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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그림으로 읽는 보티첼리] 2편. 비너스의 탄생

— 바람과 물거품이 만든 영혼의 형상

by 이안

1. 서두 — 피렌체, 우피치의 바람 앞에서


우피치 미술관의 넓은 전시실 한가운데, 마치 바람이 정지한 듯 고요한 공간이 있다. 그곳에 서면 유리 너머로 거대한 캔버스가 눈앞을 가득 메운다. 바다의 푸른 물결, 바람의 곡선, 그리고 조용히 육지로 향하는 한 여인. 비너스는 바다의 거품 위에서 태어났으나, 현실의 인간보다 더 현실적으로 숨을 쉬고 있다. 사람들은 이 그림 앞에서 말을 잃는다.


마치 자신의 기억 속 어딘가에서 이 여인을 본 듯한 감정,
신화가 아니라 ‘내면의 풍경’을 마주한 듯한 울림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적 속에서 우리는 문득 깨닫는다.


보티첼리가 그린 것은 단지 여신의 탄생이 아니라,
‘존재가 깨어나는 찰나의 빛’이었다는 것을.



2. 신화·성서·주제의 서사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비너스(아프로디테)는 크로노스가 잘라낸 우라노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와 바다의 거품이 만나 탄생한 존재다. 즉, 폭력과 아름다움, 파괴와 창조의 경계에서 태어난 신이다. 보티첼리는 이 신화를 단순히 서사로 재현하지 않았다. 그는 신화를 통해 인간 정신의 진화를 그렸다. 왼쪽의 바람의 신 제피로스와 그의 연인 클로리스는 혼돈과 욕망의 힘을 상징하고, 오른쪽에서 비너스를 맞이하는 대지의 여신은 질서와 생명의 상징이다. 두 세계가 맞닿는 중심에 비너스가 선다.


바다에서 태어난 순수함이 육지의 현실로 옮겨가는 순간, 신화는 인간의 세계로 들어온다. 그 찰나의 경계가 바로 이 그림의 시간이며,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열망한 ‘이성의 신화화’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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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 약 1485년 / 템페라·캔버스, 172.5 × 278.5 cm /

우피치 미술관 소장 /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가 바람의 신 제피로스와 클로리스의 숨결에 실려

육지로 향하는 장면. 신화적 탄생을 통해 인간 정신의 ‘의식의 탄생’을 시각화한 르네상스 미학의 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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