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는 풍경 : [Vincent ] by Don McLean-
MBC 라디오에서 PD로 재직했던 필자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두 번 연출했었다.
첫 번째는 1996년 12월 1일에 이문세 씨가 별밤지기에서 하차하고, [패닉]의 보컬 이적이 별밤을 맡았을 때였는데 그때는 이문세 씨가 별밤에서 그만둔다는 것도 충격이었고, 이어서 바통을 이어받은 진행자가 이적처럼 어린(?) 대학생이었다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당시를 회고해보면 이적 별밤지기가 진행했던 [별밤]은 참신한 시도를 많이 했었고, 매일 호화 게스트들로 방송을 채웠지만 국내 라디오 방송 중 최고의 청취율을 자랑하던 [이문세의 별밤]에 비교하면, 초라한 청취율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이후 별밤은 여러 차례 진행자가 바뀌었는데, 지금은 뮤지컬 가수로 대성공을 한 [핑클]의 옥주현이 별밤지기가 된 이후에야 다시 심야 라디오의 제왕에 오를 수 있었다.
필자가 두 번째로 [별밤]을 연출한 것은, 2008년 가을부터 2009년 가을까지 박경림 별밤지기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할 때였다. 박경림은 전설의 별밤지기 이문세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할 때, 고등학생 보조 MC로 방송 생활을 시작했었다.
당시에 경림은 워낙에 입담이 좋고, 순간순간 빵빵 터뜨리는 순발력으로 순식간에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특히 [이문세의 별밤]이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같은 나이 또래의 보조 MC인 박경림이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니 어린 청취자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박경림과 필자는 1년간 별밤을 함께 만들었다. MBC 라디오의 대표 심야 프로그램인 [별밤]에는 최정상의 인기 스타들도 비교적 쉽게 섭외할 수 있었는데, 3집 [좋은 날]을 발표하기 직전에 인기가 한창 오르고 있을 때의 아이유는 매주 수요일의 고정 게스트였다.
당시에 아이유는 오후까지 학교를 다녔던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별밤이 시작하는 밤 10시에 피곤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었다. 어떤 날은 대기실에서 피곤한 모습으로 하품을 하는 아이유를 보고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음과 몸이 더 자라날 나이에 늦은 시간에는 방송 출연한 다는 게 너무 힘든 건 아닌지? 당시 PD였던 내가 별밤 청취율 욕심 때문에 어린 아이유를 혹사시키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유의 기획사도 아이유 본인도, 우리나라의 대표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인 별밤에는 꼭 출연하고 싶어 했고, 또 경림 별밤지기와 함께 보조를 잘 맞춰가면서 진행을 했기 때문에, 수요일 밤의 별밤은 많은 청취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2008년 필자가 연출하던 [별밤]에 출연했던 고등학생 아이유는, 2021년 28살의 성숙한 여인으로서 5집 발표를 앞두고 있다. 사진 출처 : 아이유 뮤직비디오 [Celebrity] >
당시에 유행했던 말 중에 남자 청소년 학생들이 문자로 보낸 ‘아이유 위주로 합시다!’라는 우스개가 있었다. 아이유의 목소리를 듣는 게 너무 좋으니, 쉰 목소리를 내는 박경림 대신 아이유가 말을 많이 하게 하자는 농담이 섞인 애정 공세였고, 그럴 때마다 경림 별밤지기는 ‘이 문자 번호 내가 기억해 두겠어! 가만 안 두겠어!’라며 응수했는데, 아이유는 경림의 재치 있는 말투에 까르르 웃곤 하면서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방송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금세 파악하고, 청취자들을 기분 좋아지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덕선이(혜리)와 택이(박보검)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tvn의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화제를 일으켰던 MBC 라디오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1988년 당시만 해도 반에서 공부를 제일 못하는 날라리 동룡이와 덕선이도, 모범생 선우와 바둑 천재 택이도 모두 듣는 프로그램이었다.
1988년으로부터 30년이 더 지난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라디오라는 매체는, 오래된 골동품 상자에서 나오는 아날로그 시절의 향수 같은 걸 지도 모르겠다. 유튜브 혹은 넷플릭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니까. 옛 추억을 젖어, 라디오의 매력을 모르는 요즘 세대들을 안타까워하는 기성세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소년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자신의 푸른 꿈과 정서를 키워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름다운 감정과 공감하는 매체의 방식이 바뀌었을 뿐, 그 감정을 느끼고 감동하는 인류라는 생명체의 본질은 여전하니까.
<한 방에 함께 모여 라디오를 듣던 그 시절의 아이들. 왼쪽부터 덕선이, 선우, 정환이, 동룡이. 사진출처 :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
오늘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듣고 싶은 음악은 Don McLean의 [Vincent]이다. 불멸의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노래이기도 한 이 노래는, 시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던 고흐의 고뇌와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Vincent]가 수록된 돈 맥클린의 1971년도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빌보드 차트 1위까지 올라간 곡은 [Vincent]가 아닌 [American Pie]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영국 등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는 단연 [Vincent]였다.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나는 이제 알 수 있어요
당신이 내게 무얼 말하려고 했던 건지
그리고 당신이 제정신을 유지하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당신이 그것들을 자유롭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지는
사람들은 듣지도 않고 알지도 못했죠
아마도 이제는 듣고 있을 거예요.
-Vincent / Don McLaen 가사 중에서-
돈 맥클린은 19세기 네덜란드의 화가였던 반 고흐에 관한 책을 읽던 어느 날 아침에, 반 고흐의 [The Starry Night :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노래 [Vincent]에 <starry, starry night>라는 부제를 붙이기도 했다.
<돈 맥클린의 [Vincent]가 수록되었던 1971년도 앨범 >
세월이 흐르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해도, 우리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감동을 받는 건 여전할 것이다. 1988년에 수유리 골목에 살던 덕선이와 정환이가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서 세상과 교감하려고 했던 것에서, 유튜브와 AI 스피커 그리고 스마트폰 속의 넷플릭스와 구글로 세상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영혼을 다 바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했던 빈센트 반 고흐의 [별밤]과, 돈 맥클린의 감동적인 [Vincenet]가 세대를 초월해서 사랑받고 있는 것처럼.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 작품 중의 하나인 빈센트 반 고흐의 <The Starry Night>. 뉴욕 MoMa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