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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25. 2024

누굴 닮아서 저럴까 싶은 자식도 자식이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

'너무하네! 아니 애가 먹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부모가 저래'


얼마 전 TV를 보다가 열불이 나서 씩씩대며 분을 삭였던 적이 있었다. 시청 중이던 프로그램은 이혼을 고민 중인 부부가 합숙을 통해 이혼 숙려기간과 조정 과정을 가상으로 체험하는 관찰 리얼리티 예능이었다.


찾아가며 보던 아니지만 채널을 돌리다 나오면 가끔 봤던 프로그램이다. 그날 소개됐던 부부 중에 한 부부의 사연이 눈에 들어왔다. 칠 남매를 둔 젊은 부부였다. 19살부터 육아만 했다는 아내는 남편의 지나친 관계 요구로 이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관찰 영상에서도 이런 상황이 자주 연출됐고, 보는 내내 조마조마할 만큼 남편은 아내를 괴롭혔다. 영상이 아니더라도 12년 동안 일곱 명의 자녀를 뒀다는 것 자체가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내가 화가 났던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엄마(아내)가 저녁으로 고기를 구우려고 하고 있는데 자녀 중 한 아이가 옆에서 계속 먹고 싶어 하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하지만 엄마(아내)는 매정하게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냈고, 고기는 이혼 당사자인 남편과 자신의 배를 채우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아이들에겐 자신들 식사하기 전 고기대신 햄 반찬으로 밥을 챙긴 게 고작이었다.


그 순간 든 생각은 아내의 딱한 사정보다 부모로서 저 고기가 목으로 넘어갈까 싶은 생각뿐이었다. 부모라면 내가 못 먹더라도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만 보면 배가 부르다고 했는데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부부에게 자식이 소중하기나 한 걸까. 그 순간만큼은 부부에겐 이혼 숙려 캠프가 아닌 부모 숙려 캠프가 더 필요해 보였다.


며칠 전에 감기 기운이 있더니 아내가 단단히 감기에 걸렸다. 이틀 전 밤부터 기침이 심해지더니 병원을 다녀와서도 아직 기침과 인후통은 크게 차도가 없었다. 아픈 것도 힘들었지만 아내는 아들 휴가 날짜와 자신의 송년모임 날짜가 겹쳐서 그게 더 속상한 것 같았다. 미리 잡힌 모임이라 빠지기도 어려워 마음도 불편했는데 몸까지 이렇게 말썽이니 아내 입장에선 많이 속상할 듯싶다.


'아들 나오면 내가 잘 챙길 테니 걱정 말아요. 김치찜 엄마가 해준 것보다도 맛있다는 소리 나오게 잘 해먹일 테니 두고 봐요. 아침엔 아들 좋아하는 된장찌개도 할 거니까 그냥 마음 편하게 놀다 와요'


아들이 나오는 오늘 아내는 송년 모임 여행을 떠났다. 아픈 걸 핑계 삼아 가지 말아 볼까도 고민하는 듯했지만 아들과 나의 적극적인 만류에 아내는 결국 이틀간 집을 비웠다. 그렇게 여행을 떠나면서도 아들 저녁은 김치찜 먹고 싶다고 했으니 맛있게 해 주라고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휴가 아침 아들은 부대 밖을 나와 아내에게 전화해 안부부터 물었다. 휴가 나오기 전날 아내(엄마)가 감기 때문에 고생한다는 얘길 들어서인지 더 걱정인 듯싶다.


'엄마, 몸은 괜찮으신가요? 오늘 날씨 많이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고 나가세요. 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아침 아들 전화 한 통으로 아내는 눈에 띄게 좋아진 듯했다. 휴가 나오는 날 눈 소식에 강원도에 근무하는 아들이 무사히 잘 나올까 걱정했던 아내였다. 아들 전화로 안도도 했지만, 아픈 엄마 걱정하는 아들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져서 좋은 것 같았다. 자라나면서도 늘 지금 같은 성향이었지만 성인이 되고서는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많이 느껴졌다. 곁에서 보는 어느새 훌쩍 이렇게 커서 부모 걱정해 줄 만큼 장성했나 싶은 마음에 대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들과는 다르게 딸은 영락없는 막내다. 항상 자기중심적이다. 그것도 집에서만 유독 더 그런 듯하다. 오히려 밖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듣고 있으면 너무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 같아 속상할 때도 더러 있을 정도다.


