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남의 결혼상담소 방문기(1)

-좀,, 어려우시겠네요...(1)-

by 이안

최근에 당근 마켓에서 화분이나 그릇 등을 너무 많이 사서 당근 앱을 지웠었다. 생활비도 빠듯한데 자꾸 지름신이 부추겨서 충동구매를 하니까 앱을 지워야 했다. 그러다가


‘그래도 주말인데, 코로나로 어디 갈 데도 없고 당근 앱이나 다시 깔아볼까?’하고 들어가 봤는데, 특이하게도 결혼정보회사에 관한 소개가 올라와있었다.

“결혼, 진실하게 도와드리겠습니다”
“30년 동안 신뢰와 믿음으로 고객을 만족시켜온 회사”


하단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는데 많이 망설였다.

인천에 사는 친구 P를 비롯해서 몇몇 친구들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친구 P(기자) : 뭐? 재혼? 야 인마 네가 이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재혼이야~
좀 조신하게 반성하고 살아~

피터팬 PD : 그러다가 나 할아버지 되면 어떡해?


친구 L(S은행 지점장 ) : 뭐? 니 잘못을 모른다고?
피터팬 PD : 나는 억울해~ 나는 정말 내가 왜 이혼까지 하게 됐는지 모르겠어
친구 L : 내가 그동안은 너를 좀 가엽게 생각했는데, 네 잘못을 모른다니 확실히 네 잘못이 맞네~


친구 K(L그룹 부장) : 야 피터팬~ 실직자일 때는 결혼상담소 같은데 문의하는 거 아니야~
피터팬 PD : 그럼, 언제 재취업될지도 모르는데, 하염없이 기다리라고?
친구 K : 그러게 왜 [삼프로 TV] 제작총괄이사에서 사퇴를 해가지고 고생을 하냐?
잘 나가는 방송국 PD 하다가, 잘 나가는 유튜브 채널 제작이사까지 됐으면 좀 진즉 하게 있어야지~


대부분 친구들의 의견은 부정적이었다.

심지어 평창동에서 조신하게 몇 년 버티고 있다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다시 들어가라고 얘기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친구 L(운수회사 사장) : 피터팬아~ 지금은 힘들어도 시간이 좀 지나면 아내가 다시 받아줄 거야.
세상 어딜가 봐도 조강지처만 한 사람 없어. 그러니까 몇년후에 다시 재결합 해~
피터팬 PD : 아내는 재결합은 절대 없다고 이미 선을 그었단 말이야~
친구 L : 지금이야 아직 마음속에 앙금이 남아있으니까 그렇겠지,
네가 싹싹 빌고 반성하면 다시 받아주지~
그래도 같이 살아온 옛정이 있는데, 제수씨 그렇게 모진 사람 아닌 거 같더라~


결혼상담소에 전화를 걸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친구들의 이런저런 조언과 잔소리도 결정을 못하게 막았지만, 무엇보다 나 스스로 내 마음을 아직 알지 못했다.


‘내가 정말 20년 동안 사랑했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잘하겠다고 용서를 빌면, 아내가 내 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
’아직도 매일 밤마다 아내와 함께 한 이불에 누워서, 하루 동안 있었던 얘기,
애들 학교 생활 얘기, 세상 돌아가는 얘기, 최근에 읽은 책 얘기, 영화 얘기...
등등을 함께 재밌게 조잘거렸던 시간들이 바로 옆에 있는 듯한데...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을 만나 그렇게 행복한 대화를 나누며 살 수 있을까?‘


아내와 나는 비록 작년에 이혼은 했지만 하루에 한 번, 혹은 이틀에 한번 꼴로는 꼭 전화통화를 해왔다. 아내가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은지, 내가 도와줄 건 없는지, 어제 날씨가 추웠는데 고생하지는 않았는지, 아내가 새로 시작했다는 기획사의 제작 본부장 일은 힘들지 않은지, 무엇보다 두 아들이 아빠 소식을 묻지는 않는지...


