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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04. 2024

제 모습이 창피하셨나요?

여행에서 오늘 또 배웁니다

https://brunch.co.kr/@cooljhjung/717

https://brunch.co.kr/@cooljhjung/718

위에 연재된 글에 이어진 글입니다.


그렇게 투어버스를 다시 타고 이동한 곳은 비양도다. 섬안에 섬 우도 속에 또 섬이 있다니 신기하다. 비양도하면 제주 서쪽 협재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비양도가 기억나지만 신기하게도 제주도에는 두 개의 비양도가 있단다. 우리가 아는 서쪽 비양도 말고 동쪽 우도 옆 비양도가 또 있다고 했다. 동쪽의 비양도는 우도에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오래전 우도에 왔을 때는 와보지 못한 곳이라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사진 스폿이 되는 여러 곳에서 먼저 사진을 담았다. 조금 더 위로 고개를 든 햇살에 더울 법했지만 적당한 바람에 더위가 가시기엔 충분했다. 시리도록 파란 바다에 넓게 드리워진 잔디 그리고 보랏빛 꽃 벌개미취까지. 한가롭다 못해 자유롭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래서 제주, 제주 하나보다.


이렇게 좋은 제주에서 아내와의 시간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내는 꽃을 보며 놀고 있다. 혼자 꽃보며 노는 아내를 몰래 촬영하는 건 내 취미 중 하나다. 아마 사진 촬영하는 걸 걸리면 또 구도가 어떻네, 사진 속 자신이 눈을 감았네 말이 많을 테니 걸리지 않는 게 최선이다.


'오늘은 몰래 촬영 성공!!!'


이어진 길을 따라 들어갔더니 '비양도 해녀의 집'이 나왔다. 그곳에서 해녀분들이 파는 소라 한 접시를 시원한 막걸리 한잔과 깔끔하게 비운 후 우린 다시 투어 버스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로 향한 곳은 우도 등대가 있는 우도봉이다. 그리 높진 않지만 그래도 132미터다. 버스에 내려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 우도봉길을 따라 걷다 보면 우도봉으로 오르는 길이 보인다. 오전도 지나서인지 관광객이 꽤 많이 늘었다. 연인, 부부, 가족, 친구들 등 관광객의 유형도 제각각이다.


사람들을 따라 한참을 오르다 보니 조금 전 인상을 쓰고 오르던 한 중국 남자가 길을 내려오는 게 보였다.  조금 전 우리 부부를 훑어보듯이 지나갔던 기억에 그리 좋은 인상으로 남은 남자는 아니었다. 그는 우리 앞까지 와서는 내게 말을 건네며 지나갔다.


'There is no more road'


말의 의미가 길이 더 이상 없다는 말로 들렸고, 난 그를 따라 내려오는 남녀를 보고 확인차 다시 물었다. 혹시나 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답도 같았다. 우리가 가려던 곳은 등대가 있는 우도봉이었으나 당시 오르던 곳은 소머리오름이었다. 길이 있는 줄 알았지만 오름 정상에서 우도봉 등대로 가는 길은 없는 듯했다.


그제야 우리가 한참을 걸어서 온 길 옆을 내려다보니 다른 길이 보였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려니 조금은 막막했다. 시간도 한시가 되어가고, 날씨도 심상치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등대를 보지 않고 가자니 또 언제 우도를 찾겠냐는 생각이 앞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 마음속 갈등만 커졌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채고 아내는 내게 말했다.


'저리로 갈까요 철수 씨? 억새길 사이사이 사람들이 내려가며 만들어 놓은 길로 가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아내가 가리킨 쪽에는 넓은 억새숲 사이로 정말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으로 길이 나 있었다. 아마도 우리 같이 길을 잘못 들었다 등대를 보고자 억새밭을 가로지른 사람들이 만든 길인 듯 싶었다. 내려갔다 다시 오르려는 막막함에서 금세 해법을 찾은 것 같았다. 난 망설임 없이 억새밭으로 발길을 돌렸고, 아내도 이런 날 따라 발을 내디뎠다. 별생각 없이 등대로 오르는 길로만 발을 디뎠다. 하지만 서두르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일이 생겼다.


'스스슥~'


발 앞쪽에서 나는 소리였고, 분명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억새 소리는 아니었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물체가 하나 있었고,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내 걸음을 멈추게 하기에는 충분한 모습을 갖춘 상태였다. 길게 늘어진 회갈색의 긴 꼬리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런 모습좇았던 눈과 몸은 이내 겁에 질렸고, 붙었던 입은 경계 정보를 전파했다.


