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도시와 새로운 질서
사신단이 북경에 입성하던 순간, 연암 박지원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이전의 모든 경험을 무너뜨리는 광경이었다. 조선의 수도 한양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규모의 도시였다. 성벽은 하늘에 닿을 듯 높았고, 거리마다 수레가 분주히 오갔으며, 상인들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연암은 그 순간, 자신이 속한 조선의 세계가 얼마나 좁고 갇혀 있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한양에서는 성문을 나서면 곧 들판이지만, 북경에서는 도시의 성문을 지나도 또 다른 시장과 골목이 이어졌다. 그것은 새로운 질서, 다른 문명이었다.
城郭嚴整 市井繁華 (성곽엄정 시정번화)
"성곽은 정연하고, 시장은 번화하였다"
— 《성경잡지(盛京雜識)》
연암은 북경을 묘사하며 성곽의 정연함과 시장의 번화함을 짧게 적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았다. 조선의 도시가 왕성과 몇몇 관청, 그리고 장터로 이루어진 소박한 규모였다면, 북경은 제국의 심장에 걸맞은 거대한 질서를 품고 있었다.
넓게 뻗은 대로에는 수레와 말이 끊이지 않았고, 병사들은 질서 정연하게 교대하며 거리를 지켰다. 이 장면에서 연암이 본 것은 ‘도시의 물리적 크기’가 아니라, 국가 운영 체계와 사회 조직의 힘이었다.
도시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권력과 문명이 응축된 구조물이었다.
北市繁盛 商賈雲集 (북시번성 상고운집)
"북쪽 시장은 번성하여, 상인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 《성경잡지(盛京雜識)》
연암은 북경의 장터에서 이루어지는 교역에 놀랐다. 시장에는 비단, 도자기, 차, 약재가 쌓여 있었고, 먼 서역에서 온 낯선 물품들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언어는 다양했고, 화폐는 빠르게 오갔다. 조선의 장터가 여전히 물물교환에 기대고 있었다면, 북경은 이미 거대한 유통망의 중심지였다. 연암은 이를 ‘세계가 모이는 자리’로 보았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청을 오랑캐라 부르던 그 시절,
그는 북경의 시장에서 세계사를 목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암은 수레와 도로, 수송 체계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조선에서는 짐을 소 한 마리에 의존해 나르던 것을, 북경에서는 수레 수십 대가 동시에 오가며 물자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거리는 넓게 뻗어 마차가 서로 부딪히지 않았고, 교통의 흐름이 도시를 살아 있게 했다. 그는 이를 두고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소 한 마리로 무거운 짐을 끌지만,
이곳에서는 수레와 말이 함께 달리니 열이 백을 당한다.”
— 《성경잡지(盛京雜識)》
이 말은 단순한 감탄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기술과 제도의 차이가 국가의 부강을 만든다’는 통찰이었다. 조선이 교조적 성리학에 갇혀 현실의 생산과 유통을 등한시할 때, 청은 실질적인 물적 기반을 강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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