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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Jan 29. 2022

소설가 P의 친구들.

-방송국 PD H와, 은행원 K-

 

소설가 P는 MBC 라디오에서 2020년까지 25년을 근무했다.

좋은 시절이었다. 참 좋은 뮤지션이었던 이적도, 이소라도, 윤종신도, 타블로도 매일 볼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라디오 청취자들과 공감하는 시간들은 늘 행복했었다.    

  

90년 대 후반 인기 초정절의 아이돌 HOT도 핑클도, 록발라드의 황제 이승환도, 발라드의 큰 형님 유영석도 한국 가요의 핵심 거장 윤상도 김현철도, 이후 샤이니도 소녀시대도 2PM도 빅뱅도 2NE1도 보아도 아이유도 전화 한 통이면 MBC 스튜디오로 불러내서 그들의 음악과 인생에 대해서 함께 얘기하고 생방송으로 청취자들과 소통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해외 아티스티인 Jason Mraz(제이슨 므라즈)도 Rihanna(리하나)도 Billy Ailish(빌리 아일리쉬)도 그 누구라도 한국을 방문한 팝 스타들은 MBC 라디오를 찾아왔고 소설가 P는 그들과의 교분을 쌓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설가 P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지금도 정확한 이유를 잘 모르겠고 어디서 갑자기 P에게 그런 극악한 저주가 내린 건 지 이해할 수 없지만,

어느 날 눈을 떠보니 P는 더 이상 MBC 라디오 PD가 아니었고, 그의 모든 동료들은 그에게 등을 돌린 채 연락이 두절되었고 소설가 P는 혼자 살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것도 물론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더 이상 소설가 P를 보지 않겠다고 2020년 2월 선언을 했다. 소설가 P는 그 누구와도 만날 수 없었고 또 자발적으로도 만나지 않으면서, 두더지가 굴을 파듯이 혼자만의 어두운 방바닥 밑으로 꺼지듯이 굴을 파고 들어갔다. 그곳은 엉망진창의 진흙 구덩이 속이었고, 소설가 P는 땅바닥 더 깊은 지하로 추락하듯이 깊고 어두운 심연을 찾아서 끝없이 끝없이... 인간의 깊은 내면을 갉아먹듯이 땅굴을 파고들었다.     

 

어느 날 소설가 P의 여든 살이 넘으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아, 너 지금 어디 있느냐?

제주도에서 1년을 살면서 엄마 아빠에게 아무런 연락을 안 했으면서 지금은 서울로 올라왔다면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네가 평창동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해서

내가 지난주에도 경복궁 뒤를 3번이나 다녀갔다.

아들아 경복궁 뒤에 있는 어느 집엔가는 네가 살고 있는 게냐? "


소설가 P의 아버지도 전화를 했다.      


"아들아, 엄마가 네 주소도 모르면서 무작정 너를 찾겠다고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을 달려가서 너를 찾아 헤매고 있단다. 아빠는 허리에 큰 암덩이가 생겨서 움직일 수 없어 못 갔다. 제발 네 어미 좀 만나줘라."


하지만 소설가 P는 그 누구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만날 수 없었다. 아직 땅굴의 제일 바닥까지 가지 못했고 게다가 단단한 암반층이 있어서 돌아서 굴을 더 파려면 세상 속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양상추 두 잎만 먹으면서도 하루에 1 미터 이상의 굴을 파는 시간들은 힘들고 고됬지만 굴을 파서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도무지 햇빛이 너무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25년 동안 청춘과 가족을 희생하면서 헌신했던 회사로부터는 버림을 받았다는 처량한 처지는 햇빛을 더욱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소설가 P의 삶에서 '25년이란 시간'이, 마치 컴퓨터의 자판 DELETE 키로 삭제되듯 사라졌는데 도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낼모레면 설,

지난 2년간 아무도 연락을 해주지 않고, 또 연락을 해도 받아 주지도 않던 회사 동지들에게 새해 인사를 보냈다.      


H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다복한 가정 안에서 후배님이 늘 행복하시길 빕니다     

저는 애초에 혼자될 팔자였나 봅니다

가족을 못 본 지 2년이 넘어가네요     

후배님이 저의 회사 생활 중에 늘

제가 바른 판단을 하도록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셨는데

보은도 못해주고

이렇게 연락이 단절돼서 늘 미안했습니다     

후배님

저는 비록 엉망진창 똥통에서 살아가지만

님은 늘 건승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답신을 기대했던 건 아니다. 답신을 보내줄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를 그리 모질게 쫓아냈던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미련이 있다고 답신을 보내주겠는가? 소설가 P가 이토록 절망적인 생각에 집착하게 된 건 얼마 전 대학 동기 은행원 K를 만난 이후 더욱 커져만 갔다.      


