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소비쿠폰, 웃음 뒤에 남은 ‘소유권 분쟁’...
"아빠 왔으니 아빠랑 얘기해."
퇴근해서 들어오는 날 보며 아내가 딸에게 말했다. 마치 둘이 풀어야 할 숙제라도 있는 듯.
"무슨 얘기? 지수 아빠한테 할 말 있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꺼낼 정도의 얘기면 해결이 시급한 문제일 거라는 생각에 매고 있던 가방만 내려놓고 거실에 앉아있는 딸에게 물었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딸 대신 아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얘가 나한테 국가에서 나오는 소비쿠폰 자기 몫은 자기가 쓸 수 있게 달라고 해서. 내가 수령받는 게 아니라 아빠가 받으니 당신이랑 해결하라고 했죠."
민생회복 쿠폰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렸다.
최근 국가에서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조치로 소비활성화와 소상공인, 자영업자 매출 확대를 위해 전 국민 대상으로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고 있다. 1차로 최대 40만 원부터 최소 15만 원까지 소득 단계별 맞춤 지급을 시행했다. 처음 이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할 때만 해도 현 대통령 지지 기반이 아닌 일부 지역에서는 해당 정책에 불만의 뜻을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 당장 우리 집 어른만 해도 국가 경제 걱정과 세수 걱정을 함께하며 퍼주기식 정책이 아닌가 하는 불만을 얘기하신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말로만 했던 민생회복 쿠폰이 당장 지급되자 많은 사람들이 반기는 분위기다. 당장 주말에 다녀온 시장, 식당, 카페 등 지역에 있는 상가에는 여느 때와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무더운 날씨에도 다들 '소비쿠폰 사용되나요?' 질문과 함께 식당, 시장 등지에는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평소 외식을 줄이고 장바구니 물가에 눈치를 보던 소비자들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지갑을 열었다.
지난주만 해도 오를 때로 오른 물가가 부담되어 과일, 고기와 같은 식료품부터 집 앞 식당조차 자주 가지 않으며 외식도 줄어든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번 주말은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집 앞 식당서도, 시장 과일가게에서도 상인들의 표정만큼은 국가가 원했던 방향으로 소비가 일어나는 것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물론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던 소비자들이 소비쿠폰으로 도움이 되는 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가정 내 소비쿠폰 분쟁의 해결은?
그러나 예상치 못한 ‘가정 내 소비쿠폰 분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쿠폰이 법적으로는 가구 단위 수령이지만, 개인 명의로 발급되다 보니 일부 가족 구성원들이 “내 몫”이라는 권리를 주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소유권이 아닌 '사용 목적'이 핵심이라고 설명하지만, 가정에서는 이런 논리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좋은 의도와 취지의 소비로 모두가 만족하면 좋겠지만 최근 기사들 중에는 안타까운 일들이 종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시끄럽게 했다. 중학생 자녀가 자신 앞으로 나온 소비쿠폰을 달라고 부모에게 대들고, 세대주인 자신 앞으로 나온 소비쿠폰을 아내와 상의 없이 부모에게 줬다고 갈등하는 일이 생겼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과정에서 부모와의 갈등이 벌어지거나, 심한 경우 가정 불화로 번지기도 한다.
또한 쿠폰의 사용처가 지역 소상공인 중심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도 현명한 소비를 유도하는 구조다. 당장 백화점이나 온라인 대형 플랫폼에서 사용이 불가능한 대신, 동네 마트나 시장, 음식점, 문화시설 등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지역 경제를 순환시키는 소비 패턴을 강화하려는 정책적 장치로 평가된다.
실효성은 입증, 문제는 ‘소통’과 ‘가치관’
민생소비쿠폰은 분명 경제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시장의 활기, 소상공인의 환한 표정, 소비자들의 만족도 등은 정책 효과를 체감케 한다. 하지만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단지 소비쿠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세대 간 가치관, 소유에 대한 인식, 경제적 독립에 대한 자각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소비 쿠폰이 ‘적은 금액’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를 둘러싼 대화와 합의는 오히려 가정 내 경제 교육, 민주적 소통 구조를 훈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국가가 지급한 소비쿠폰은 단순한 지출 수단이 아닌, 각 가정에 던져진 하나의 질문지일지도 모른다. 이 질문에 정답은 없지만, 함께 고민하고 대답할 사람들은 곁에 있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비쿠폰의 정확한 취지는 알고 있지?"
생각지도 못한 딸의 소유권 주장으로 온라인에서 떠돌던 남의 얘기가 우리 집 얘기가 된 기분이 들었다. 소유권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떤 설명도 없이 딸에게 쿠폰의 소유권은 내게 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싶었다. 그렇다고 그냥 소유권을 이전(?) 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국가에서 지급한 소비쿠폰의 배경과 목적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소상공인 매출확대 등을 위해 쿠폰을 사용하기로 설득했다.
열심히 벌어서 세금 내는 건 나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가족이 함께 소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린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 소통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민주적인 방식으로 협상하여 딸과 내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적정선에서 합의에 이르렀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절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