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리적 인간과 종교적 인간 사이
우리는 누구나 옳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법을 지키고, 도덕을 따르며, 타인을 해치지 않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어떤 이는 묻는다. “나는 착하게 살았는데, 왜 이렇게 외로운가?”
키에르케고르는 '윤리적 인간'과 '종교적 인간'을 구별하며 말한다. 윤리적 삶은 분명 고귀하지만, 인간 실존의 가장 깊은 구원에는 닿지 못한다고. 그것은 규범이 아니라, 단독자로서 신 앞에 선 자만이 건널 수 있는 내면의 심연이다.
당시 유럽 지성계는 헤겔 철학의 절정기였다. 윤리와 국가, 이성과 합리성의 총체로서 '세계정신'이 역사를 이끈다고 여겼다. 개인은 그 거대한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갖는 존재였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거기서 이탈한다.
그는 『공포와 전율』에서 말한다. 종교적 인간은 윤리적 질서를 초월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자다. 그는 말한다. “윤리는 인간 사이의 일반적 질서다. 그러나 신 앞에 선 인간은 그것을 넘어서야 할 때가 있다.” 이 말은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넘어, 실존적 결단의 본질을 말해준다.
“윤리는 인간 사이의 일반적 질서다.
그러나 신 앞에 선 인간은 그것을 넘어서야 할 때가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 존재의 삶을 세 단계로 나눈다:
1) 미적 단계 — 쾌락, 회피, 자기기만의 삶
2) 윤리적 단계 — 책임, 성실, 사회적 인간의 삶
3) 종교적 단계 — 신 앞에 선 단독자의 삶
윤리적 인간은 성숙한 존재다. 그는 책임을 알고, 법을 존중하며, 타인의 고통을 함께 짊어질 줄 안다. 그러나 종교적 인간은 그 위에 선다. 그는 신 앞에서 법의 근거 자체를 묻는 자다.
윤리적 인간은 옳고 그름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종교적 인간은 옳음 너머의 명령, 즉 부조리한 믿음 앞에 선다. 그가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결단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신과 일대일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키에르케고르: "그것은 법을 부정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윤리가 인간의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말이지요."
소크라테스: "허면 그대는 옳게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가?"
키에르케고르: "그렇소. 윤리는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삶이고, 종교는 자기 내면의 부름에 응답하는 삶입니다. 외부의 기준을 넘어서는 침묵의 명령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나는 이성을 따라 살았고, 그로 인해 죽음을 택했네. 그대는 무엇을 따르고자 하나?"
키에르케고르: "나는 신을 따릅니다. 이해가 아닌 인내, 설명이 아닌 결단으로. 실존은 그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니까요."
오늘날 우리는 윤리의 피로를 겪고 있다.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을 하고 있음에도 외롭고 허무한 이유는, 윤리가 인간 존재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르는 말한다. “윤리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이 아니다.”
현대인은 법과 도덕을 따르며 산다. 하지만 삶의 결정적 순간, 예컨대 가족의 생명을 포기하거나, 모두가 반대하는 길을 가야 할 때, 윤리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질문한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은 오직 종교적 인간, 즉 단독자에게만 도달한다. 그 고독의 중심에서, 실존은 새로운 빛을 받는다.
1) 윤리적 삶은 규범적 안전을 보장하지만, 존재의 구속을 풀어주지는 못합니다. 예: 타인의 기대에 맞춰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이게 진정한 나인가?”라고 묻는 순간, 윤리는 답하지 않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종교적 결단’입니다. 즉, 타인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는 용기입니다.
2) 종교적 인간은 법을 초월하는 믿음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 진정한 신념으로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하거나, 사랑 때문에 관습을 거스를 때 우리는 종종 윤리적 판단을 넘는 결단을 합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도약’은 바로 그런 행위입니다—설명은 되지 않지만, 실존은 거기서 진실해집니다.
3) 실존은 타인의 공감 속이 아니라, 신 앞에 선 고독 속에서 완성됩니다. 현대의 외로움은 단순한 소외가 아니라, 존재의 근거를 놓쳐버린 결과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단독자가 되는 것, 즉 신 앞에 선 존재가 되는 것을 실존의 완성으로 제시합니다.
※ 현대 실존주의 철학자들—특히 하이데거나 사르트르—는 이러한 신 중심적 실존을 탈신론적으로 해석하며, 인간이 신 없이도 스스로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의 핵심은 여전히 신과의 관계에 있으며, 그 고독은 신과의 단독적 관계 안에서만 실존을 밝히는 통로가 된다는 데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철학은 삶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따라,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여정을 성찰하고, 사상가를 넘어선 실존의 증인으로서 그를 조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