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조건이면 어렵겠는데요..(2)-
우선, 모두가 궁금해할 가격은 이랬다.
- 3번 맞선 주선에 선불로 100만 원.
- 단, 250만 원을 한꺼번에 내면 결혼할 때까지 무제한 맞선.
그러니까 나와 결혼하기에 적당한 연령대의 여성분을 한번 소개해주는 비용이 33만 원인 셈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에 내가 대학 동기들이나, 평창동 주인집 누님한테 33만 원을 드린다면 맞선 주선을 해줄까? 요즘 가성비란 말을 많이 한다. 같은 33만 원을 쓸 때, 어느 쪽이 더 가성비가 높은 걸까? 몇 번 곰곰 생각해봤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그건 그렇고, 나와 '누님~ 동생~ 사이'로 지내기로 한 상담소 원장님이, 나의 전 아내에게 의사를 소개해주고 싶다는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피터팬 PD : 우리 원장님 말씀 차암~ 섭섭하게 하시네~
제 아내는 절~~~ 대로, 뭐, 의사니 판검사니 그런 간판에 넘어갈 사람이 절~~~ 대 아니에요~
우리 집사람은 아니,, 제 전 부인은, 오로지 일부종사, 저만 평~~ 생 따르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요~
원장님 : 아니 그럼 동생은 일부종사한다는 부인한테 쫓겨난 거네?
피터팬 PD ; 아이! 참~ 쫓겨났다기보다, 저희 집 아이들과 관련해서, 제 아내와 저의 심오한 교육 철학의 관점이 좀 달랐다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쉽게 말해서 '인생관', 학문적으로 말해서 '철학'의 차이였을 뿐이었지, 우리의 사랑이 식은 건 절~~ 대로 아니었다니까요!!
그리고 제 아내는 의사, 판검사, 뭐 이런 부류의 간판만 번지르르한 사람들은 거들떠도 안 봐요~~
오로지 저의 이글거리며 불타는 순수한 사랑, 저의 진실한 마음, 수정 같은 눈빛 뭐 이런 것만 보고
저를 선택한 거라고요. 아니 그러고 보니 우리 원장 누님은 과거에 뜨겁던 '진실된 사랑'에 대해서 다 잊으셨나 보네~
원장님 : 그니까 쉽게 말해서 철학이 달라서 쫓겨났다는 거네?
피터팬 PD : 참내 쫓겨난 게 아니라니까, 그리고 우리 부부는 헤어지기 하루 전까지도 매일 밤마다 침대에서, 그 뭐시야... 부부간의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아주 아주,, 겉궁합은 물론 속궁합까지 딱딱 잘 맞는 사이였어요. 그리고 우리 부인은 재벌집에서 데려간다고 했는데도, 현빈보다 잘 생긴 남편, 바로 저, 피터팬 PD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재벌집 며느리도 마다하고 저한테 온 사람이에요.
의사 판검사 뭐... 이 따위 것에는, 눈 하나 꿈적 안 한다고요~
원장 누님 :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속궁합이 아주 좋았는데 쫓겨났다는 거네? 그럼 동생 성격에 큰 결함이 있나??
내가 아무리 변명을 해봐도 '고객의 신뢰에 믿음으로 보답하는 결혼 성사 35년 경력'의 원장 누님한테는 통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 얘기를 하다 보니 퍼뜩! 심각한 고민이 다시 떠올랐다. 비록 내가 지금 결혼정보 업체에 와서 상담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20년 동안 사랑했던 아내가 아닌 생면부지의 다른 여자를, 내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설혹 만난다 해도 둘이 만나서 뭘 하지?
너무도 오래전 기억이라서 선사시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추억쯤으로 묻혀버린 단어들,
밀당 / 밤을 지새우는 전화통화 / 집 앞 골목에서 마음 졸이며 기다리기 /
싸우고 삐쳐서 서로에게 소모적인 감정싸움하기...
뭐 이런 걸 다시 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낯 간지러운 소위 '설레는 데이트'라는 걸 '이 나이'에 다시 한단 말인가? 예를 들어서,
1. 결혼정보 업체에서 소개해준 '신비의 여인'을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만난다.
2. 파스타와 와인을 시킨다.
3. 둘이 수줍은 듯, 설레는 듯한, 뭐 그런 분위기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4. 대화로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탐색전을 벌인다.
5. 그러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이 생기면, 낭만적인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가장 비싸다는 에티오피아 원두커피와 영국 직수입 명품 홍차를 주문한다.
