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 보호자와 같이 오셨어요? 피터팬 : 아니요 간호사 : 그럼 수면 내시경은 하실 수 없어요. 피터팬 : 안돼요!! 저 수면으로 안 하면 자꾸 토한단 말이에요. 수면으로 해주세요 간호사 : 예약하실 때 보호자와 같이 오셔야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피터팬 :......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몇 개월째 음식을 먹으면 자꾸 토할 거 같다. 공복일 때나 새벽에는 속이 쓰리고 아파서 깨기 일쑤였다. 몇 주전에는 삼겹살에 소주 약속을 하고 대학 동기 친구 둘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위가 너무 아파서 친구들만 먹고 오라고 하고 나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누워있어야 했다.
내가 생각하는 원인은 3가지 정도인데, 하나는 새벽마다 잠을 안 자고 술을 마신다. 두 번째는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4달째 간편 조리 식품만 먹고 있다. 그나마 제주도와 순천에서 살았던 1년 동안은 집에서 조리를 해서 음식을 해먹었는데, 매일 혼자 먹는 밥에 질려버렸는지 이젠 요리와는 아예 담을 쌓았다. 세 번째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도 있는데, 식사가 너무 불규칙하다. 어떤 날은 오후 5시에 일어나서 한 끼만 먹고 자고, 어떤 날은 3끼를 다 먹는 날도 있는데, 대개 2끼 이상 먹는 날이 거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주도로 내려갈 때도 내게 역류성 식도염으로 약을 처방해 주었던 여의도 성모병원 소화기내과에 다시 들렀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위 내시경을 한 지 2년이 넘었으니까 다시 한번 해보자고 권했고 오늘 아침 공복인 채로 예약된 위내시경실을 찾았다.
간호사 : 수면 내시경은 보호자분이 오셔야 해요.
피터팬 :.... 저 혼자 산단 말이에요. 저 아내하고 이혼했어요. 홀아비예요
그러자 간호사는 보호자 없이 수면 내시경을 하려면 해독제도 같이 맞아야 하는데 동의하겠냐고 물었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 보호자...'
위 내시경실에서 기다리는 30여 분동 안, 쉰 살의 늙은 홀아비인 내게 보호자가 있나 생각해봤다. 아흔이 다 되어 거동도 불편하신 부모님이 내 보호자가 될 수는 없을 거 같고,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회사 동료들에게 어찌어찌 설명을 하고 보호자 요청을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간호사가 말했던 그 '보호자'라는 게 없는 거 같았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나의 보호자’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가족이 항상 내 곁에 있었으니까, 나의 보호자에 대해서 굳이 생각해야 할 상황이 생기지도 않았던 거 같다. 그보다는 '내가 누군가의 보호자'였던 적이 더 많았다. 이혼한 아내가 병원에 가면 보호자로 내 이름을 적었고, 두 아이들은 작은 치료라도 받을 때면 병원에 내 전화번호를 적어두었기에 이런저런 병원에서, "000 아동의 보호자 되시죠?"라는 전화도 곧잘 받았었다.
MBC에서 근무를 할 때도 방송국 프로그램의 최종 책임을 지는 프로듀서였기에, 진행자와 게스트들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책임을 질 테니 걱정하고 말고 소신껏 방송하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관리자로 있을 때는 후배 PD들이 이런저런 어려움을 호소하면 '책임은 부장인 내가 지겠다. 내가 보직을 사퇴하더라도 지켜주겠다'는 말을 더 자주 했었다.
하지만 오늘 성모병원 내시경실에서 수면 주사를 맞기 전까지, 내게는 나의 보호자도 내가 보호해줄 피보호자도 없는 거 같았다. 수면 주사가 내 혈관을 타고 들어오고 스르륵 잠이 들기 전 몇 초동안 잠깐이지만 엉뚱하고 고약한 생각도 들었다.
‘만약에, 수면 내시경 결과 위암 4기 판정을 받는다면, 그래서 내가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면, 죽기 며칠 전의 나를 찾아올 이혼한 아내와 아이들은 내게, '그동안 미안했다'라고 말하지 않을까? 나를 괴롭혔던 회사의 임원들도 내게 미안한 마음을 갖겠지? 그거 잘됐다! 꼬시다! 내가 마음고생했던 것만큼, 다들 마음고생들 좀 해보시라고~~~’
보호자와 피보호자, 누군가에게는 미안한 마음과 또 다른 누군가에게서는 사과를 받고 싶다는 마음, 시한부 인생의 홀아비 환자와 비록 이혼은 했지만 건강하게 살아가는 홀아비, 이런저런 상반된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면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간호사가 나를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