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안 Oct 07. 2020

제주도의 개들은 왜 나를 그토록
좋아할까?

피터팬 PD가 어렸을 때, 수유리 264번지 우리 집에서도 개를 키웠었다. 분명히 두 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복날이 다가오는 어느 해 여름에 사라졌다. 내가 큰 개는 어디로 갔냐고 물어봤었고, 어머니가 적당한 핑계를 댔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어머니는, 큰 개가 말을 잘 안 들어서 시골 할머니 댁으로 보내버렸다고, 말하셨던 거 같다.      


피터팬 PD가 5살 ~ 8살까지 살았던 수유리 264번지의 우리 집 개와, 나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내가 우리 집 막내라고, 그 녀석들이 나를 깔봤던 건지, 어머니 말씀대로 정말로 말을 잘 안 듣는 개라서 그랬던 건지, 나만 보면 으르렁댔기 때문에, 무서워서 근처에도 잘 가지 않았다.      


가난한 동네였던 수유리의 골목길에서 키우던 개들이 다 그렇듯이, 당시에는 개밥으로, 사람들이 먹다 남은 밥이나 생선 뼈 등에, 대충 물을 말이 줬었다. 그래도 녀석들은 잘 먹는 편이었는데, 가끔 식탐이 지나친 놈들은, 옆집까지 출장을 가서, 그 집에서 키우는 닭을 잡아먹고는 했다. 


나도 한두 번 수유시장 근처에서 키우던 어떤 개가, 옆집 닭을 잡아가는 광경을 목격했는데, 생닭의 맛을 이미 알고 있던 그 개는, 남의 집의 대문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닭의 날개를 잡아 물고 끌고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자 닭은 죽겠다며 소리를 질러댔는데, 그 날 그 골목길을 쩌렁쩌렁 울리던 닭의 외침은 ,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어린 피터팬 PD는 닭이 그렇게까지 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몰랐었는데, 어찌나 소리가 크던지, 그만 그 개가 닭을 잡아가려던 걸 포기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한번 놀란 닭은 개가 돌아간 뒤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여전히 소리를 ‘꽥 꽥’ 지르면서,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그 개가 상습범이라서 그 전에도 남의 집 닭을 물어갔는데, 희한하게도 자기 집 닭은 손대지 않고, 남의 집 닭만 잡아먹는다고 하셨다. 그런데 키우던 개는 집주인을 닮는다고, 그 개의 주인이 이웃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한마디 안 해서, 이웃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다.      


나의 어린 시절, 나만 보면 으르렁대던 남은 개 한 마리도, 그다음 해인가 복날 즈음이 되자, 또 사라져 버렸고, 대신 작고 예쁜 강아지가 우리 집으로 왔다. 군에 다니시던 아버지의 부대에서 키우던 어미개가 새끼를 낳아서, 한 마리 가져오신 거였다. 


<피터팬 PD가 어린 시절 키우던 강아지도 이렇게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어린 개는, 나를 무척 따랐고 나도 그 강아지를 많이 좋아했었다. 함께 놀던 시간도 많았는데, 처음 우리 집으로 오고 첫겨울에, 강아지가 너무 예뻐서 마당에서 키우던 개를, 종종 집 안으로 데리고 와서 끌어안고 놀았는데, 그럼 어머니는 귀신같이 알아채시고 나를 혼내셨다. 털 알레르기가 있으신 어머니는, 절대로 집안으로는 강아지를 데려오지 말라고 하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친형이 사고로 죽고, 우리 가족이 수유리를 떠나, 서울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던 날, 내가 2년여를 예뻐해 주고, 함께 자주 시간을 보내던 그 개도, 수유리 근처에 사시던 이모부님 댁으로 불려 가서, 복날도 아니었었는데, 그 날로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 이후 넓은 마당이 있던 수유리에서 서울 강남의 좁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부모님이 열심히 작은 문방구를 하신 덕에, 아파트 평수를 조금씩 넓혀 갈 수 있었지만, 내 나이 쉰 살이 넘도록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내가 키우던 개에 대한 아픈 기억이 너무도 강렬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유리 골목에서 살던 시절, 이웃의 꼬맹이들을 자주 때리던, 성격이 못된 어떤 형 집에 살던, 성질이 더 나쁜 사나운 개가 있었는데, 그 개에게 내 오른쪽 무릎을 물리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이상하게도, 세상의 모든 개들은 어린 피터팬 PD를 보기만 해도 짖어댔다. 그리고 나 역시, 짖는 개를 보면 오른쪽 무릎이 아파서 도망가기 바빴다. 


