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속에 새긴 불교의 빛
데칸 고원의 깊은 협곡을 따라가다 보면, 절벽을 따라 반원형으로 늘어선 30여 개의 동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밖에서는 그저 어두운 바위틈 같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찬란한 색채의 세계다. 수천 년 전 그려진 불교 벽화는 여전히 살아 있는 듯 선명하다.
부처의 탄생, 설법, 보살의 자비, 그리고 인간의 삶과 고뇌가 동굴 벽 가득히
새겨져 있다. 어둠 속에 빛을 새긴 듯한 이 예술 앞에서 여행자는 묻는다.
“왜 불교도들은 돌 속 깊은 어둠 속에 그림과 조각을 남겼을까?”
아잔타 석굴은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6세기에 걸쳐 조성되었다. 초기에는 상좌부 불교 승려들이 명상과 집회를 위해 단순한 석굴을 팠고, 이후 대승 불교의 확산과 함께 화려한 벽화와 불상이 등장했다. 굽타 왕조 시기(4~6세기)는 불교 예술의 황금기로, 왕과 귀족들이 석굴 조성을 적극 후원했다. 이는 단순한 종교 공간이 아니라 제국의 권위와 신앙적 헌신을 동시에 드러내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굽타 왕조가 몰락하고 힌두교가 다시 중심을 차지하면서, 아잔타는 서서히 잊히고 숲에 묻혔다. 19세기 영국 장교가 사냥 중 우연히 발견하기 전까지, 이곳은 수백 년 동안 침묵 속에 잠들어 있었다.
아잔타 석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승려들이 거주하며 수행하던 비하라(僧院)와, 불상을 모시고 의식을 치르던 차이티야(禮堂)다. 차이티야 동굴은 말발굽 모양의 천장을 높이 올리고, 끝에는 스투파를 모셔 법당의 중심으로 삼았다. 비하라는 작은 방들이 복도를 따라 배치되어 집단 수행과 생활이 가능했다. 돌을 파내 만든 이 공간은 단단하면서도 고요했고, 수행자의 숨결과 염송이 벽을 울렸다. 건축은 단순히 거주의 틀을 넘어서, 수행과 법회의 리듬을 공간 자체에 새겨 넣은 장치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