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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팡 Jul 11. 2021

자각몽 꾸기 좋은 잠, 긴 낮잠

꿈속에서 나는 소설을 쓰고 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꿈속의 나다.

소나기가 요란스럽게 내리던 일요일 오후, 영단어 서너 개를 외우다가 잠이 쏟아진다. 잠을 이겨내려 하지만 노트에 침이 떨어진다. 서재에 두었던 요가 매트에 등을 붙이고 양손을 가슴 위로 포갠다.


30분만 자자.


눈을 뜨니 방 안이 어둡다. 도로가 가로등 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든다. 얼마나 잔 거야, 눈이 부실 각오를 하고 휴대폰에게 물어본다. 지금 몇 시니, 저녁 8시다.




낮잠을 자며 꿈을 꿨다. 꿈속의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각몽이다. 꿈속의 나는 책을 읽는 중이다. 유럽 중세 배경의 소설이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보고 있는 '라스트 킹덤'이 꿈의 재료로 쓰였을 것이다. 그 소설 속에서 나는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린 왕의 '핸즈' 역할이다. 핸즈는 '왕좌의 게임'에서 가져온 개념인데 굳이 우리식대로 풀어내자면 '2인자, 책사, 비서실장, 영의정, 제갈공명' 등이 적절하겠다. 한마디로 최고 존엄의 신임을 얻어 때로는 검으로 때로는 붓으로 사용되는 핵심 직책이다.



꿈이라는 틀을 활용해 나의 내면을 알아간다



다시 나의 꿈속을 들여다 보자. 꿈속의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전쟁의 한가운데 서 있다. 지금 막 치열한 전투를 끝내고 어린 왕과 함께 막사로 돌아온다. 왕은 지친 듯 검을 내려 놓으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나에게 물어 온다. 어떤 대답을 할까 고민하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 소설 속 전쟁의 배경을 꿈속의 나는 모른다. 왕좌를 노리는 가문이 반란을 일으킨 것인지, 아니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른 국가와의 전쟁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꿈속에서 소설을 읽고 있는 나는 스스로 소설을 써내려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야 나의 꿈이 계속 이어지니까. 자각몽은 이렇게 꿈을 조작한다.


전쟁은 현 왕가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모두 뛰어넘는 가문의 반란으로 시작된다. 그 가문의 수장 역시 어린 나이의 여성이다. 반란의 이유는 왕의 자리를 노렸던 아버지가 반역죄로 잡혀 처형된 것이다. 그녀는 어릴적부터 왕의 자리가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믿음 속에 자랐고 아버지가 죽은 지금은 당연히 자신이 여왕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왕이 되지 못하면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남동생의 목숨이 위태롭다. 평민 출신의 유약한 어머니는 몸저 누웠다. 자신의 가문이 풍전등화이다.


반란을 일으킨 그녀를 바라보는 어린 왕은 괴롭다. 그녀의 아버지는 선왕의 절친한 친구이자 자신의 멘토였다. 당연히 어렸을 때부터 왕궁을 함께 뛰어놀던 그녀와는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왕좌에 대한 야망을 조금만 내려놓았다면 아마도 그녀는 어린 왕의 베필이 되어 왕가의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전쟁의 배경과 어린 왕의 처지에 대해 얼추 정리가 되었다. 그럼 이렇게 말해볼까, 그녀의 핸즈가 나와 막역한 사이인데 일단 그 양반에게 서신을 보내 비밀리에 만나보겠다. 전쟁으로 양측 모두는 막대한 손해를 입을 것이고 승자 역시 온전하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하루 빨리 만나서 전쟁을 끝낼 방법을 고민해 보자. 야심한 시간을 틈타 그대의 진영으로 내가 가겠다.


나의 계획을 듣자 왕은 기뻐한다. 자신이 나서면 그녀의 적대감에 오히려 불을 지피는 격이다 말하며 당장 실행하라 한다. 소설 속의 나는 왕의 반응에 성취감이 들고 나의 인맥에 어깨가 으쓱하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또 문제가 생긴다. 말은 내뱉었지만 그 친구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그 인물의 배경과 성격을 모르면서 무턱대고 절친이라고 했다. 아직까지는 나혼자만 친하다고 말하고 다니는 그런 상황인 셈이다. 과연 그 친구도 나를 막역한 친구로 생각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꿈속에서 읽은 소설의 속도를 조금 올려보자.

반란군의 핸즈, 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나를 굉장히 적대시 했다. 자신과 내가 그렇게 막역한 사이였는지 몰랐다며 비아냥거린다. 내가 설정한 우리의 관계를 매우 불쾌해 한다.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자 사사건건 금방이라도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 기세다. 이쯤되니 이 친구가 일으킨 전쟁인가 싶을 정도다 . 결국 협상은 서로의 이빨만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다가 건진 것 없이 끝이 난다. 나는 어린 왕에 돌아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한다. 왕의 실망한 얼굴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나혼자 착각한 인연을 가지고 허세 부린 걸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고민이 깊어지니 꿈속에서도 머리가 아프다. 꿈을 꾸고 있는 현실의 나는 여기까지 하기로 한다. 꿈속의 나는 소설책을 덮는다. 현실의 나는 꿈에서 깬다. 잠깐 멍 때리며 어두운 벽을 응시한다. 꿈의 내용을 떠올리며 그 안에 어떤 메시지가 있는지 곱씹어 본다.

프로이트는 꿈을 욕구 해석의 드라마, 나약한 자아의식이 수면에 상태에서 겪는 일이 꿈이라고 했다. 나는 늘 성격 진단 테스트를 받을 때 비슷한 단어들이 반복 열거된다. 꿈속에서 만난 나는 꿈속에서도 변함없이 나다.


평화주의. 중립. 균형. 조언자. 현실주의. 2인자. 돕는 자. 예술적. 희생하는 자. 흉내 내는 자. 인정 욕구.


오늘 꾼 꿈은 나의 어떤 욕구가, 어떤 나약함이 반영된 꿈이었을까. 비슷한 일이 시일에 당도할까 조심해야 겠다. 나에게는 분명 '아는 사람이, 지인이, 선배가, 후배가' 하며 말을 꺼내는 '아는사람 병'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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