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건축의 인문학] 11편. 두브로브닉

— 아드리아 해의 성벽 도시

by 이안

1. 서두 — 현장 묘사와 문제 제기


아드리아 해를 따라 크로아티아 남단을 달리다 보면, 바다 위로 불쑥 솟아오른 붉은 지붕들의 도시가 나타난다. 두브로브닉.


눈부신 햇살에 대리석이 반짝이고,
도시를 감싸는 거대한 성벽이 마치 고대의 갑옷처럼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지중해의 파도와 성벽의 묵직한 돌이 대조를 이루며 묻는다.


“이 도시는 어떻게 수세기 동안 바다와 전쟁,
제국의 탐욕 속에서 자신을 지켜냈을까?”


① 두브로브닉 전경 (성벽과 붉은 지붕, 아드리아 해 파노라마)


2. 역사적 배경 — 달마티아 해양 문명의 뿌리


두브로브닉은 고대 일리리아인의 정착지에서 출발해 로마와 비잔틴 제국의 영향을 거쳤다. 그러나 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은 중세 ‘라구사 공화국’이었다. 라구사는 베네치아와 치열하게 경쟁하며 해상 무역을 장악했고, 지중해와 발칸, 동방을 잇는 교차로에서 번영했다. 작은 도시국가였지만, 자유와 중립을 지켜내는 지혜로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았다.


이 해안 문명을 흔히 달마티아 문화라 부른다. 달마티아는 다섯 가지 특징
— 해양성, 다문화성, 석재 건축, 성곽 도시, 종교 혼융 — 으로 요약된다.


두브로브닉은 그 모든 특징을 압축한 결정체였다. 14세기 이래로 유럽의 학자들이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부른 것도 바로 이러한 복합적 정체성 때문이다.



② 두브로브닉 성벽 (바다와 맞닿은 요새적 모습 )



3. 건축학적 분석 — 성곽 도시의 정교한 구조


두브로브닉은 길이 약 2km, 높이 25m의 성벽으로 완벽히 둘러싸여 있다. 성벽은 단순한 방어선이 아니라, 바다를 향해 치켜세운 인간의 선언이었다.


곳곳에 배치된 망루와 요새,
바다를 지키는 미네치타 요새와 산 로렌초 요새는
중세 전쟁사의 박물관과 같다.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플라차(Placa) 대로는 대리석이 깔린 반짝이는 길로, 양옆에는 고딕·르네상스·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대성당, 프란체스코 수도원, 스폰자 궁전은 서로 다른 시대와 제국의 흔적을 간직하며, 한 도시가 시간의 층위를 어떻게 품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특히 현지에서 채굴한 석회암은 낮에는 눈부시게, 밤에는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난다. 건축이란 공간을 채우는 기술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조각하는 예술이었음을 증명한다.


③ 플라차 대로 (대리석 길과 주변 건물)



4. 사회·문화적 파급 — 공존과 긴장의 무대


두브로브닉은 단순한 요새가 아니라 문화의 교차로였다. 동로마와 서유럽, 가톨릭과 정교회, 이슬람과 기독교가 이곳에서 만났다.

아랍 상인들은 향신료와 비단을 들고 왔고,
이탈리아 상인들은 유리를, 발칸의 농민들은 와인과 올리브를 가져왔다.


거리의 언어는 라틴어, 그리스어, 슬라브어, 아랍어가 뒤섞였고, 학문과 예술도 함께 흘렀다.


특히 ‘라구사 법전’은 인권과 상업의 자유를 보장한 진보적 규범이었다.


노예 무역을 조기에 금지했고, 다양한 종교와 언어 공동체가 함께 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는 훗날 유럽의 도시국가들이 모델로 삼을 만큼 선진적이었다.


④ 스폰자 궁전 (상업·문화 교류의 중심지)


5. 철학적 성찰 — 성곽과 바다의 은유


두브로브닉의 성벽은 단순히 적을 막는 방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다라는 무한과 인간의 유한을 가르는 경계였다. 성벽 안에서 시민들은 법과 제도로 삶을 조직했고, 성벽 밖 바다는 교역과 전쟁, 미지의 세계를 품었다.

도시를 걷다 보면, 성벽은 인간이 만든 경계이자 동시에 인간이 무한을 향해 도전하려는 욕망의 상징임을 깨닫게 된다. 성벽과 바다는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순된 두 세계가 맞닿아 있기에 두브로브닉은
인간 문명이 품은 역설의 아름다움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⑤ 도시 위 언덕에서 바다와 두브로브닉성을 내려다보는 장면


6. 현대적 연결 — 보존과 관광의 딜레마


오늘날 두브로브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관광객이 넘쳐나는 대표적 명소다. 그러나 관광객의 발길은 성벽과 건축을 마모시키고 있다. 더구나 1990년대 발칸 전쟁 당시, 도시는 포격을 받아 붉은 지붕과 성벽 일부가 무너졌다. 국제사회의 복원 노력으로 지금은 다시 장엄한 모습을 되찾았지만, 전쟁의 상흔은 아직도 남아 있다.


동시에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으며, 두브로브닉은 세계인의 상상 속에 또 다른 의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화려한 관광 산업과 전쟁의 흔적, 과거의 번영과 현재의 불안정이 겹쳐져, 이 도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문명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아름다움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7. 맺음말 — 시적 울림


석양이 성벽 위를 물들이면 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가 황금빛으로 번진다. 성곽 위에 서면, 바다는 끝없이 펼쳐지고 종소리는 골목마다 메아리친다. 두브로브닉은 여전히 성벽 안에서 시간을 품은 채, 인간 문명의 숭고한 모험을 증언한다.


이 도시는 단순히 과거의 유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속삭인다.


“너희의 성벽은 무엇이며,
너희의 바다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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