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안네의 일기] 3편. 다락방의 빛과 그림자

-한영(Korean & English) 버전-

by 이안

1. 인트로 — 숨은 시간의 무게


다락방 창문 너머로 들어온 빛은 낡은 커튼 사이에서 얇게 갈라져 방 안을 가로질렀다. 햇살은 책상 위의 작은 잉크병과 깃펜에 부딪혀 반짝였고, 먼지 입자들은 그 빛 속에서 천천히 춤을 추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춤을 바라보았다. 밖에서는 군홧발 소리가 거리의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지만, 이 작은 방 안에서는 잠시나마 다른 시간의 호흡이 살아 있었다.


안네는 창문을 향해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어깨는 여전히 여리고 가늘었지만, 그 등은 신기하게 단단해 보였다. 마치 자기 몸보다 더 큰 시대의 무게를 붙들고 있는 것처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이의 몸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짐이 얹힐 수 있을까.”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 방은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라,
시대의 증언이 태어나는 자궁이라는 것을.


2. 다락방의 하루 — 감각의 좁은 세계


안네가 일기를 쓰던 작은 책상 위에는 늘 빵 조각 몇 개와 오래된 사과 한 알이 놓여 있었다. 빵은 딱딱했고, 사과는 절반쯤 말라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천천히 잘라먹으며 생각을 이어갔다. 나무 바닥은 삐걱거렸고, 방 안에는 오래된 나무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냄새조차도 이제는 그녀의 삶의 일부였다.


제제: “안네, 이 방은 답답하지 않아요?”
안네: “답답하지. 하지만 창문을 열면 더 무서운 게 들어와. 나는 그 대신 글자를 열어 두는 거야.”


그 말은 내 가슴에 깊이 박혔다. 나는 마치 숨을 참는 법을 배운 것 같았다. 바깥세상에서 아이들은 들판에서 뛰어놀고 있었겠지만,


안네는 다락방 안에서 글자를 뛰게 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글자들이 다락방 천장을 뚫고 나가
언젠가 세상의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3. 대화 — 전쟁과 두려움의 그림자


밤이 되면 어둠은 더 무겁게 방 안을 눌렀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바퀴 소리, 갑작스레 멎는 발소리, 혹은 군인들의 고함소리가 들릴 때마다 모두 숨을 죽였다. 나는 떨리는 숨을 억누르며 안네를 바라봤다. 그녀는 손을 모으고 작게 속삭였다.


안네: “제제, 가끔은 내가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두려워.”
제제: “나도 두려울 때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두려움을 말로 꺼내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안네: “맞아. 그래서 나는 일기를 쓰는 거야. 종이 위에 올려놓으면, 두려움이 나를 덜 붙잡거든.”
제제: “그럼 글쓰기는 숨 같은 거네요. 내 안에서 막혀 있던 걸 밖으로 내보내는 숨.”


안네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다락방 불빛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두 번째 호흡이라는 것을.


4. 독백 — 절망 속의 희망


나는 그녀가 쓴 일기의 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읽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이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전) 서울 MBC 라디오 PD.

64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33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6화[제제×안네의 일기] 2편. 다락방의 햇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