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문학×철학자×작가]15. 눈먼 올빼미

× 자크 데리다 × 사데크 헤다야트

by 이안
언어가 무너진 자리에서, 자아는 어떤 그림자를 남기는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프랑스 철학자이자 해체주의(deconstruction)의 창시자. 언어와 의미, 중심과 주변, 원본과 복제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선언으로 20세기 사유의 틀을 뒤흔들었다. 그의 철학은 고정된 진리나 중심을 해체하고, 그 틈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의미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사데크 헤다야트(Sadegh Hedayat)

이란 현대문학의 선구자이자, 페르시아어 산문의 혁신가. 1903년 테헤란에서 태어나 유럽 유학을 거쳤고, 삶과 죽음, 고독과 소외를 탐구한 『눈먼 올빼미』로, 전 세계 문학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의 문장은 신화적 이미지와 몽환적 서사를 엮어 인간 존재의 절망과 언어의 불완전성을 드러낸다.


1. 인트로 — 벽과 그림자 사이


방 안에는 창이 없다. 흙빛 벽에 그림자가 매달려 있고, 그 그림자는 주인의 움직임과 무관하게 흔들린다. 바깥은 사막처럼 고요하고, 안은 부서진 생각들이 날아다닌다. 주인공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아니면 오래전에 죽은 자들의 대열에 섞였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죽은 자들에게만 말할 수 있다.” 이 첫 문장은 독자를 세계의 중심에서 밀어내며, 작품 전체를 폐쇄된 공간 안으로 가둔다. 바람이 닫힌 방을 스치면, 그 속에선 오래된 향 냄새와 피비린내가 엷게 뒤섞인다. 그 냄새 속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2. 문학의 장면 — 부서지는 기억의 모래


『눈먼 올빼미』의 서사는 직선이 아니다. 기억은 흐르다 끊기고, 꿈과 현실은 맞닿다 금세 어긋난다. 주인공은 사랑했던 여인의 검은 눈동자를 떠올린다. 그 안에는 자신이 비친다.


그러나 그 얼굴은 한 번도 온전히 잡히지 않는다. 표정이 바뀌고, 눈빛이 달라지고, 심지어 그 여인의 목소리조차 낯선 울림을 띤다. 그는 언어로 붙잡으려 하지만, 말은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흘러나간다. 방 안의 공기는 무겁고, 문장은 자꾸만 방향을 잃는다. 독자는 어느 순간 ‘실제’라는 말이 무의미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소설에서 실제란, 오히려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것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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