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바닷가에 있는 집 돌담은, 왜 구멍이 나게 쌓여있는 거야?’
‘바람이 심하게 불면, 바람이 그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서, 돌담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그럼 바람이 더 심하게 불면? 그렇게 어떻게 되는데?’
앞 동 꼬마와 엄마가 하는 얘기가 우리 집 다용도실 창문을 통해서 들렸다.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제주 표선면 숙소는 밤이면 너무 조용해져서, 가끔 앞동에 사는 어느 가족이 마루에서 나누는 얘기가, 내가 사는 집 다용실로 나가서 창문을 열면 들려온다.
아이의 목소리는 예닐곱 살 아이들의 귀여운 목소리였다. 짜증을 내거나 다급해하지도 않고, 그저 신기하다고 느낀 것에 대해서, 순진무구한 목소리로 물어보는 소리였다.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목소리가 엇비슷해서,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엄마를 다정하게 부르는 사랑스러운 목소리였다.. 누군지 일면식도 없는 아이 엄마의 목소리는 더 멀리서 들려왔는데, 아이에게 참 자상하게 말하는 착한 엄마의 목소리였다.
내게도 나의 두 아들이, 친근한 목소리로 내게 이런저런 걸 물어보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의 질문은 다양했고 기발하기도 했다. ‘아빠 개미는 비가 오면 어떻게 돼?’ ‘하늘은 파란색인데, 왜 하늘에서 부는 바람은 색이 없어?', ‘핸드폰은 어떻게 소리를 전달해?’, ‘천체 망원경으로 어떻게 별이 보여?’ 뭐 이런 질문부터 세상 온갖 질문을 했던 거 같은데, 내가 아이들 눈높이에서 어떻게 잘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고, 그냥 대충 넘어가서인지 기억에 제대로 남아있는 질문이 별로 없다.
내 두 아들의 목소리도, 오늘 밤에 내가 들었던 어떤 꼬마의 목소리처럼 다정하기 그지없었고, 너무 궁금해서 세상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아빠에게 물어보는 예쁜 소리였지만, 나는 오늘 밤의 그 엄마처럼 자상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지 못했다.
이곳 제주에 혼자 살면서 밤에 별이 보고 싶다거나, 밤공기에 묻어오는 나무들의 싱그러운 향기와 풀벌레들이 숨어있는 풀숲의 기분 좋은 비릿한 냄새가 맡고 싶어 질 때면, 다용도실로 나가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밤하늘의 상쾌한 공기 속에서 북두칠성이 보였고, 남쪽 하늘엔 목성과 토성이 밤을 새워 시계 방향으로 움직였다.
<제주 바다에 비친 불빛들이 그리움처럼 일렁이고 있다>
봄, 여름엔 처녀자리의 스피카가 빛났고 가을에 되자, 머리 위 정중앙에 위치한 카시오페이아와 백조자리의 데네브를 찾아 밤하늘을 응시했다. 그렇게 창문틀에 머리를 기대고 한가로이 있다 보면, 이웃집 가족의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다용도실의 반대쪽 베란다는 숲을 향하고 있어서 라디오 새소리 시보로 쓰이기도 하는 휘파람새 소리, 구구 구구 우는 산비둘기, 낮이면 숲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는 장끼와 까투리 부부의 꿩꿩 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새소리도 멈춰버린 조용한 순간에는, 바람이 나무숲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고, 바람도 잠시 쉬어 갈 때는, 숲을 푸르름으로 채워가는 나무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제주에서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밤이면 부쩍 외로워져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졌고 그럴 때면 단지 안쪽 공터가 보이는 다용도실로 나가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의 가족이 함께 모여 나누는 정겨운 목소리였고, 내가 늘 그리워하던 소리였다.
정신 건강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약의 부작용으로, 낮엔 낮잠을 자는 시간이 많은데, 까무룩 낮잠에서 우연히 깨어났을 땐, 학교에 안 가는 꼬맹이들과, 일찍 하교를 동네 아이들이, 단지 공터에서 자전거를 타며 친구의 이름을 불렀고, 엄마와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가는 아이들에게서도 엄마와 나누는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나누는 일상의 얘기들. 어린 여동생이 앞서가는 언니에게 ‘언니 같이 가’하면서 쫒아가는 소리가, 내 가슴속 깊숙이에서 일렁이는 감정을 흔들었고, 나는 그 목소리들이 그리워서, 듣고 또 듣고 싶어 했다.
아빠니까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고, 우리 아빠니까 밖에 나가서 놀자고 마냥 졸라대던, 내 귀여운 두 아들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아무리 아빠에게 부탁을 해도, 내가 별 반응이 없으면 큰 눈망울에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또르륵 흘리면서 울어버리던, 서럽게 그리운 목소리이기도 했다. 아내와 아이들과 불화를 겪고, 두 아들과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산지, 이제 아홉 달이 넘어 열 달째가 되어간다.
주말이면 항상 나와 함께 목욕탕에 가서,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를 들려주던 둘째 아이의 웃는 얼굴과 귀여운 목소리가 선명히 그려지고 들려오기도 한다.
"아빠, 우리 반에 머리카락 얘기를 하면 화를 내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애가 머리털이 빠지거든. 반 아이들이 그 애를 놀릴 때면, 내가 "애들아~ 애들아~ 우리 다른 얘기하자"라고 말해서, 그 애 하고 친해졌다. 그 후로도 내가 있으면 아이들이 그 애를 놀리지 않아~"
" 착하네, 우리 아들 "
" 우리 반 친군데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거 아냐 "
7살 무렵인가부터 저녁에 잠이 들 때는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던 아이의 첫 기도는 ’ 우리 집에 제발 바퀴벌레 없게 해 주세요 ‘였다. 낮에 봤던 바퀴벌레가 너무 무서웠었나 보다. 그렇게 착하고 여린 마음을 갖고 있던 아이들에게 나는 왜 좋은 아빠가 아니었을까?
오늘 아침에도 제주의 하늘엔, 어딘가로 떠나는 비행기가 희고 긴 꼬리를 남기며,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서울로 날아가는 비행기 일까? 지금 나는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가족이 사는 곳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다.
두 아들에게 가고 싶다.
어린 시절 아이들의 목소리가 다시 듣고 싶어 지는 밤이다.
<제주도 표선항에 밤이 찾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