'아악~, 뱀! 뱀이에요. 영희 씨'


뱀 꼬리가 시선에 들어오자마자 난 펄쩍 뛰며 향하던 몸을 오던 곳으로 돌렸다. 아내에게 뱀이라고 외친 난 아내를 위로 물리며 다시 내려왔던 길을 올랐다. 우리를 보고 뒤쫓아 오던 중년의 부부에게도 뱀을 봤으니 어서 오던 길을 다시 오르라고 안내했다.


당연히 다시 오를 줄 알았다. 하지만 뒤따라오던 부부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아니 정확히는 남편이 나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뱀이 피해서 내려가던가요?'

'네, 그렇긴 하지만...'

'그럼 아마도 사람 피해서 내려간 겁니다. 여보, 어서 와. 뱀도 우릴 피해서 간 거니까 괜찮아. 나 잘 따라오면 돼'


그렇게 얘기하고 남자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고, 그 남자의 아내는 듬직한(?) 남편의 말을 믿고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를 따라 오르려던 아내는 내게 다시 손짓하며 발걸음을 다시 내리막으로 재촉했고, 한 참을 오르막, 내리막을 살피던 난 아내를 따라 다시 뛰어서 내려갔다. 다시 뱀이 나올까 봐 손뼉을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최대한 시끄럽게 굴며 아내를 쫓았다.

용기 '남'의 활약 덕에 우린 20분을 다시 돌아가야 할 대신 짧은 경로로 횡단했고, 우도봉 등대까지 무사히 올랐다. 창피함은 아내의 몫이었지만 무사히 오른 것에 감사했다. 모양은 빠졌지만 이런 내 행동 덕분에 중년의 남자는 함께한 자신의 아내에게 한껏 '으쓱'할 수 있었을 테고, 우린 그 덕분에 우도봉에 무사히 올랐으니 특별히 불만은 없다.


우도봉까지 무사 완주 후 다시 투어버스에 몸을 실었고, 비가 내리기 전에 우린 우도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반나절의 우도 여행이었지만 쾌청한 날씨부터 잔뜩 흐리고, 잠시 내린 비까지 짧은 시간 제주도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이른 아침 서늘했던 날씨에 껴입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옷도 이른 시간이 지나자 등골에 땀이 흐를 만큼 더워서 이내 껴입은 옷이 귀찮아졌다. 한 낮이 되고서는 여름처럼 반팔 차림이 되어 있었고, 고마워하던 옷도 어느새 가방 속으로 들어가 짐이 되었다.


반나절동안 생긴 날씨 변화도 이렇게 사람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하물며 우리의 긴 삶에서 마냥 감사한 일만 있을 수 있을까. 여행을 올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순간의 기쁨과 어려움, 즐거움과 번거로움이 교차할 때마다 그 마음에 맞춰 기분이 요동친다면 그 여행에서 얻어지는 게 있을까 싶다. 여행 시작의 마음에서 생각한다면 여행은 모든 게 이해되고, 포용가능한 행복 포인트다. 그런 여행을 굳이 잠깐의 기분으로 망칠 필요는 없다.


인생의 모든 일에 능선을 오르내리듯이 감정을 담는다면 그 삶의 과정은 얼마나 고달프고, 애달플까. 이해와 포용이 가능한 낙폭에서 발생하는 감정선은 굳이 확대할 필요도, 축소할 필요도 없다. 그냥 긴 시간의 여행에서 생길 수 있는 일쯤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라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고, 따져 묻고 풀어야 하는 문제라면 해결하고, 툭툭 털어내면 그뿐이다. 길지 않은 인생도 여행과 같다고 생각하면 굳이 망칠 필요가 있을까. 한 번뿐인 내 소중한 삶인데.

제주여행의 마지막 만찬

이틀 간의 짧은 아내와의 제주도 여행을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우리 둘 모두에게 무척이나 만족한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해마다 바뀌는 건 떨어지는 체력이지 즐길 마음이 줄어드는 건 아니지 싶습니다. 우린 그렇게 내년을 기약하며 제주에서 김포로 오는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싣고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세 편의 짧은 여행, 긴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여행은 진리이고, 참입니다. 그래서 여행은 항상 옳다는 말이 있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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