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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역사] 11편. 가우스, 수학의 왕

보편 질서를 세우다

by 이안

1. 서두 — 질문과 장면 제시


한 시대의 천재는 어떻게 ‘왕’이라 불릴 수 있는가.

수학은 귀족의 작위와 무관한 영역이다. 그럼에도 요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1777–1855)는 “수학의 왕(Princeps Mathematicorum)”이라 불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방대한 분야를 다루었고, 그 어떤 분야에서도 정점에 올랐다.


어린 시절, 교사가 학생들에게 수를 더하게 했을 때 가우스는 즉시 1에서 100까지의 합을 구했다. 그는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구조를 본 것이었다. (1+100), (2+99)…을 짝지으면 101이 50번 반복된다는 직관. 이 일화는 그의 평생을 상징한다.


수학을 단순한 문제 풀이가 아니라,
보편 질서를 읽어내는 눈으로 삼았던 것이다.


2. 본론 1 — 역사적 사건과 인물


가우스는 18세기 말 브라운슈바이크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후원자의 눈에 띄어 괴팅겐 대학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현대 수학의 기초를 놓았다. 1799년, 그는 대수학의 기본정리를 증명했다. “모든 복소수 계수 다항식은 복소수 해를 갖는다.”


이 정리는 수학적 존재론의 선언이었다.
복소수라는 ‘허구적’ 개념이 실제로는
수학적 세계의 필수 요소임을 입증한 것이다.


1801년, 그는 정수론의 기초를 세운 『산술연구(Disquisitiones Arithmeticae)』를 출간했다. 소수, 합동식, 이차형식 같은 개념은 이후 수학 전체의 언어가 되었다. 오늘날 암호학까지 이어지는 정수론의 기틀은 이 책에서 출발했다.


같은 해, 그는 천문학에도 발을 내디뎠다. 소행성 세레스가 발견되었으나 금세 하늘에서 사라지자, 가우스는 자신이 고안한 최소제곱법을 사용해 궤도를 계산했다. 결과는 적중했다.


가우스의 계산 덕분에 세레스는 다시 발견되었고,
수학이 천체의 행방을 예측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3. 본론 2 — 철학적 전환과 긴장


가우스의 업적은 단순히 새로운 정리를 쌓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수학을 보편 질서의 언어로 정초했다. 정수론에서 그는 소수들의 배치를 연구하며, 무작위 속에 숨은 패턴을 추적했다. 그 결과 소수 정리에 대한 직관을 남겼고, 이는 후대 리만 가설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철저히 이중적이었다. 한편으로 그는 수학을 엄밀성과 확실성의 체계로 세우려 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다. 예를 들어, 그는 평행선 공리에 의문을 품고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연구했지만, 시대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알고 발표를 주저했다. 진리와 사회적 수용 사이에서 그는 긴장을 안고 살았다.


또한 그는 과학자로서 물리학에도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최소제곱법은 관측값의 불확실성을 수학적으로 정리하는 기법이었고, 전자기학에서 가우스 법칙은 자연의 대칭성을 드러냈다.


수학은 단순한 계산 도구가 아니라,
세계의 숨은 질서를 드러내는 창이라는 그의 신념이 일관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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