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캠프 × 마르틴 하이데거 × 어니스트 헤밍웨이
탄생과 죽음이 맞붙는 방에서, 한 소년이 자기 시간을 배운다
새벽 강은 말수가 적었다. 물결이 부드럽게 뱃전 밑을 핥을 때마다, 젖은 나무 냄새가 천천히 올라왔다. 닉은 아버지의 손놀림을 따라 카누의 균형을 배웠다. 노가 물을 가르는 소리, 삭은 갈대의 마찰, 멀리서 한 번 울고 사라지는 새의 울음. 아직 세상은 잠들어 있었지만, 물속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기척이 들렸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닉도 묻지 않았다. 오로지 강이 앞을 열었다. 그 강 너머, 닉의 시간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탄생과 죽음, 피와 숨, 냉기와 열. 소년은 그날, 자신이 몰랐던 세계의 무게를 들어 올리게 될 것이다.
인디언 마을의 집은 낮고 어두웠다. 방 하나는 산모의 비명으로 가득했고, 다른 방은 고요했다. 의사인 아버지는 칼과 바늘, 술과 솜을 꺼내어 즉석에서 수술대를 만들었다. 전기 불도, 마취도 없이 시작되는 출산. 거친 숨과 절규가 방의 천장에 부딪혀 되돌아올 때, 닉은 문턱에 선 사람처럼 방과 방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곧 알게 된다. 바로 옆방에서 남편이 자기 목을 그어 이미 죽어 있었다는 사실을. 한 집 안에 두 개의 문, 한쪽은 새 생명이 열리고, 다른 한쪽은 삶이 닫힌다. 헤밍웨이는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문, 탁자, 칼, 피, 끈과 같은 사물들을 정확한 거리로 배치한다. 그 거리만큼 닉의 시야가 넓어지고, 동시에 세계가 멀어진다. 독자는 그 거리에서 소년의 심장이 갑자기 성숙의 박동을 시작하는 것을 듣게 된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있다.
죽음은 마지막 사건이 아니라, 삶 전체를 비추는 방식이다.
인디언 캠프에서 닉이 본 것은 사건의 병치가 아니다. 존재의 구조다.
탄생은 가능성의 과잉으로, 죽음은 가능성의 종결로 닉 앞에 놓인다. 두 방 사이를 잇는 문턱은 현존재가 서야 하는 자리, 아직-아님과 더-이상-아님이 맞붙는 경계다. 소년은 처음으로 자신의 유한성을 경험한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침묵 때문이었다.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닉은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기 죽음의 방식으로 불려 나온다.
그 부름은 소리보다 조용하고, 지시보다 더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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