하지만 아내나 내겐 자식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누리려고 애쓴다. 아들과는 다르게. 제 손으로 청소하는 걸 본 적이 많지 않다. 거의 월례 행사 수준이다. 언제까지 어지럽힌 채로 지내나 두고 보려고 했던 아내도 자신이 보기 힘들어 그냥 치우는 일이 다반사다.

딸은 어릴 때부터 워낙 마르고, 작았다. 이런 딸이 예쁘고, 걱정스러워서 아내는 딸이 아팠다 하면 먹고 싶다는 건 죄다 해 먹였다. 제철 과일은 종류별로 채웠고, 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매 끼니 밥상을 채웠다. 이런 아내 덕분에 지금은 딸아이가 더 이상 작거나, 마르진 않지만.


아내는 이렇게 키운 딸이니 사춘기를 보내며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딸에게 얼마나 배신 아닌 배신을 느꼈을까. 하물며 아내가 아플 때도 딸의 행동은 아내에게 얄밉기 그지없다.


'지수야, 엄마가 오늘 너무 몸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설거지 좀 해주면 안 될까?'

'엄마, 나도 몸이 좀 안 좋아서. 미안'


'지수야, 엄마 오늘 집안일 많이 해서 피곤한데 화장 좀 닦아줘. 알았지? 고마워 딸~'

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아내는 곧 잘 고마움을 표해서 거절을 원천봉쇄하곤 한다. 이럴 때마다 돌아오는 건 거절인데도 말이다.

'응~, 괜찮아.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엄마!'

'김지수~, 너!!! 너무하네. 이것도 못해주냐. 누굴 닮아 저래'

이런 거절은 일상이 됐지만 번번이 본전 타령이다. 하지만 이런 푸념은 이때뿐이다. 딸이 학업에 지치거나, 아프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아내는 또 슈퍼우먼을 자청한다. 아낌없는 조언에, 자존감을 키울 격려에, 체력 증진을 위한 각종 영양제와 음식까지. 그래서 엄마는 강한가 보다. 자식 일이라면 계산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서운함, 속상함, 아쉬움, 화남 등 각종 안 좋았던 감정들을 아무 일 없이 리셋해 버릴 수 있으니.


딸은 이제 곧 열아홉이 된다. 내년만 지나면 이젠 성인이다. 어엿한 성인이 되는데도 채 일 년이 남지 않은 딸이지만 아직까지 아내나 내겐 그냥 막내일 뿐이다. 가끔 말 안 듣는 막내딸 말이다. 그래도 그런 딸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우리에겐 아들이고, 딸이고 모두 깨물면 똑같이 아픈 손가락이다.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있는가. 이런 손가락처럼 자식이 여럿 있어도 부모에겐 똑같은 자식일 뿐이다. 그냥 손가락 크기가 다르고, 쓰이는 용도가 다르듯 자식들도 외모가 다르고, 성향이 다를 뿐이다.


오늘 시청한 프로그램에서 부모의 행동은 너무도 상식적이지 않았다. 그간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본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예능에서 보여준 칠 남매를 둔 부모(부부)의 모습은 본능부부라는 타이틀도 무색할 정도였다. 다시금 부모라는 자리에서 느껴야 할 책임감과 무게를 돌아보게 했다.


뭐래도 하나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부모 입장에서 부족함 없이 키운 자식일지라도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게 있으면 자신보다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자식에게 주는 아끼지 않는 게 보통의 부모다.


'다름', '창의적', '혁신적', '참신한', '창조적', '기발한', '도전적', '개척적'이란 단어들이 인정을 받고, 박수를 받는 시대다. 하지만 어떤 일에 대해서는 '상식적', '일반적', '통상적', '보편적', '객관적', '정상적', '이성적', '평범한'과 같은 단어들이 당연시되는 사회적 기조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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