피터팬 PD : 애들이 내 소식 안 물어봐?
아내 : 물어보면 그때 얘기해줄게 아직은 마음이 안 풀렸나 봐
피터팬 PD : 내년에 큰 애 대학 들어가면, 큰 애가 좋아하는 삿포로에 겨울여행 함께 갈 수 있어?
아내 : 그때 되면 얘기해.
피터팬 PD : 다음 주에 날 풀리면 서대문구 안산 둘레길에 같이 가면 어때? 엄마 아빠가 이혼해도 가끔씩 만나서 이렇게 산행도 가는 거라고 자기가 잘 얘기해봐 주라~
아내 : ”..................................”


뭐 이런 얘기를 매일 같이 반복했다.

매일 반복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는데, 하루나 이틀 동안 가족을 전혀 보지 못하니까 늘 새 소식 같았기 때문이다.


아내 : 에휴~ 또 그 얘기. 이제 끊어~ 끊어~ 그런 얘기 나오면 끊을 때 된 거야
피터팬 PD : 자기는 정말 나랑 다시 결합 안 해?
아내 : 늦었어요~ 얼른 주무세요~ 나도 내일은 회사에 일찍 출근해야 해~


나와 재결합은 없다는 아내의 입장은 확고했다.

하지만 정말 모르겠는 건, 그게 아내의 진심인지, 아니면 두 아들이 아직은 아빠를 용서하지 않으니까 그러는 건지, 나중에 아이들이 아빠를 원한다면, 아내의 마음도 돌아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 내 나이 벌써 쉰셋.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정말 할아비 되면 어떡하지?‘


결국은, 일요일 밤 9시 30분에, “30년 동안 고객의 신뢰에 믿음으로 보답해왔다’는, 그 결혼정보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일요일 밤이라서 당연히 아무도 안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꼭 통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전화를 한번 걸어보면 무슨 일이 생길지 궁금해하면서 걸어봤다.

원장님 : 여보세용~
피터팬 PD : (헉! 전화를 받잖아?)
원장님 : 상담전화 주신 거예요?
피터팬 PD : 예... 그니까,, 전화를 받으시네요?
원장님 : 호호호 그럼요~
피터팬 PD : 네에..... 저는 작년 봄에 이혼했어요. 잘못한 게 많아서 쫓겨났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시작된 원장님과 나의 대화는 거의 1시간이 이어졌다. 올해 예순 세 살이라서 나보다 열 살 연상이신 원장님과 나는 결국, '누님 동생, 의남매'를 맺었고, 다음날 월요일 오후 5시에 상담소에서 직접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피터팬 PD : 저는 예쁜 여자분만 만날 건대요?
원장 누님 : 어이구 동생 ~ 그게 어디 쉽나?
예쁜 여자분들은 다 자기도 예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조건이 까다롭다고.
피터팬 PD : 제 아내는 정말 예뻤단 말이에요.
저는 아내가 같이 마주 앉아 있으면 천사가 앞에 있는 거 같았어요.
원장 누님 : 참.. 또 거짓말하네~ 어제 전화 통화할 때는 동생이 송중기라고 말했었잖아~
송중기에 한참 못 미친다고 ~ 어디 아내 사진 줘봐!
피터팬 PD : 제 아내는 진짜 미녀라니까요! 방송국에서도 소문난 미녀 작가였어요. 이거 보세요
원장 누님 : 헉! 정말 미인이네 ~ 난 처음엔 안 믿었는데.
아니 동생보다, 내가 이분한테 꼭 좋은 남자 소개시켜줄 거야!
내가 자신 있어. 의사하고도 결혼시킬 수 있겠네
피터팬 PD : 이보세요? 누님? 지금 상담하러 온 사람은 전대요?
원장 누님 : 어머! 어머! 이 사진도 예쁘네. 자기 아내 정말 미인이다. 사람도 참 착하게 생겼네~~
피터팬 PD : 여보세요? (우쒸! )


--------(돌싱남의 결혼상담소 방문기는 내일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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