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오신 거예요?'
예순 가까이 되어 보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주인 어르신께서 날 보며 물었다. 세상에나.. 이런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그냥 하루 묵고 가려고 들린 모텔에서 한국분을 만나다니.. 그것도 모텔 주인분을!
얼굴에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 이 곳까지 오게 된 경위를 짧은 시간 안에 요약해서 말씀드리고 나니, 고생했다면서 방 하나를 하이커 디스카운트에 한민족 디스카운트까지 해서 내어주셨다. 겨울에 스키를 타기 위해 가끔 한국분들이 오기는 하는데, 배낭을 메고 트레일을 걷는다며 거지꼴로 온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라 신다. 일단 가서 씻고 짐부터 풀라고 하시고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만으로 시원한 맥주를 한병 꺼내 주셨다.
'샤워하고 한잔 하세요'
날아갈 거 같았다. 지난밤 텐트 칠 만한 곳을 못 찾아 그냥 길바닥에 누워 자면서 새벽녘 내린 이슬에 침낭이며 옷이며 모든 게 다 젖어 몸이 천근만근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한국의 정을 느끼며 환대를 받으니 마음 깊은 곳에서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매니저분의 안내를 받아 들어온 모텔 방은 안락했다. Idyllwild 만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씻을 수 있고, 젖은 장비를 말릴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 방이 나에게 주는 편안함은 백만 불짜리였다.
뜨거운 물에 온 몸이 녹을 듯 한참을 씻고 나와 주인 어르신이 주신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 한 모금 마셨다. 온탕과 냉탕을 오갈 때 느끼던 살을 저미듯 저리면서 짜릿한 느낌이 식도를 타고 온 몸으로 퍼지는 듯했다.
'천국이 따로 없구나'
문뜩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분명 따분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연과 가까이할 수 있는 곳으로의 일탈을 원해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데, 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맥주 한 모금 뒤 침대에 누워 마치 이곳이 천국인 듯한 몽롱한 듯 구름에 떠 있는 느낌이 드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지만, 지금은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할 틈도 없이 만근짜리 무게추가 달린 것 같은 눈꺼풀이 의식을 덮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주인 어르신이 모자라지 않냐며 맥주 한 병을 더 건네시면서, 한식이 그리울 건데 저녁은 차려줄 테니 함께 하자는 말을 남기시고 편히 쉬라며 나를 배려해주셨다. 잠에 취한 채 한국의 '정' 삼단 콤보를 맞으니 더더욱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오후 2시가 다돼가고 있었다. 이 곳에 12시쯤 도착해 씻고 잠깐 누운 게 1시간 가까이 자버린 것이다. 점심을 걸러서인지 배가 많이 고팠다. 성대한 저녁을 기대하며 계속 굶을까 생각도 했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인간 본연의 욕구에 이끌려 이미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향하고 있었다. Evergreen Cafe에서 게눈 감추듯 수제 햄버거 하나와 맥주, 치킨 스트립까지 싹 긁어먹고 나서야 거대한 트림과 함께 뭔가 몸이 제대로 작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화도 시킬 겸 산책하듯 마을을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Yogi`s book'에서 본 이 마을의 지도처럼 한눈에 보이는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왠지 정감이 갔다. 내가 자란 곳도 시골마을이라 걸어서 여기저기 다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 크고 복잡한 도시보다 더 좋았다.
이곳저곳 돌아보다 다시 숙소로 향했다. 숙소를 잡기 전 이곳 'Mountain Hardware'(브랜드샵이 아니다)에서 찾은 보급품도 정리해야 했고, 젖은 장비들도 말려야 했다. 다행히 이 곳 'Pines Motel'이 숙소 중에 유일하게 세탁 서비스가 $5에 가능한 곳이라 세탁은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문명의 혜택을 즐기면서 내일을 위한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주인 어르신께서 다시 문밖에 서서 인기척을 내셨다. 시원한 맥주 한잔하러 사무실로 오라시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텐트와 침낭을 대충 널어놓고 함께 따라나섰다. 데스크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가니 꽤 넓은 공간이 나왔다. 식탁도 놓여 있고 주방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 곳이 주인 어르신의 러브 하우스인 셈이었다.
나를 위해 미리 시원하게 냉장시켜 놓은 맥주를 꺼내 테이블에 함께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연세대를 졸업하시고 애니메이션 관련된 일을 하시다 이 곳으로 넘어와 운 좋게 바로 디즈니의 프로젝트를 맡으시고는 눌러앉게 되셨다는 길고 긴 인생의 여정을 듣는 동안 마개가 따여진 맥주병이 식탁 위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30년 정도 세월의 인생사를 듣고 있으니 시간은 금세 흘렀고, 이내 실내의 조명을 켜야 할 정도로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자연광이 한발 두발 물러서고 있었다.
