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으며 아내가 2주 뒤 일정을 내게 물었다. 그 말의 의미가 어떤 일을 얘기하는지 알고 있기에 당연히 일정을 비웠고, 일정이 있더라도 미뤄야 했다.
'당연히 없죠. 매번 힘들게 혼자 보내서 미안해요. 애들이 학교, 학원 다녀야 하니 번번이 제가 집을 지키게 되네요. 그나저나 이번엔 김장을 얼마나 하신데요?'
매년 겨울이 찾아올 때면 아내는 처가에 김장을 하러 간다. 남들은 집안 큰 행사처럼 사위, 자식들 모두 참석한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번번이 김장은 아내 몫이 됐다. 늘 혼자 가는 아내가 안쓰러웠지만 며칠씩 하는 처가의 김장 때문에 회사를 빼기도, 아이들 학교를 뺄 수도 없었다. 잘못도 반복하다 보면 자책도 무뎌지고, 미안함도 퇴색한다고 했다. 이십 년을 넘게 김장 때 다니지 않았더니 이젠 가지 않는 게 당연시되었다. 아내에게도, 내게도.
처가의 김장행사가 며칠씩 걸리는 이유는 배추를 직접 기르기 때문이었다. 내다 팔만큼 배추 농사를 지을 때도 있었지만 세월 가며 장인어른의 늘어나는 나이와 반비례해 심는 배추수는 줄었다. 몇 년 전부터는 가족들 먹을 만큼의 배추 농사가 전부였다. 그래도 그 배추 수가 백 포기에 임박했으니 적다고 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숫자였다.
이런 배추를 밭에서 따는 것부터 김장의 시작이었으니 처가의 김장 행사는 늘 나흘각이었다. 그렇게 계획을 세우니 아내는 목요일 오전이나 오후만 되면 처가에 내려가야 했다. 이렇게 처가에 가면 일요일 오후나 되어서야 김장이 끝나니 회사나 학교에 이틀을 빠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핑계덕에 난 늘 처가 김장행사에서 열외였고, 그 때문에 아내는 내 몫까지 더 열심히 김장을 해야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철이 다가왔다. 회사 동료들 중에서도 주말에 김장하러 간다는 사람들이 많았고, 아내도 미리부터 처가식구들과 김장날을 잡느라 분주했다.
'아 우리 신랑은 김장하러 안가'
'(핸드폰 너머 아내의 지인)...........'
'사위들이 보통은 처가에 가서 힘쓰는 일은 많이 하는데 우리 집 남자들은 김장 때 코빼기를 안 비치네. 좀 서운하긴 한데'
'(핸드폰 너머 아내의 지인)...........'
'그래도 평소에 잘하니까 내가 그냥 참고 이해하지'
얼마 전 저녁 먹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아내가 지인과 통화하는 내용이 내게 들렸다. 지인과 안부 전화 중에 김장 얘기가 오간 듯싶었다. 아마도 처가 김장에 내가 함께 안 가는 걸 의아하게 생각한 아내 지인이 물어본 것 같았다.
짧지 않은 시간의 통화가 끝나고 아내는 별일 없었다는 듯 평소같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설거지를 마친 난 아내 곁에 조용히 앉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아내에게서 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아내는 자주 있는 일이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입은 그런 내 행동에 대한 취조를 서둘렀다.
'왜요? 할 말 있어요?'
잠깐 머뭇거리고선 난 아내의 다음 말이 나오기 전 드디어 결심한 말을 건넸다.
'저 이번엔 함께 갈까요? 다음 주 김장하러요'
핸드폰만 들여다보던 아내가 날 본건 바로 그때였다. 내가 한 말을 듣고서 웃는 건지 아니면 조금 당황한 건지 모를 애매한 표정을 보이며 내게 말했다.
