몇 년이 지나서였지만 이날의 기억으로 나의 제주 올레 감동과 힐링이 시작됐다.
내겐 매년 가는 루틴이 됐다.
작년에도 매년 가던 올레를 걷기 위해 출발 여러 달 전에 예약을 모두 마쳤다. 그래봤자 숙소와 비행기 예약이 전부지만. 그날만을 기다리며 보내던 몇 주가 흘렀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출발을 하루 앞둔 날 2022년 올레 여행은 포기해야 했다. 심한 고열과 오한으로 병원을 찾았고, 코로나라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모든 예약을 취소해야 했다. 아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고, 난 매년 루틴대로 내일 제주도로 향한다. 올해도 시월 말 걷기 딱 좋은 날씨다. 파란 하늘, 푸른 바다를 따라 넘실거리며 불어오는 바람까지 변하지 않는 제주를 느끼기 위해 난 제주로 간다. 모든 조건, 환경이 같지만 올해 다른 점이 있다면 아내와 함께 가는 올레다. 가족이 모두 올레 여행을 간 적은 있었지만 둘만의 올레는 처음이다. 싱숭생숭 설렘 가득한 여행이 될듯하다.
일상과 쉼은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 먹고, 사는데 지쳐 힘들 때면 누구나 조인 숨통을 틔어줄 무언가는 꼭 필요하다. 그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일 수도, 친구들과 수다하기가 될 수도 있다. 영화나 음악을 보며 잠깐의 쉼을 가져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기 위함이다. 난 올해도 어김없이 올레를 찾는다. 올 한 해도 잘 살아낸 내게 쉼을 주기 위해서. 그래서 난 오늘도 그곳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