제주도 표선면에서 필자 살고 있는 단지에는, 30평형과 20평형 두 가지 타입이 있는데, 30평형대에는 거의 4인 가족이 살고, 20평형대에는 무슨 슬픈 사연이 있는지, 나 같은 홀아비들이 많이 산다. 그런데 혼자 사는 1인 가구든, 아이들을 키우는 4인 가구든, 두서너 집 건너 한집씩은 개를 키운다.    

  

처음에 우리 단지로 이사를 와서는, 개가 너무 많아서 내 시린 무릎이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제주도의 개들은, 나를 보고 짖지 않았다. 피터팬 PD가 서울에서 제주로 오는 사이에, 세상의 모든 개들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로 바뀐 건지, 아니면 피터팬이 제주에 오니, 개에게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개통령 강형욱 타입'의 인간으로 마법처럼 바뀐 건지, 아니면 제주섬의 개들만 나를 받아주는 건지 모를 일이다.   


피터팬 PD가 숙소 근처를 산책할 때 만나는 개들은 다들, 꼬랑지를 흔들거나, 끙끙대며 애교를 부리거나, 심지어 어떤 놈은 아예 내 품에 달려와서 엉덩이를 들이밀면서 등을 긁어 달라, 또는 배를 보이며 땅바닥에 누워 발을 ‘내동 내동’ 거리며, 나에게 추파를 던진다. 심지어 어떤 푸들 한 마리는, 피터팬 PD를 보면 너무 좋아해서, 개 주인이 집으로 가자고 하면 주인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https://youtu.be/vmeRdkpJTY0

<필자가 제주도에 오고 나서, '개 친화형 인간'으로 바뀌었나? 복순이도 피터팬 PD를 너무 사랑한다 ^^>


이 무슨 상전벽해, 환골탈태의 조화란 말인가?     

제주도의 모든 개들이 필자가 홀아비로 외롭고 불쌍하게 사는 걸 다 알고, 나를 동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제주로 내려와서 아내와 아들들이게 잘못한 죄를 반성하면서 착하게 사니까, 하늘이 내게 다시 살 기회를 주시려는 건지, 아무튼 신기할 따름이다.      


표선면 우리 단지 입구에도, 관리사무실에서 키우는 ‘마루’라는 개가 있다. 이 개는 영특해서 단지에 사는 내부인이 근처에서 산책을 하면 짖지 않는데, 외부인이 오면 큰 소리로 짖어댄다. 나도 처음 이사 와서 이 녀석에게 신고식을 하지 않고 밤에 산책을 나갔다가, 이 녀석이 나를 보고 짖은 적이 한번 있었는데, 며칠 뒤 관리사무실 아저씨와 같이 인사를 하고 난 뒤로는, 나를 보면 장난을 친다.     

 

등을 긁어 달라면서 등을 들이밀고, 내가 ‘손!’ 하면 내 오른손바닥 위로 자기의 앞다리를 올려준다. 그런데 내가 다가가서 뭔가 먹을 거를 줄 거 같으면 다가와서 애교를 부리다가도, 내 주머니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삐쳐서 뒤로 물러나 앉아, 딴청만 피우기도 한다. 

     

오늘 오전에도 마루에게 가서 내 마음을 전했는데, 녀석은 내 손에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으니까, 시무룩해져서 돌아가 버렸다. 마루는 요즘 인기를 끄는 댕댕이들처럼 그렇게까지 예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씩씩하고 말 잘 듣는, 우리 숙소 주민들의 반려견이다.      


마루의 영상을 첨부한다. 관리사무소 아저씨는 주민들에게 먹을 거를 주지 말라고 하던데, 내가 맛있는 걸 주지 않고도, 마루와 더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https://youtu.be/yQJLvuIxl-g

<피터팬 PD가 사는 숙소 지킴이 영특한 '마루' >

작가의 이전글 표선면에서 제일 예쁜 길냥이 코코와 친해지기(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