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역사적 뿌리 — 반공주의와 교회-국가의 공생〉
(*이 글에서 ‘극우 교회’는 반공·친미 민족주의를 신학과 혼합하고, 선거·집회 등 직접 정치동원을 핵심 활동으로 삼으며, 혐오·음모 담론을 반복 생산하는 일부 보수 개신교 네트워크를 가리킵니다. 전체 개신교를 일반화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극우 교회라 불리는 집단이 단순한 종교 공동체의
범위를 넘어 정치적 행위자로 나서는 현상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그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해방 이후, 특히 냉전기 한국 개신교와 국가 권력이 맺었던 긴밀한 관계를 살펴야 한다. 이 관계는 단순한 협력 수준을 넘어, 교회가 반공 이데올로기의 생산자이자 배급자로 자리 잡는 과정이었다.
1945년 해방 직후, 한반도의 분단이 가시화되면서 남한 교회는 자신을 ‘공산주의에 맞선 신앙의 보루’로 규정했다. 미군정과 초기 이승만 정부는 교회의 이 역할을 적극 활용했다. 목회자들은 반공 궐기대회와 기도회를 주도했고, 교회 강단은 ‘하나님의 나라’와 ‘반공 국가’가 겹쳐지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 시기 교회의 성장은 곧 반공 이데올로기와의 결합을 통해 촉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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