맥주로 취기가 오른 얼굴색이 조명 색과 같아졌을 즈음, 어르신께서 저녁을 먹어야 한다며 직접 요리를 하시기 시작했다. 혼자 사신지 오래되셔서 그런지 주방기구를 다루시는 솜씨가 여사롭지 않았고, 다다다닥 하는 도마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와중에 묵은지 콩비지찌개, 생선구이, 돼지고기 석쇠구이 등 한국에서도 식당에 가지 않는 한 먹을 수 없던 음식들이 식탁 위를 수놓기 시작했다.
식도 끝까지 음식이 차는 걸 느꼈지만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일면식 없는 나를 위해 차려주신 그 마음이 너무나 감사했고, 해주시는 말씀 또한 당신이 걸었고 겪어오신 삶의 지혜를 녹여낸 것이라 하나도 빠뜨릴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잔이 오고 가고 밤이 깊어질수록 시대를 초월한 동향의 진한 우정이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아침이 밝아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간밤에 너무 많이 먹고 바로 누은 탓인지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샤워를 한 후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냥 펼쳐놓은 침낭과 옷가지들, 배낭 전부 개운하게 말라 있어서 그런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다음 보급지인 하이커 타운까지 꽤 거리가 있는지라 식량 때문에 배낭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짐을 다 꾸리고 나니 마치 지켜보고 계셨던 것처럼 아침을 먹으라며 주인 어르신이 나를 불렀다.
따뜻한 떡만둣국.
언제 만드셨는지 파가 송송 올라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만둣국을 보고 있으니 없던 식욕이 되살아 났다.
먼 길 갈려면 든든하게 먹어야 해
마치 가끔 들리는 고향에서 엄마가 차려주던 아침상과 같은 느낌을 머나먼 이국땅에서 느끼고 있었다. 맛있게 한 그릇 비우고 나니 가지고 가라시면서 작은 통을 하나 건네셨다. 깍두기였다. 한국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김치 그리울 건데 이거라도 가지고 가라면서 챙겨주셨다. 배낭 무게를 생각하면 절대 가지고 가지 말아야 할 1순위가 될 언뜻 봐도 1kg 정도 될 반찬통이지만, 거절을 할 수도 없고 거절 하기도 싫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몇 번 했는지 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마당에 있는 벤치에서 서로를 기억할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아쉬움에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 작별을 고하며 다시 가야 할 길을 나섰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오늘은 Mt. Baden-powell을 올라야 하기에 최대한 트레일로 들어가기 전에 많은 양의 칼로리를 섭취하고 싶었다. 고도를 9천 피트 이상 높여야 했기 때문에 가는 도중 허기를 느끼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문명의 탐스러움을 느끼기 위해 배가 고프지도 않았지만 Grizzly Cafe를 틀러 커피를 마시며 메뉴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출입구 쪽에서 왁자지껄하면서도 걸쭉하고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보니 맥도널드 버거 여신인 'Kate'가 남편과 NG와 함께 들어왔다.
이틀 정도의 시간을 서로 공유한 것 밖에 없는데도 서로를 알아챈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격한 포옹으로 알 수 없는 반가움을 표현했다. 기껏 하루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왠지 Kate를 앞으로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해서인지 더 유난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Facebook을 통해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안 또 다른 케이트가 자기도 이곳에서 쉬고 있다며 내가 있는 곳으로 잠깐 들린다고 했다. 이내 도착한 케이트와도 작정한 듯 유쾌한 인사를 격하게 나누고 서로의 일정을 공유했다. 식사 후 오전 중에 길을 나설 예정이라 하니 자기도 정리만 하고 길을 나선다고 한다. 지도를 보니 그 정도 시간에 출발을 하면 Mt. Baden-powell 정상 바로 아래 위치한 Little Zimmy Campground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았다. 같은 길에서 'Kate'와 헤어지고 케이트와 재회하게 된 것이다.
억지로 구겨 넣듯 오믈렛이 든 접시를 감자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운 후 정들었던 'Wright wood'와 작별을 고했다. Cafe에서 나오자마자 운이 좋게 들머리까지 바로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좋은 인상을 남겨주는 이 곳이 고마울 따름이다.
길게 이어지는 스위치백을 무려 41번이나 돌아 올라야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표고차가 3,000피트 라니 약 900m를 올라야 되는 길이다. 한걸음 한걸음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전진했다. 배가 불러서 소화될 시간도 필요하기에 천천히 오르고 싶었다. 고도를 조금씩 높일 때마다 주변의 나무들이 바뀌고 있었다. 참나무에서 소나무,.. 소나무 옆을 지날 때면 부는 바람에 실려오는 송진 냄새에 머리가 상큼해졌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찬 바람과 눈보라까지 맞으며 견뎌낸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찢어진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찢어지고 꺾여 언뜻 보면 키 작은 잡목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이제 갓 30년 조금 넘게 살아온 나로서는 고개가 절로 숙여질 수 밖에 없었다. 정상을 목전에 두고는 'THE-WALLY-WALDRON TREE'라는 팻말이 세워진 1,500년이 되었다는 커다란 고목을 만나게 되었다. 1,500년을 살아 울퉁불풍한 노송이지만 아직도 푸른 잎을 뽐내며 건장함을 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묵직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억겁의 세월을 홀로 보내고 있는 노송을 뒤로하고 오른 정상에서는 광활한 Mojave desert가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고, 아직 녹지 않은 눈들 위에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태양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올라프가 우뚝하게 서 있었다. Mt. Baden-powell 정상에서 굽어보는 주변의 경관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를 비롯한 세네 명의 하이커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힘겹게 오른 정상에서의 보람을 만끽하기 시작했고, 소비된 열량을 회복하기 위해 에너지바를 입에 하나 물고는 이곳을 다녀간 하이커들의 방명록을 한 장 두장 넘기며 그들의 발자취를 구경했다. 미국에 계시는 많은 한국분들도 이곳을 다녀가셨다. 진입이 쉽고 당일 산행으로 상당히 훌륭한 매력 있는 산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이 곳을 찾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함께 이름 석자를 때 묻은 방명록에 남기고는 그 자리에 앉아 이곳의 풍경을 감상하기로 했다.
