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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20. 2024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했던 이유

조금은 무례했던 여행지에서 만난 한 여행자의 기억

이른 취침덕에 알람도 없이 눈이 떨어졌다. 열심히 놀아서인지 '피곤'이라는 놈을 내치지 못하고 TV를 보는 아내를 홀로 두고 먼저 잠이 든 밤이었다. 옆 침대에서는 아내가 곤히 잠들어 다. 넓은 침대가 두 개여서인지 아내가 옆 침대에 언제 들어와 잤는지조차 기억이 없었다. 스마트폰 시계를 보니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커튼을 열어보니 흐릴 거라는 걱정과는 달리 어둑한 하늘 위로 구름이 없다.


'다행이다~!!!'


숙소를 잡을 때 미리부터 계획했었다. 2년 전 제주에서 봤던 성산일출봉의 일출은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꼭 그 일출을 아내와 함께 보고 싶었다. 숙소를 검색하면서도 룸은 오션뷰인지, 숙소에서는 성산일출봉은 어떻게 보이는지 등의 후기를 찾아보고 결정했던 곳이었다.


서둘러 씻고 객실을 나와 복도 통로 끝쪽의 테라스로 이동했다. 문을 열고 계단으로 나가니 기대했던 경관이 보였다. 성산일출봉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아직까지는 어둑하지만 옆으로 붉은 기운을 감춘 바다가 보였다. 이른 새벽에 올라온 기분을 주체 못 하고 미친놈처럼 혼자 쾌재를 부르고 짧은 탄식을 토해냈다.


'와~, 대박! 이렇게 보인다고 와~'


아내를 깨워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다시 객실로 돌아갔다. 곤히 잠든 아내를 깨우는 게 미안했지만 이 장관을 놓치면 더 아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잠이든 아내는 조금 사나운(?) 편이라 조심스레 아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아내를 깨웠다.


아직까지 잠 속에서 확연히 정신을 깨우지 못하는 아내 얼굴로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내민 스마트폰에는 방금 내가 봤던 경관을 담은 사진을 보여줬다. 떠지지 않는 눈을 애써 힘주며 뜨고선 내가 내민 스마트폰 화면을 본 아내가 서둘러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아내와 서둘러 나간 시간은 6시 50분. 해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장엄한 모습으로 너무도 뜨겁게. 다른 표현이 의미가 없는 시간이었다. 잠시 시간은 멈췄고, 우리의 대화도 함께 멈췄다. 순간 어떠한 감탄사도 필요 없었다. 시간의 흐름은 단지 떠오르는 해로만 알 수 있었다. 한참을 머물 것 같던 해도 찰나의 시간만을 남기고 바다에서 다시 하늘로 솟아올랐다.

우린 가볍게 호텔 조식을 먹고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2일 차 여행의 시작이었다. 성산포항을 통해 배를 타고 향한 곳은 오늘의 첫 목적지인 우도였다. 십삼 년 전 우리 가족 완전체로 첫 제주여행 때 찾고는 오래간만에 찾은 곳이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우도로 가는 배편에 오른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우도에 도착해 여러 다양한 교통수단 중에 우리가 선택한 교통편은 투어 버스였다.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알뜰살뜰하게 보기에는 섬에서 추천하는 버스 투어가 가장 최적이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안전도 고려한 결정이었다. 티켓 한 장만으로 여러 곳을 구경할 수 있으니 그만한 여행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내린 첫 여행지는 서빈백사. 세계에서 세 곳 밖에 없다는 이곳은 하얀 모래해변이라 불린다. 하지만 실제는 모래가 아닌 홍조단괴라는 홍조류 일종이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드넓은 해변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조금은 따갑게 느껴졌다. 게다가 가볍게 입은 옷차림 때문인지 11월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주변에는 한, 두 커플의 연인들과 우리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중년커플 그리고 나 홀로 여행자 한 분이 전부였다. 조용한 해변이 좋아 이내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를 연신 눌렀다. 이곳도 좋고, 저쪽도 괜찮고... 사진을 찍다 보니 여행자 한 분이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저 사진 좀 찍어 주시겠어요?'


여행 가면 늘 듣는 소리라 특별한 거절 없이 그녀의 스마트폰을 받아 들었다. 한쪽에 포즈를 잡는 그녀를 향해 사진을 찍었다. 그것도 예의상 여러 장을 찍었다.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는 구도일 수 있으니 가깝게도, 멀게도 그리고 다른 여러 각도로도. 참 친절하게도 많은 사진을 찍어 주었다.


'여러 장 찍어드렸어요. 혹시나 맘에 안 드실 수도 있어서요'


난 이렇게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얼굴로 그녀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하지만 나 홀로 여행자인 그녀는 건넨 자신의 스마트폰을 받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게 했다.


'저기 저 이쪽 배경으로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


내 귀를 의심했지만 나를 당황하게 했던 건 이후 그녀의 행동이었다. 내 대답은 안중에도 없이 그 문제적 그녀는 어느새 피사체(?)를 옮겼다. 그러고는 포즈를 바꿔가며 내가 또 사진 여러 장을 찍게 만들었다. 이후에도 내가 건넨 스마트폰을 한, 두 차례 더 거절하고 피사체(?)를 옮겨 다니며 포즈를 취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난 그렇게 더 여러 장의 사진을 반복해서 찍었다. 재차 건넨 카메라에 문제 많은 그녀(?)는 또다시 자리를 옮기려 했다. 기분 좋게 온 여행이지 싶어서 웬만하면 참으려 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저기요. 저도 일행이 있고, 여행 와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조금은 쌀쌀맞다 싶었지만 문제 많은 그녀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서 눌렀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에고 조금만 참고 몇 장을 더 찍어줄걸 싶었지만 그 끝을 알 수 없었기에 뒤도 안 보고 돌아섰다. 그렇게 문제 많은 그녀를 뒤로 하고 아내와 난 해변 이곳저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추억을 새겼다.


젊은 연인들 사진 찍는 포즈를 보고 따라 해 보기도 하고, 단신의 서러움에 조금 더 길어지고 싶어 그림자 샷도 찍어봤다. 하트는 기본이었고, 설정해서 찍은 사진도 여러 장이었다. 누가 보면 나이 들어서 주책이다 싶겠지만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우리만 좋으면 되지 그게 뭐 중요한가 싶었다.


'남은 삶에서 오늘이 우리에겐 가장 젊은 날인데. 뭣이 중한디?'


그나저나 해변을 나오는 길에 문제적 그녀가 젊은 아니 어린 커플에게 사진을 요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그 커플에게도 자신을 옮겨가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듯 보였다. 정말 문제 많은 그녀였다. 불쌍한 어린 커플이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다.


오늘도 아내와의 제주 여행을 기록한 글로 채워봤습니다. 여행이란 여러 가지 의미를 주는 것 같아요. 제겐 삶에서 잠시 쉬어가는 환기, 쉼표 같은 휴식의 의미가 제일 큰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가장 설렜을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아마도 여행이었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만큼 여행은 많은 날들 중에 아주 짧은 기록이고, 추억이지만 살면서 좀처럼 잊히기 어려운 삶의 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네요.


제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일 년의 한 루틴과 같은 제주여행. 올해도 제 짝꿍인 아내와 함께 했어요. 글을 쓰다 보니 2일 차 여행의 기록을 다 쓰지 못했네요. 아마도 제 그날의 마음처럼 여행을 빨리 끝내는 게 아쉬웠던 것처럼 제 글도 여행과 같이 쉽게 끝이 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 주까지 그날의 여행 기록을 채워볼까 합니다. 재미난 에피소드가 함께 있으니 다음화도 기대해 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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