'그래요? 난 이번엔 금요일에 갈 건데 철수 씨는 금요일 회사 끝나고 토요일에 일찍 와요. 이번엔 김장 수도 줄었고, A(남동생)도 가니까'
김장 얘길 꺼내고 일주일이 지나서 난 처가에 김장을 도우러 갔다. 토요일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거리가 있는 관계로 처가에 도착한 것은 오전이 다 지나고 정오쯤 되어서였다. 처가에 도착하니 마당에는 아내가 열심히 절여놓은 배추를 혼자 씻고 있었다. 이런 아내를 보자마자 반갑고, 안쓰러운 마음에 한 달음에 달려갔고, 의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영희 씨 저 뭐부터 할까요?'
그렇게 도착하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두, 세 시간을 꼬박 절인 배추와 양념에 들어갈 야채를 씻었다. 또 양념에 들어갈 무도 채칼로 썰며 작업량을 줄여 나갔다. 게다가 여자들이 들기 무거운 짐들은 집안에 남자가 있음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며 날랐다. 이런 내 모습에 아내는 혹시나 몸이라도 다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지만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다행히 최근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한 덕에 달라붙은 '근육(?)'이 열일했다.
다음날도 만들어놓은 양념을 가지고 씻어놓은 배추에 골고루 입히는 마지막 작업을 했고, 김장통 하나하나에 넣는 작업까지 끝나고서야 올해 우리 김장은 끝이 났다. 이틀간의 내 첫 김장은 그렇게 무사히 끝났다. 몸은 조금 고됐지만 수십 년을 해온 장모님이나 아내를 생각하면 이 고됨은 아무것도 아니지 싶었다. 덕분에 이십 년을 넘게 맛있는 김치를 매 년 먹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난 난생처음 처가에 김장을 하러 갔다. 사실 작년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난 후 김장을 돕는 처가 식구 중 남자는 없었다. 처가에 날 포함한 사위들은 고사하고, 하나 있는 아들조차도 김장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장모님과 딸자식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막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루, 이틀은 휴가를 내야 한다는 핑계를 방패 삼아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줬나 싶었다. 앞으로는 이번처럼 이틀씩이라도 김장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깊이 들었다.
일요일 오후 늦게 고생해서 만든 김장을 차 트렁크에 집어넣고, 집을 나서려고 대문을 나왔다. 장모님은 삼 일간 고생한 딸과 사위를 배웅하려고 뒤를 따라나섰다. 차에 짐을 싣고 웃음 띈 얼굴의 장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어머님, 저희 올라갈게요. 건강하시고요. 또 내려오겠습니다'
'그래, 내년 김장 때 꼭, 꼭 또 오게'
흐뭇하게 웃으며 장모님은 장난기 어린 말로 날 놀렸다. 그간 말은 안 했지만 김장 때 내려오지 않은 아쉬움과 지금이라도 함께 해서 좋다는 반가움의 표현이었다. 사위가 무안하지 않게 적당히 장난스럽게 말씀하신 건 나름의 배려였다.
김장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배추를 다듬어 간수나 소금에 절이는 것부터 마지막 김치통에 차곡차곡 쌓는 것까지 쉽게 처리되는 과정이 없다. 하나하나 처리 과정이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는 건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렇게 해 놓은 김장 김치는 처음엔 신선하고, 시원한 맛에 먹는 생절이부터 숙성이 되면 될수록 더 깊고, 건강한 맛을 내는 숙성 김치까지 버릴 것이 하나 없다. 마치 가족을 생각하는 어머니 마음 같다.
일 년을 위해 매년 돌아오는 겨울 초입에는 많은 집에서 김장을 한다. 어머니의 손맛에 과일, 야채, 생선, 새우 등 갖은 재료를 넣고서 가족을 생각하며 만들어져 우리 밥상에는 그 정성과 사랑을 채워왔다. 당연시했던 밥상 김치는 이렇게 고된 과정과 정성을 쏟아가며 만들어졌음을 알기에 김장은 그래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은 신선해야 좋다고 하지만 어떤 것들은 숙성되면 될수록 더 깊은 맛을 낸다. 마치 김치처럼.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배운 사랑을 그대로 베푸는 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그렇게 채워진 사랑은 마르지 않는다고 믿는다. 끊임없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아내에 대한,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넘치면 넘쳤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