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숑로제 Aug 23. 2016

서른 넘어 발견한 나의 재능

2016.8.22.



나이 서른 넘어 발견한 내 재능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나에게 숨겨진 재능을 발견했다.


 '공이 커요. 공이 작아요' 같은 책을 읽어줄 때는 몰랐는데,

'예끼 이 녀석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하고 호통치는 할아버지 정도 나오는 책을 읽을 때 알았다.


나는 혼자 5명 정도의 캐릭터를 거뜬히 소화할 수 있다. 특히 뚱뚱해서 숨이 금방 가빠올 것 같으면서 살짝 둔한 목소리는 -내가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정말 '일품'이다. 이 목소리는 보통 하마, 코끼리, 공룡, 돼지처럼 몸집이 제법 있는 캐릭터가 말할 때 쓴다. 인자한 할머니, 성깔 있는 할아버지, 귀여운 아이, 예쁜 요정 목소리는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툭툭 튀어나온다. 한 번은 괴물 목소리를 너무 리얼하게 했다가 아들이 '엄마 너무 무서워. 하지 마'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내 숨겨진 재능이 '성우' 정도라고 예상한 독자가 있다면 속단은 금물이다.)



엄마가 토요일도 일을 해야 하는 이유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내가 토요일도 일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아이들을 가끔 시댁에 맡긴다. 시댁과 거리가 좀 있어서 금요일 저녁에 데려다주곤 하는데, 하룻밤이지만 아직 어린 6살, 4살은 엄마와 떨어지기 무척 싫어한다. 저번 주에도 그렇게 울고불고 가기 싫다고 했다. '엄마 토요일 일해야 한다'는 말은 이미 수백 번 넘게 했다. 좀 더 아이들에게 엄마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각인시켜주고 싶었다. 나는 감정을 잡았다.


"얘들아, 엄마 그럼 일하지 말까?"


울고 불고 하던 아이들이 눈물을 닦고 눈이 휘동 그래 졌다.


"엄마도 너희들 맡기는 거 싫어"


"정말이야? 우리 안 가도 돼?"


그리고 나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심각하게 말했다.


"응. 가지 마. 그런데... 엄마가 일 안 하면... 우리 돈이 부족해서... 점점... 가난... 해질 거야"

(중간중간에 한숨을 두세 번 쉬어줘야 한다)


"뭐어?"


아이들이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가난이 뭐냐고 물어봐서 돈이 부족해서 배가 고프거나 장난감을 못 사는 거라고 설명을 해줬다. 아들은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아프리카에 가난한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녀석들이 가난이라는 말을 이해할 때 즈음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가 일 안 해서 돈이 없으면 집도 이사 가야 해. 방 1개, 화장실 1개 집으로"


'방 1개. 화장실 1개'라고 말할 때 감정선이 자칫 흐트러질 뻔했지만, 금방 페이스를 되찾았다.

나에겐 그 정도 내공이 있다.


"그리고 워터파크나,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지. 그런데도 다 돈이 있어야 가는 거야"

(여전히 안타까운 한숨을 쉬어줘야 한다.)


"돈 없으면 못가?"


아이들은 자뭇 심각해진 얼굴로 나에게 여러 가지 말을 했다. 아들은 갑자기 자기 동전 지갑을 가져와서 나한테 쓰라고 했다. 딸은 돈 없으면 워터파크 진짜 못가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난 최대한 눈에 힘을 풀고 슬픈 눈으로 아이들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그런데 가는 게 뭐가 중요해. 생각해보니 엄마도 너희랑 같이 있고 싶어.

너희 할머니 집에 맡기면 너무 보고 싶거든. 토요일날 일하는 것도 힘들어.

그래. 우리 그냥 같이 있자. 집 좀 작으면 어때.

여행이야 안 가면 되지. 우리 항상 이렇게 꼭 붙어있자. 응?"


그리고 나는 와락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즉흥적으로 내뱉은 애절한 대사에 괜히 짠해져서 눈물이 다 나올 뻔했다.

녀석들을 힐끗 보니 아이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딸내미는 돈이 없으면 이사를 가야 하는 것과 워터파크를 못가는 건지 두세 번 더 물어본 것 같다.


그다음 날 시댁에 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무척 순조로웠다.

누구 하나 가기 싫다고 떼를 부리지도 울지도 않았다.


어떤가. 이만하면.


육아를 통해 발견한 나의 숨은 재능은,

누가 볼까 겁나는

가증스러운 '연기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엄마고, 아내는 아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