이어서,
피터팬 PD : 지금 나오는 로맨틱한 재즈 음악은, 베니 굿맨 오케스트라의 <IF I HAD YOU>네요. 제가 MBC 라디오에서 최고의 음악 PD로 명성을 날리던 시절,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BG 음악으로 자주 쓰던 곡이에요. 뭐, 제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처음 이 곡을 찾아서 선곡을 하니까, 다른 PD들도 다 따라 하더군요. 하하하하~ 따라쟁이들 같으니라고~ 그래도 듣는 귀는 있어서, 하하하하~
신비의 여인 : 어머나 그러세요~? 정말 음악 전문가이신가 봐요? 음악 많이 아는 분 봬면 너무 멋져 보이더라~ 호호호호~~ 저도 음악 좋아해요. 심야에 잠이 안 올 때 라디오 즐겨 들어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은 신비로운 같아요~ 외로운 마음에 위안을 주니까요.. 호호호호~
이런 대화를 다시 하란 말인가? 그것도 생판 모르는 여인을 만나서? 처음부터 다시?
내 나이 서른셋이던 2001년 겨울, 눈부시게 아름답던 아내와 처음으로 단 둘이 만나자는 약속을 잡고 설레던 그 밤이 생각난다. MBC 라디오 본부에서 만나 2년 동안이나 몰래 짝사랑했던 아내와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는 기쁨에 밤 잠을 설치며 행복해했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제게 이렇게 좋은 인연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말 제가 잘할게요'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던 그 밤.
<지금은 이혼한 아내와 처음 약속을 잡았던 그날, 밤하늘의 별은 빛났다>
하지만 이런 걸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 열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게 그런 열정이 아직도 남아 있었나? 생각만 해도 피곤해진다. 그냥 침대에 쓰러져서 휴일에 낮잠이나 자는 게 낫지 않을까?
혹시라도 그 '신비의 여인'이, 나의 이혼한 아내라면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나의 예쁜 아내를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하얏트 같은 5성급 호텔 로비에 미리 예약을 잡고, 올드팝을 멋들어지게 불러대는 중창단의 라이브 음악을 감상하면서, 아내에게 재결합을 하자며 사랑고백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도 두근대는 나의 심장에는 헤어진 아내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으니까.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그럴 자신은 없었다. 그만한 열정이 없다. 만약에 그 여성분이 헤어진 아내보다 더 미인이라면 마음이 바뀌지 않겠냐고? 남자들은 이성을 택할 때 외모가 판단 기준의 99%를 차지한다지만, 과연 쉰세 살의 늙은 남자에게도 그럴까?
피터팬 PD : 원장 누님. 제가 보기에는 마음에 드는 분이 없는 거 같아요.
원장 누님 : 무슨 눈 높은 소리야? 여기 봐봐~ 여기! S대 영문과 나왔잖아. 그리고 여성분이 이렇게 좋은 조건인데도, 재혼남도 괜찮다고 쓰여있잖아. 이런 복덩이가 어딨다고 그래? 영어 강사도 했다니까, 2세를 가지면 영어교육은 여자 쪽에서 확실히 하겠네. 그리고 여기 봐봐~ 인물도 얼마나 괜찮아~~ 이거 자기가 정말 내 동생 같으니까, 특별히 비용도 싸게 해주는 거라고~
피터팬 PD : 별로 안 예쁜 대요? 제 아내가 훨씬 더 미인 인대요? 그리고 이 분 말고, 저쪽, 저기 있는 분들이 훨씬 미인이신대요?
원장 누님 : 이그! 그쪽은 다 조건이 의사 아니면, 판검사야! 그런 미인들은 의사 아니면 아예 약속도 안 잡는다고!
피터팬 PD : 여자들은 왜 의사를 좋아해요?
맨날 진료실에서 환자만 보고고, 별 재미도 없고, 사무적이고, 가정적이지도 않을 거 같은데...
원장 누님 : 의사는 연봉이 최소 3억이잖아~ 솔직히 말해 동생은 지금 내세울 게 뭐 있어? 월 소득이라고 해봤자, 신문사에 칼럼 써서 고작 40만 원 받는다면서? 그런 남자를 어느 여자가 좋다고 하냐?
남자는 경제력이지~~
피터팬 PD : (치이.. 연봉이 3억이면 3억을 다 어디에 쓰지? 쓰지도 못할 돈 생긴다고 좋을 걸 또 뭐람? 내가 최근 2달 동안 당근 마켓에서 화분 112개를 샀는데, 그거 다 합쳐도 300만 원이 넘지 않았는데... 나는 화분 112개만 있으면 평생 충분히 행복할 거 같던데.. 3억이나 되는 돈을 뭐에 쓰려고 의사가 좋다고 그럴까?...)
<돈과 결혼의 상관관계가 어떻게 될까? 반면 내가 사랑하는 나무 화분들과 결혼의 상관관계는??>
-----------(돌싱남의 결혼상담소 방문기 (3) 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