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들의 시간을 새긴 제국의 기억
정글의 수평선 위로 다섯 개의 봉우리가 떠오른다. 새벽 안개 속에서 그것은 산처럼 보이다가, 해가 떠오르면 서서히 사원임이 드러난다. 긴 참배로를 건너며 다가가면, 회랑의 부조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돌 위의 신들은 돌이 아닌 것처럼 살아 움직인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던 서구의 탐험가 앙리 무오(Henri Mouhot)는 이렇게 적었다.
“이것은 인간 정신이 낳은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다.”
그는 로마의 콜로세움과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떠올리며,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라고 경탄했다. 오늘날 우리도 그와 똑같이 숨을 멈추며 묻는다.
“어떻게 이토록 위대한 건축이,
오늘날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이곳에 세워졌을까?”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초, 크메르 제국의 황제 수리아바르만 2세가 건설을 명했다. 당시는 동남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던 대제국의 절정기였다. 제국은 정교한 수로망으로 논을 적셨고, 대륙과 해양의 무역을 장악했으며, 인도와 중국의 문명을 흡수하고 융합했다.
수리아바르만 2세는 자신을 비슈누 신의 현신으로 선포하며, 신의 거처인 메루산(須彌山)을 지상에 재현하려 했다. 이 신전을 짓기 위해 수십만 명의 노동자와 장인, 승려가 수십 년간 동원되었다. 수로를 따라 50킬로미터 떨어진 쿨렌산에서 수백만 개의 사암을 채굴해 뗏목으로 운반하고, 거대한 램프를 세워 돌을 쌓아 올렸다.
그들은 신의 집을 짓고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한 세대의 생애를 바쳐 돌 위에 새겨졌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기후 변화와 전쟁, 교역로의 이동으로 제국은 몰락했고,
사원은 숲에 삼켜졌다. 앙코르와트는 그렇게 수백 년간 세상에서 잊혔다.
1860년대, 앙리 무오가 정글 속에서 이 유적을 발견했을 때,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이것은 유럽의 어떤 문명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라 적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캄보디아를 변두리의 오지로만 여겼기에, 이곳의 문명적 깊이는 더욱 충격이었다. 프랑스의 시인 폴 클로델은 앙코르와트를 보고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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