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의 무기, 언어의 무게
《왕좌의 게임》속 티리온 라니스터는
처음부터 ‘작고 기형적인 남자’로 비웃음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가문의 수치로 여겨졌고, 권력의 중심에서 언제나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티리온은 냉소와 기지를 방패 삼아 살아남았다. 그는 무력으로 싸울 수 없었기에 언어를 무기로 삼았고, 조롱을 받아도 맞받아쳤으며, 적의 공격을 논리로 무력화시켰다. 전장에서 적을 무찌르는 대신 회의장에서 적의 논리를 무너뜨렸다.
그에게 말은 방패이자 칼날이었다.
반면, 셰익스피어의『햄릿』은 무력한 지성의 초상을 그린다. 햄릿은 검을 휘두를 힘이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 사유의 무게에 짓눌려 행동을 멈춘다. 그는 덴마크 왕자이지만, 부친 살해의 진실을 알면서도 의심과 윤리 사이에서 주저한다. 칼을 쥔 손보다 머릿속의 질문이 무거웠다.
티리온과 햄릿, 둘 다 세상을 칼이 아니라 말로 겨루려 했다.
그러나 한쪽은 말과 회의 속에서 멸망의 길로,
다른 한쪽은 그와 반대되는 길로 나아갔다.
햄릿의 독백은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가장 정교한 내면의 미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존재할 것인가,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이 대사는 단순한 자살의 고민을 넘어서,
행동 자체에 대한 근원적 회의다.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싸워야 하는지, 싸운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지. 그는 확신 없이 행동할 수 없었고, 확신은 끝내 오지 않았다. 햄릿은 결단하지 못한 채 말로써만 행동을 대체했다. 그러나 그 언어는 동시에 그를 고립시켰다. 말이 깊어질수록, 그는 현실에서 더 멀어졌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 지성의 역설을 드러낸다. 생각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무력하게도 만든다.
햄릿은 진실을 꿰뚫는 눈을 가졌지만,
그 진실을 움직이는 힘은 갖지 못했다.
그의 언어는 날카로웠지만, 살을 베지 못하는 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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