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투어
고창 황윤석 도서관을 책이음 스탬프 투어 첫 목적지로 정했다. 책이음 서비스는 내가 가입한 도서관 회원증 하나로 전국 가입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2014년에 시작했고, 나는 2018년부터 회원이지만 잘 쓰지 못했다. 타 지역에서 책을 빌리는 게 번거롭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을 바꿨다. 1박 2일 여행 첫날 빌리고 다음날 반납하면 된다. 번거로움보다 낯선 공간에서 책을 읽는 기쁨이 크다. 2026년부터 한 달에 한 번, 타 지역 도서관을 하나씩 찍어가기로 했다. 보존서고에 잠들지 않고 지금도 서비스되는 책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국립중앙도서관 책이음 서비스에 로그인하면 자신의 독서량도 확인할 수 있다. 생각보다 쓸 만한 서비스다.
〈이재난고〉를 쓴 황윤석이 태어난 곳이 고창이다. 고창군은 인구 5만까지 떨어진 인구소멸 위기의 도시다. 그런데 2025년 6월 기준 생활인구는 42만 명이다. 황윤석도서관이 생기면서 올해는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올 것 같다.
외관을 처음 마주하면 종묘가 떠오른다. 굵은 기둥들이 수평으로 반복되고, 지붕이 한쪽으로 길게 사선을 그으며 뻗어 있다. 묵직하고 단정하다. 그런데 그 작은 입구 틈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힌다. 층고가 높고 시야가 단번에 트인다. 목재 서까래가 사선으로 올라가고 천창으로 파란 하늘이 쏟아진다. 기둥과 기둥 사이로 자연광이 들어오고, 은은한 스탠드 조명이 곳곳에 놓여 있다. 밤에 오면 더 운치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서가는 흰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유현준 건축가에 따르면 모든 서가에 바퀴를 달아 강연이나 행사 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지금은 고정식처럼 보이지만, 그 의도대로 운영됐다면 또 다른 의미로 특별했을 것이다. 책을 찾으면 로봇이 위치를 안내해 준다. 목재 서까래와 흰 서가 사이에 서 있는 안내 로봇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사선으로 떨어지는 햇빛이 위치마다 조금씩 달라서 공간마다 표정이 다르다. 건축을 잘 알지 못해도 느낌은 안다. 햇빛을 받으며 읽고 싶은 책이 있고, 어둑하고 좁은 구석에서 읽고 싶은 책이 있다. 보통 도서관은 형광등 아래 획일적인 구조인데, 이곳은 의자와 창문과 빛이 모두 달라서 새로운 공간에 온 느낌이 든다. 긴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친 사람, 창가에 비스듬히 기댄 사람, 서가 앞에 서서 책 등을 훑는 사람. 다양한 의자, 다양한 자세. 도서관이 이렇게 살아있는 공간일 수 있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1층은 성인 중심, 2층은 청소년과 아이들 공간이다. 유현준 건축가는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가 자연스럽게 들어와 책을 볼 수 있도록 2층을 청소년 위주로 구성했다고 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사이에는 만화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엎드려 만화책을 보는 아이가 있었는데, 즐거워 보였다.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보는 뷰가 특별하다. 같은 공간을 높은 곳에서 다르게 바라보는 경험을 도서관에서 할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 거닐면서 시선을 바꾸면 새로운 생각도 움튼다.
황윤석도서관은 평일 22시까지 운영한다. 금요일 오후에 방문했는데 북적대지 않고 편안했다. 생활인구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사서와 큐레이터, 공간을 유지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유현준 건축가가 유튜브 마지막에 꼭 당부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일은 바쁜데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서비스는 좋아질 수 없다고. 고창군 관계자분들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인센티브를 주고 인력을 충원해서, 이 공간이 오래 쾌적하게 유지되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머물다 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P.S 가기 전에 꼭 건축가가 의도한 공간의 비밀을 알고 가길 권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D0j3bCWjZSg
책이름 도서관 투어 시리즈
01. 고창 황윤석 도서관 - 유현준이 만든 반전의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