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허 속 실존의 재구성
신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누구인가? 더 이상 외부의 권위가 삶을 지시해주지 않을 때, 인간은 스스로를 정의해야 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실존의 깊은 진공 속에서 절망을 말했고, 니체는 그 자리를 넘어선 인간을 예고했다. 그러나 그 둘 모두, 신 없는 세계에서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로 남을 수 있을지를 가장 급진적으로 물은 사상가였다.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이 아니다. 지금 여기의 우리,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는 개인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부름이다.
19세기 후반 유럽, 과학과 역사, 정치와 윤리가 종교를 밀어내며 스스로를 새로운 '진리'로 선포했다. 신은 더 이상 필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공백은 곧 무의미의 심연으로 이어졌다.
키에르케고르는 그 어떤 철학자보다 먼저, 이 공백의 깊이를 목격했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말한다. "절망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상태다." 신 없이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윤리를 잃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축이 사라지는 사건이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말한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 이는 선언이 아니라 진실을 직시하는 자의 고백이었다. 인간은 이제 자신에게서 신을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했다.
키에르케고르의 절망 개념은 단순한 우울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속이거나, 혹은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는 상태이다. 그는 절망을 세 단계로 나눈다:
1)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절망 (무지의 절망)
2) 자기가 되려 하지 않는 절망 (부정의 절망)
3) 자기가 되려는 자의 절망 (자각의 절망)
그중에서도 가장 심오한 것은 세 번째다. 그것은 인간이 신 없는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자기 자신이 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을 때 찾아온다. 즉, 인간은 신의 빈자리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실존적 결단 앞에 선 것이다.
소크라테스: "그대는 말하지. 신 없는 세계에서 인간은 절망한다고. 그런데 나는 신의 뜻보다도 자기 영혼을 묻는 데 집중했네. 그대의 절망은 내 물음과 어떻게 다른가?"
키에르케고르: "당신은 신을 대체할 수 없는 진리로 간주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나는, 인간이 신을 상실한 자리에서 자기 자신조차 잃어버릴 수 있다고 봅니다."
소크라테스: "그럼 인간이 자기가 되려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키에르케고르: "그것은 단지 자기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근거를 세우는 일입니다. 신이 침묵한 세계에서조차 스스로를 책임지는 존재가 되는 것."
소크라테스: "허면 그대는 진정한 철학자가 되려면, 신의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인가?"
키에르케고르: "그렇습니다. 철학은 진공을 견디는 영혼의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 고독 속에서 비로소 실존은 시작됩니다."
오늘의 우리는 종교적 신념 없이도 도덕을 말하고, 의미를 찾으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러나 그 모든 기반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여전히 나를 지킬 수 있는가? 키에르케고르는 신 없는 인간이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신을 대신할 수 있는 깊이를 지녀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단지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인의 내면 구조와 연결된다. 정체성의 위기, 자기 효능감 상실, 삶의 공허함—all of these are symptoms of a world where the center no longer holds.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다. “나 자신이 되려는” 고독한 결단. 이 결단은 더 이상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 길의 출발점에서, 실존은 태어난다.
1) '신 없는 세계'란 단순히 종교의 부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거가 흔들리는 상태입니다.
예: 사회의 모든 가치가 상대화된 지금,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도 자신을 절대화할 무언가를 찾습니다—성공, 명예, 사랑, 혹은 소비. 이때 절망은 자기를 그 대상과 동일시하려는 순간에 발생합니다.
2) 키에르케고르의 절망 개념은 실존적 용기의 부재를 드러냅니다.
예: 번아웃과 무기력은 종종 외적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에서 자기 삶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상태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2단계의 절망—"자기를 되려 하지 않는 절망"과 일치합니다.
3) 실존의 결단은 신의 유무와 무관하게 요청됩니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키에르케고르가 강조한 "단독자"란 바로 이 결단의 주체입니다. 그 결단을 피하면 우리는 늘 타인의 기준에 기대며 살게 되고, 실존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윤리는 나를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따라, 키에르케고르가 윤리적 인간과 종교적 인간을 어떻게 구분했는지를 탐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