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는풍경/메리 홉킨[Those were the days]
간호사 : 일어나실 수 있으세요? 내시경 상으로는 괜찮으세요.
피터팬 : (예? 위암 4기가 아니라고요? 그... 그럴 리가 없는데...)
간호사 : 자세한 상담은 담당 선생님과 예약 날짜 잡아드릴 테니, 그때 물어보시고요.
'에이~ 망했다!'
나는 시한부 환자가 아니었고, 나에게 마음고생을 시켰던 사람들에게 받고 싶은 사과를 받을 기회는 날아가고 말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수면 내시경 중 잠시 스치듯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헤어진 아내와 아이들이 보였다. 꿈속의 아이들은 '더 이상 아빠를 만나지 않겠다'던 아이들이 아니었고, 내게 살갑게 굴던 시절의 두 아이들이었다. 아내도 내게 친절했던 것 같았다.
회사 동료들과 행복했던 시절도 보였다. 작년 봄 서울의 벚꽃이 채 피기 전에 내가 제주도로 내려간 이후, 내게 원수라도 진 사람처럼 한 번도 연락을 해주지 않던, 또는 내가 연락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던 회사 동료들이 아니었다. 함께 즐겁게 프로그램을 만들던 그때의 동료들이었다.
피터팬 : 운전해서 가도 되나요?
간호사 : 안돼요. 오늘은 절대 운전 같은 거 하시면 안 돼요. 보호자랑 같이 오지 않으셨잖아요.
피터팬 : (네... 여의도에 온 김에, 벚꽃놀이나 하다 가야겠네요...)
아내와 아이들이 지금도 살고 있는 여의도 아파트 단지 내에는 봄이면 유난히 벚꽃이 예쁘고 환하게 피었었다. 벚꽃은 낮에도 예뻤지만 밤에 달빛을 받을 때 특히 더 예뻤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와 한가족이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옆을, '무슨 도둑질이라도 한 사람인 양' 재빨리 지나쳐서 여의도에 새로 문을 열었다는 <더 현대 백화점> 앞을 서성였다.
그 건물 앞에도 새로 옮겨 심은 벚나무의 꽃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백화점 맞은편, 내가 20여 년 동안 일했던 옛 MBC 부지에는 낯선 건물이 한창 공사 중이었다. MBC가 사옥을 상암동으로 옮기도 나서도 한동안은 여의도의 정든 술집들과 이런저런 식당들을 둘러보았었다. 하지만 MBC 동료들이 없는 여의도는 마치 헤어진 연인과 함께 들렀던 슬픈 기억을 간진한 공간처럼 애잔한 마음이 들게 했다.
유난히 파업을 많이 했던 나의 전 직장 MBC 문화방송 동료들은, 기나긴 파업기간에 치킨과 맥주를 팔던 호프집의 다락처럼 생긴 작은 2층 공간에 둘러앉아 밤이 새도록 얘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또 누군가는 서로의 멱살을 잡고 싸움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힘든 시간을 보낼 때에도, 새벽 어스름에 몸이 떨릴 때쯤이면 돌아갈 가족과 집이 여의도에 있었다.
가족과 함께 살던 그 모든 아름답고 아픈 추억을 골목골목마다 간직하고 있는 장소들을 몇 바퀴 돌다 보니, 마포대교 건너편에 위치한 아내와 함께 신혼 생활을 시작했던 [토정동 한강 삼성 아파트] 생각이 났다. 그 시절에 큰 아이가 태어났고, 신혼의 우리들은 서로 사랑하면서 평생을 함께 살 거라고 믿었었다.
토정동의 신혼집 옆에는 토정 이지함 선생의 생가터가 있었고, 고깃집이 유난히 많아서 저녁 무렵 길을 걷다 보면 늘 고기 굽는 냄새가 났었다. 우리 부부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퇴근 후 하루의 피로를 삼겹살과 소주 한잔에 씻어버리는 넥타이 부대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 아파트의 놀이터 시설은 낡아서, 길 건너 새로 지은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큰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며, 아침이고 밤이고 아내와 함께 산책을 했었다. 봄이 오면 토정동에도 벚꽃이 피었었다.
오늘 오후 내내 벚꽃 그늘 아래에서 서성였던 여의도에 밤이 오자, 토정동 그 옛 동네를 찾아갔다. 유난히 밝은 달빛에 메밀꽃들이 마치 하얀 왕소금을 뿌려놓은 듯했다던 [메밀꽃 필 무렵]의 그 달밤처럼, 반짝이는 벚꽃잎들이 일제히 달빛을 더욱 영롱하게 만들고 있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서럽고 아름답던 그 달밤처럼, 서울의 봄밤에도 벚꽃들이 황홀경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오늘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듣고 싶은 노래는 메리 홉킨의 [Those were the days]라는 노래이다. 메리 홉킨은 15세가 되던 해에 기타를 선물로 받아 독학으로 마스터하고, 영국 웨일스 남부의 클럽을 전전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TV 쇼 프로그램의 아마추어 노래 대회에 참가하여 최고상을 따내기도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소개로 폴 매카트니를 만나면서부터 스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녀의 뛰어난 가창력과 신선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의 매력을 금세 알아차린 폴 매카트니는 비틀스에서 직접 세운 레이블인 애플 레코드의 제1호 소속 가수로 메리 홉킨과 계약을 했다. 영국과 미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녀의 [Those were the days]는 1968년 가을에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랐다.
Just tonight I stood before the tavern.
Nothing seemed the way it used to be
In the glass I saw a strange reflection
Was that lonely woman really me
Those were the days my friend,
We thought they’d never end
We’d sing and dance forever and a day
We’d live the life we’d choose,
We’d fight and never lose
Those were the days, oh yes, those were the days
오늘 밤에 술집 앞에 서 있었지
아무것도 예전 같지는 않았어.
유리에 비친 어색한 모습을 보았어.
그 고독한 여인이 정말 나였을까?
그 시절은 정말 좋았어 친구야
우린 그런 날이 영원하다 생각했지
끝없이 노래하고 춤출 수 있으리라
우리가 택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싸우리라 그리고 지지 않으리라 생각했지
그 시절이 좋았어, 그래, 그때가 좋았어
< 지금으로 치면 인기 절정의 가수 아이유처럼 예쁜 외모에,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던
메리 홉킨의 젊은 시절 모습 >
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봄날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꽃이 핀 한창때의 시절은 좋은 기억으로 남겠지만 결국 질 것이다.
하지만 초록의 여름에 나무는 무럭무럭 다시 힘차게 자라날 것이다.
꽃이 진 뒤에도 더욱 힘차게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나무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모두의 가슴에도 좋았던 시절의 추억과 함께,
희망이라는 초록잎이 자라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 메리 홉킨 이 그녀의 최고의 히트곡 [Those were the days]를 부르던 1968년도의 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