씨에스타와 잡스, 결혼한 후에 바로 이곳을 함께 걷고 있는 이들 부부는 에너지가 넘쳤다. 서로를 향해 마른눈을 던지며 장난스럽게 놀다가도 마주 앉아 너무 사랑스럽게 두 손 꼭 잡고 미소 짓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지금껏 아무렇지도 않던 내 마음속의 외로움이 요동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쓰라린 가슴을 메어 잡고 다시 길을 나섰다. 화창한 날씨마저 내 기분을 아는지 금세 안개가 끼고는 어둠을 깔리기 시작했다. 기분탓일까? 평소 같으면 헷갈리지도 않을 갈림길 마저 팻말을 잘못 보고는 엉뚱한 길로 들어서버렸고, 사실을 알아챌 즈음엔 이미 길의 끝까지 내려와 버리고 말았다. 마주해서 올라오던 노부부가 친절하게 다시 한번 그 사실을 알려줄 때는 그냥 주저앉고 싶었다.
다시 되돌아 가야 할 오르막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침착하게 다스리며 다시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꼬박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오르고 나서야 나를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든 갈림길을 만났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안도감과 함께 어둠은 빠르게 주변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Little Jimmy Campground'에 도착하니 많이 본 텐트 앞에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케이트였다. 오는 길에 못 봤는데 어찌 자기보다 늦게 도착할 수가 있냐며 눈을 동그랗게 뜬 케이트를 보며 한숨과 함께 바보 같은 짓을 한 경위를 일일이 변명하듯 설명하며 동정을 구했다. 캠프장도 고도 8,000ft 정도에 위치하고 있어서인지 꽤 추웠다. 텐트를 치고 나서 다운재킷을 더 껴입었지만 추위는 계속 느껴졌고, 알파미를 섞은 따뜻한 컵라면을 어르신께서 주신 깍두기와 함께 먹고 나서야 몸이 조금 따뜻해졌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나니 주변 하이커들이 식량 주머니를 보관할 곳을 찾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였다. 곰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라 캠핑장 중앙에 철제 곰 통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자물쇠가 고장이 나서 무용지물이었다.
푸세식 화장실에 가져다 놓고 돌로 문을 막아놓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대담하게 고장 난 철제 곰 통에 그냥 넣어두는 친구들도 있었다. 케이트와 함께 어디에 둘 지를 한참 고민하다 우리도 그냥 곰 통에 두고 자기로 하고는 곰 통 깊숙이 식량 주머니를 밀어 넣었다. 5일이 넘는 식량을 곰이 털어간다면 다음 보급지까지 쫄쫄 굶을 수밖에 없어 아주 민감한 사안이긴 했지만, 워낙 오픈되어 있는 지역이고 나뭇가지가 다 아래로 쳐져있어 주머니를 걸어 놓을 만한 나무를 찾을 수도 없었다.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고는 차가운 공기를 피해 텐트 안 침낭 속으로 몸을 숨겼다.
내 옆 텐트에는 정상에서 만난 씨에스타와 잡스가 자리를 마련했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한참을 낄낄대며 웃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잠이 들려고 할 때면 한 번씩 크게 웃는 소리가 들리고 또 조용하다 다시 낄낄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오늘 편히 자기는 글렀구나 생각하며 이 상황을 포기하고 내일 일정을 생각할 즈음, 낄낄대던 웃음소리가 이상 야릇한 소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뭐지?
음.. 설마?
'Oh my god!'
바로 옆에서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아무리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자유롭게 사랑 표현을 한다고는 하지만, 왜 그걸 하필이면 오늘! 그것도 내 옆에서 벌이고 있냐는 말이다. 안 그래도 이 친구들 때문에 오후 내내 기분이 우울해지고 길도 잘못 들어 고생도 했는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조용히 눈을 감고 귀를 막고는 나지막이 소리 내어 읊조리기 시작했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 아르고.. 다 앓도..로.. 옥... 흑흑..."
지난밤도 길었는데 왠지 오늘은 더 길고 구슬픈 밤이 될 것만 같았다.
< To be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