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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남해 봉인의 붕괴

폭풍 전야의 밤

by 추억바라기

참혹한 사건 이후, 갈목 마을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 좁은 도로엔 ‘외부인 출입 금지’ 팻말이 서 있었고, 그 아래에는 바닷물에 젖은 채 이미 흐리고 삐뚤어진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밤 8시 이후 해안 접근 금지’


얼마 전 발생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준우와 일행들은 조금 전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긴 시간 이동에도 아랑곳없이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는 마을 사람들은 창문 너머로 외지인의 발걸음을 훔쳐볼 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문이 열려 있는 집은 단 한 채도 없었다. 후덥 한 날씨에도 집집마다 모든 창문엔 쓰지 않는 천이나 누렇게 바랜 신문지가 붙어 있었다.

바닷바람이 불어오긴 했지만 예전 밤바다에서 부는 짠내 나는 시원한 바람은 아니었다. 짙은 비린내에 오래된 지하실 습기를 머금은 곰팡이 냄새 같았다. 축축하고 기분 나쁜 바람이 피부에 닿으니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지며 음산하다 못해 두려움에 몸까지 움츠려 들었다.
차 안에 앉아 창밖을 훑어보던 해담이 조용하게 말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데도 마치 누군가 숨을 죽이고 우릴 지켜보고 있는 것 같네요.”
운전대를 잡고 있는 강림이 짧게 대꾸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어찌 됐든 봉인이 무너지면, 이계 존재는 반드시 틈을 넓히려고 할 거야.”
조수석에 앉은 유진이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남해 봉인의 파동이 사라진 시점이 갈목 사건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마을 골목과 해안을 한 시간가량 둘러봤다. 하지만, 단서가 될만한 어떤 것도 찾지 못했다. 게다가 비협조적인 주민들의 태도로 마음까지 상하면서 평소 말이 많던 해담과 준우마저 입을 '꾹' 닫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바닷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유진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숙소로 이동하시죠. 해가 완전히 지면 이 마을은 우리가 아는 세상과는 조금 다른 곳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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