은행원 K는 대학시절 1학년까지는 좋은 친구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학년 겨울방학에 일찍 군대에 갔다 오고 나서 갑자기 친구 K는 돌변해있었다. 주위에 고통받는 노동자 도시 빈민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출세만을 향해서 무소의 뿔처럼 돌진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러더니 대학 친구 K는 우리나라 최고의 은행에 취업을 했다. 그런데 은행이란 곳은 K를 더 악질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악덕 고리대금 업자 샤일록의 후손인 은행원들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자신이 갖고 있는 1원을 지키려고 가난한 자들의 살점을 예리하게 날이 선 칼로 베어내는 자들이 아니던가?

은행원 K는 지난 30년 동안 그런 삶을 살아왔다. 자신의 돈 1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의 눈알도 파내고 남을 사람이 되었다.      


그런 K와 소설가 P 사이에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한 달 전 지방에 사는 또 다른 친구 Y가 급전이 필요하다고 소설가 P에게 연락을 했다.

소설가 P는 카드빚 19.5%에 다섯 장의 카드에서 각각 천 만원씩, 5천만 원을 급히 인출해서 지방친구 Y에게 보내주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는데 사실 Y는 소설가 P보다 악덕 은행원 K에게 먼저 연락을 했었다.      


- 급전이 필요한 친구 Y :  K야 내가 정말 급해서 그런데 5천만 잠시 빌려줄 수 없겠니

-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DNA를 가진 은행원 K : (흥? 어림없는 소리 내 돈 1원도 남에게는 줄 수 없지) 내가 바빠서 다음에 다시 연락합시다. 뚝.     


이런 사연이 있고 난 얼마 뒤에, 소설가 P는 은행원 K를 을지로 고급 한정식 식당에서 만나게 되었다.

K가 국내 굴지의 S은행에서 고위직이 되었다며 한턱 쏘겠다는 거였다.      


K : (법인 카드로 쏘는 거니까, 뭐 내 돈 아니니까.. 그래도 한도가 넘지 않게 적당히 사줘야지)      


그런데 이 자리에서 은행원 K가 노발대발 난리 환장 대잔치를 벌이는 소동이 벌어졌다.

소설가 P가 급전이 필요한 지방 친구 Y에게 돈을 꿔줬다는 사연을 듣게 되자,  갑자기 은행원 K는 소리를 지르면서 몽둥이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소설가 P에게 엎드려뻗쳐를 하라고 하더니 몽둥이를 마구 휘둘러 댔다.

 

K : 야! 돈도 없는 가난한 거지 같은 소설가 나부랭이 주제에 네가 뭐라고 돈을 꿔줘? 응 너 때문에 내 위신이 깎이게 되었잖아. 은행원에게 위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응? 은행원의 위신은 신용평가 점수 0.00005점에 해당돼! 너 같은 멍청한 놈이 그걸 알기나 해? 0.00005점이면 내 연봉에서 자그마치 10원이 손해 난단 말이다! 내가 밥 사주면서 너한테 위신까지 깎여야 되는 거야? 너는 거지처럼 내 가랑이 밑에서 주는 밥이나 주워 먹으면 되는 거야? 이 그지 같은 놈아! 에잇 맞아라! 나의 강력한 몽둥이찜질을!     



<은행원 K에게 몽둥이 찜질을 당하게 만든 10원 >


은행원 K는 샤일록이 빈민들을 때려잡듯이 몽둥이를 마구 휘둘러댔다. 소설가 P는 군대 시절 이후 처음으로 원산폭격을 하고 몽둥이찜질을 당하면서 아프다기보다는 슬프다는 생각을 했다. 한때 대학 1학년 시절 잠시나마 소중했던 친구가 그깟 돈 10원에 친구들에게 등을 돌려버리는 사람이 되어있다는 현실 때문에... 그리고 나의 소중한 친구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국내 굴지의 S 은행에 저주를 퍼부었다.      


소설가 P는 부어오른 엉덩이를 비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괜히 굴에서 나왔어, 역시 나는 두더지처럼 땅속에서 처박혀 있어야 하는 건데. 에이씨 그런데 겨울밤 하늘의 달은 왜 이리 예쁜 거야. 눈물 나네. '    


소설가 P는 오늘도 집으로 돌아와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 잠자리를 펼쳤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핸드폰이 반짝였다. 카톡이 온 것이다.     


-악덕 은행원 K : 너는 아무튼 한심한 놈이다 이 거지놈아. 돈도 없는 주제에 내 위신에 스크래치를 내! 니가 감히! 나가 뒤져라 이놈아!     


그리고 또 한통의 카톡,


- 방송국 후배님 H : 저 항상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요. 선배님 건강하세요 부디. 몸도 마음도.     


두더지 땅굴속에서 소설가 P는 다시 닭의 똥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있는 동지들이 MBC에 한 명은 있구나. 한때 언론 정의를 위해서 함께 싸웠던 동지였지... 나도 은행원 K를 잊지 말아야지... 은행원 K를 용서해줘야지.

내가 방송국 후배들에게 한 짓들은 은행원 K가 나에게 한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으니까.


< 평창동 소설가 K의 두더지 굴에 또다시 무심한 밤이 찾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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